인종 원년에 하괴성의 기운으로 태어나고
인종 원년에 하괴성의 기운으로 태어나고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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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8.1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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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 김기환 선생의 이순신공세가(李舜臣公世家)제1-1회

 
이순신의 본관은 풍덕부 덕수현1)이었다. 순신의 11대조가 되는 이돈수李敦守는 고려시대에 벼슬이 중랑장2)에 이르렀다.

이는 덕수이씨의 비조였다. 10대조가 되는 이양준李陽俊은 벼슬이 보승장군3)에 이르렀고 사후에 증직이 이부상서였다. 9대조는 이소니 벼슬이 지삼사사4)에 이르렀고 증직이 상장군이요, 8대조는 이윤번李允番5)이니 조선 초에 문과로 도사6)에 이르렀고 증직이 좌참찬이요, 7대조는 이현李玄이니 벼슬하지 아니하고 증직이 좌찬성이요, 6대조는 이공진李公晋이니 벼슬이 수사재시사7)에 이르렀고 증직이 영의정이요, 5대조는 이변李邊8)이니 나이 삼십에 문과에 처음 올라 세종 때 명신으로 예조판서, 대제학, 영중추부사 등에 이르고 충직함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중국어를 능통하여 사신으로 자주 다녀 중국인들이 다 그 명성을 알았으며 시호는 정정공貞靖公이요, 4대조 즉, 고조는 이효조李孝祖이니 벼슬이 통례원通禮院 봉례9)에 이르렀고, 증조는 이거이니 문과 홍문관 박사로 동궁東宮의 강관講官이 되어 연산군이 세자로 있을 때에 그 엄정함으로 항상 세자가 어려워하였다 하고, 그 뒤에 장령10)이 되어 있을 때에도 권세 있는 대신이라도 그 과실을 알면 반드시 탄핵하니 조정의 관리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범 같은 장령[성종 때의 호장령虎掌令]이라고 지칭하였다.

그 후에 이조정랑 병조참의에 이르렀고, 조부 이백록李百祿은 진사로 연산군의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참봉 및 봉사의 벼슬을 받았지만 다 사직하였고 그 당시 명사 정암 조광조趙光祖 등과 교유하다가 마침내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관되기도 했다.11) 그 뒤에 호조참판으로 증직되었고, 부친인 이정李貞은 벼슬길에 나서지 아니하였으나 음직蔭職으로 병절교위秉節校尉였다. 증직은 아들 순신으로 인하여 좌의정 덕연부원군德淵府院君을 봉하였다.

이러한즉 덕수이씨는 고려말로부터 혁혁한 가문으로 덕행과 문학이 계계승승하여왔다. 이정의 가업은 유교를 숭상하였다. 대대로 충효로써 자손을 교육하여 왔기 때문에 가풍이 순후하나 가세는 청빈하여 본분을 지켰으며 안빈낙도함으로 구름과 학을 벗하였다. 슬하에 네 아들을 두었으니, 장자 희신羲臣은 벼슬 없이 단명하였고, 둘째 요신堯臣은 진사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생이더니 역시 단명하고, 셋째는 곧 순신舜臣이요, 막내 우신禹臣은 벼슬이 참봉에 그쳤다.

▲ 국·한문혼용체로 저술된 '이순신공세가' 원본. 본지가 최초로 한글 완역판을 공개한다.
이순신은 인종 원년 을사1545년 3월 8일12) 자시에 서울 건천동13) 본가에서 출생하였다. 그 어머니는 초계변씨草溪卞氏였다. 순신을 낳을 때에 한 꿈을 얻으니 그 시아버지 봉사공 이백록이 옥동자를 안아주며 “이 아이는 하늘의 성군星君으로 장래에 나라의 기둥이 될 것이다” 하였다. 과연 용모가 남다르고 음성이 우렁찼다.

점을 치는 음양가陰陽家가 말하기를, “이 아이가 나이 오십이 되면 북방에 대장이 되어 부월14)을 잡고 이름이 천하에 진동하리라” 하였다. 이름은 순신이라 하고 자는 여해汝諧라 하였다. 혹은 말하되 순신이 장성한 뒤에 자호自號를 기계器溪라 하였다가 아산牙山으로 낙향한 뒤에는 백암白巖이라 하였다.

순신의 나이 오륙세가 되자 알음알이가 뛰어나고 총명하고 영민하기가 짝이 없었다. 어떤 때에는 어른을 놀랠 만한 행동이 많았다. 그 부친 이정이 극히 사랑함이 여러 형제에서 더하였다.

하루는 이정이 순신의 슬기롭고 영리한 재지를 시험해 보려 하여 방 안에 앉아서 순신을 보고 “네가 나를 마루로 나오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순신이 대답하되 “아버지가 방 안에 계시니 마루로 나오시게 함은 극히 어렵지만 만일에 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계신다 하면 방 안으로 들어오시게 함은 비교컨대 쉬울 듯합니다. 그러니깐 어려운 문제보다는 비교적 쉬운 문제를 먼저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그 아버지를 조른다. 이정이 껄껄 웃으며 마루로 나와서 앉으며 “오냐, 네가 나를 방 안으로 들어가게 하여 보아라. 정말 쉬운 문제인가 보자” 하였다. 순신이 손뼉을 치며 말하기를 “아버지가 마루로 나와 앉으시니 내 계교가 성공되었다” 하고 즐거워하였다.

순신이 점점 자라 팔구세가 되매 근골이 발육되어 용감하고 민첩하여 나는 새와 달리는 개를 쫓아 잡고 몇길 높이를 뛰어오르며 성품이 활달하여 벌써 빼어난 기상이 있었다. 서울 거리에서 많은 아이들과 모여 놀 때에 매양 진치고 전쟁하기를 좋아하는데, 순신은 언제든지 그 중에 대장이 된다. 그 지휘가 법이 있고 행렬이 엄숙하여 위풍이 당당하고 질서가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그 명령에 복종하여 추호라도 거역하지를 못한다.

비록 나이든 사람이라도 순신의 진을 범하거나 횡단통행을 하려 하면 순신은 말하되, “어른이 되어 눈이 있어도 장수의 진을 보고도 알지 못하고 범하니 내 마땅히 그 눈을 쏘아 징계할 것이오” 하고 대로 만든 활을 당기어 눈을 쏘려고 협박하였다.

그러니 비록 어른이라도 하는 수 없어서 다 순신의 진은 피하여 다녔다. 순신은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그 부모의 교훈을 받아 충효와 정의로써 그 심성을 수양하였다. 소년시대가 되매 장형 희신과 중형 요신을 따라 한문서숙에서 유학儒學을 공부하니 그 재주가 출중하여 장래에 크게 성공할 것을 기대하였다. 중형 요신을 따라 퇴계선생 이황의 문중에도 논 일이 있었다 한다. 요신은 이황의 문하생이었다. 그 부친 이정은 항상 순신을 대하여 이르기를 “우리 집안 대제학 정정공의 뒤를 이을 자손은 아마도 너희들이니 아무쪼록 글공부를 잘해서 입신양명하여 부모와 집안을 빛내라”고 장려하였다.

순신이 나이 십사세가 되어 자기 집 사랑에다 한문을 가르치는 사숙私塾을 열고 어릴 적에 길에서 진치고 놀던 총죽15)의 무리들을 불러 모아 자기가 선생님 격으로 되어 글을 가르쳤다. 그러고 보니 전일에 길 위의 대장이던 순신은 금일에는 집 안의 선생님으로 변하였다.

▲ 지난 4월 28일 오후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초등학교에서 충무공 이순신장군 탄신 제467주년 기념 '제51회 아산성웅 이순신 축제' 활쏘기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다.
“너희들은 이 어려운 한문을 통하지 못하면 장래에 성인이 되더라도 사회의 낙오자가 될 뿐만 아니라 충효의 대의를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깨우치고 이끌어 이 사숙을 연 것이었다.자기도 모르는 것은 그 부형에게 배워가며 차차로 전수하여 학습하게 하였다.

하루는 순신이 어떤 아이에게 통감삼권16)이란 책을 가르치고 있었다. 한나라 여후呂后가 척부인戚夫人을 그 팔다리를 끊은 뒤에 뒷간에 집어넣고 부르기를 “인체”17)라 하였다. 여후의 아들 혜제惠帝가 그 어머니 여후에게 간하기를 “차비인소위此非人所爲”라고 말하였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다 그 글 뜻을 “이는 사람이 할 바 아니다”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그런데 순신은 보통 해 오던 것과 뜻을 달리하여 “이는 사람에게 할 바 아니다”라고 가르쳤다.

때마침 당시 영의정 동고東皐 이준경이 그 사랑 앞을 지나다가 들은 즉 길가에 있는 어떤 사숙에서 ‘통감’을 가르치는데 “이는 사람에게 할 바 아니다”라고 한다. 이준경도 어려서 ‘통감’을 배울 때에 그렇게는 못 읽었다. 만일에 “사람이 할 바 아니다” 하면 그 어머니를 가리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 되어 불경불효不敬不孝한 말이 되고 말 것이었다. 동고 이준경은 황연히 깨닫고 크게 감동하여 교자에서 내려 사숙으로 들어가 보았다.

십사오세가 될락말락한 순신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가 동고를 맞아 올려 좌정한 뒤에 순신이 침착한 행동으로 동고 현상賢相인줄 안 연후에야 인사하였다.[그때에 간신 정승도 많았다.] 이준경은 순신의 풍채를 살펴본즉 범의 머리에 제비턱18)이요 코가 푸짐하고 귀가 크며 눈빛이 밝은 별과 같았다.

참으로 장래에 만리의 봉토를 다스릴 제후의 상이었다. 이준경은 순신의 장래를 크게 기대하여 간곡히 예우하여 심중에 무쌍국사19)가 될 줄로 알고 크게 칭찬하여 마지아니하고 돌아갔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교육지대 대표 장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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