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김기환 선생의 이순신공세가(李舜臣公世家) 제2-1회

 

 
이순신의 나이 32세가 되던 해 병자 1576년 1월에 식년1) 무과를 시험 보았다.

모든 무예에 다 합격이 되고 무경을 강의하여 통과하고 「황석공소서」2)를 강의하는 중에 시험관이 묻기를 “책에 ‘한나라 장량이 적송자3)를 좇아 놀았다’ 하였으니 그러면 장량이 과연 죽지 아니하고 신선이 되었단 말인가?” 하였다.

순신이 대답하되 “사람이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음은 천리의 근본입니다. 주자朱子의 「강목」4)에 ‘임자 6년5)에 유후6) 장량이 세상을 떴다’ 했으니 어찌 신선이 되어 죽지 아니하였다 하겠습니까? 이는 신선에 가탁한 일일 것입니다” 하였다.

시험관들은 서로 돌아보고 놀라며 “이 사람이 무예에만 정통할 뿐 아니라 모든 학문에 많은 포부가 있다”고 칭찬하였다. 이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영화로운 창방7)을 행하니 그 잔나비 팔 곰의 허리에 팔척장신인데, 용의 수염 범의 눈썹, 표범의 머리 제비의 턱, 푸짐한 코 봉황의 눈이라, 풍채는 준수하고 자태는 당당하였다. 서울 큰길에 보는 사람이 누구 아니 칭찬하리오. 양친께 배알한 뒤에 선산에 소분8) 참배하기 위하여 향제로 내려갔다.

선산 정정공 묘소에 서있던 석인 하나가 세월이 오래돼서인지 땅에 쓰러져 누웠다.

순신이 수행하여 온 하인 수십명을 명하여 그 석인을 일으켜 세우라 하였으나 그 석인의 중량이 수천근 이상의 거석이어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것을 본 순신은 하인들을 꾸짖어 물리치고 겉옷도 벗지 아니하고 친히 혼자서 그 석인을 들어 일으켜 가볍게 원처에 옮겨 세우되 조금도 호흡이 급하지 아니하고 평상시와 같았다.

보는 사람들은 다 입을 벌려 놀라며 천신이 하강하였다 하여 감히 순신을 쳐다보지도 못하였다. 이로부터 순신이 장사라는 영명이 조선 팔도에 전파하였다.

▲ 이순신은 병자 1576년 1월에 식년 무과시험을 봤다. 그의 나이 32세 때였다.
순신은 명리에 담담하여 출입을 번거롭게 아니하므로 그 몸이 비록 서울에서 생장하였으나 그 재명을 알아보고 칭허9)하는 이가 희소하였다. 오직 홀로 서애西厓 유성룡이 지기知己로 대접하고 매양 찬양하여 대장감이라고 인정하였다.

영남 야승10)의 일화에 서애 유정승과 백암 이충무의 두 위인이 처음으로 상봉하기는 한강진漢江津 배 안에서 만났다고 하였다. 아래에 그 서로 만나 친하게 된 경로를 자세히 적어 독자에게 소개한다.

서애 유성룡은 영남 안동安東 하회동河回洞 사람이다. 나이 이십오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옥당 호당11)에 있을 때에 향제에 내려가 부모를 뵙고 서울로 돌아올 때에 한강진 나루에 이르니 일색이 이미 석양이다. 나귀 한필과 시중드는 아이 하나로 나룻배에 올랐다. 본즉 나룻배에는 벌써 먼저 탄 행객이 사오십명 정도이고 또 어떤 시집가는 신부의 교자가 배 한바닥에 놓여 있었다.

사공이 배를 밀어 강 중간으로 나왔는데 어떤 한 사람이 나루터에 이르러 고함을 질러 배를 도로 돌려대라고 사공을 부른다. 그 소리가 웅장하여 근방 산악이 울렸다. 그 부르는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사공은 겁을 집어먹고 배를 도로 돌려대고자 하였다.

▲ 서애 유정승과 백암 이충무의 두 위인이 처음으로 상봉한 곳은 한강진漢江津 배 안이었다 사진은 드라마 상의 유성룡과 이순신
배에 가득한 행객들이 사공을 꾸짖어 반대하되 일개 뒤늦은 행인을 말미암아 선중에 있는 허다한 사람의 일정을 지체함이 불가하다고 주장하였다. 사공은 공손히 대답하되 “저 사람은 용력이 천근을 능히 들고 맹호를 능히 때려죽이는 천하장사일 뿐 아니라 당금 서울 북촌에서 부원군12)대감이요 영의정이신 제일 권귀하신 모 재상가의 제일 친근한 겸종13)인데 성명은 몰라도 별호는 야우野牛 또는 야호野虎라 하는 사람이오. 저 자가 희다 하면 그 댁 대감도 희다 하고 저 자가 검다 하면 대감도 검다 하오. 그 대감의 출입시에는 반드시 호위하오. 그러니 매사에 저 자의 말을 들어준다오.

소인의 이웃 배 동무 사공도 저 자로 해서 불쌍하게 죽고 말았소. 철관도인鐵冠道人 이토정14) 선생님이 저 자를 죽여서 민간에 횡행하는 폐해를 마감하려고 하였다가 저 자의 용력을 보고는 자파15)를 하였다는 말까지 유행하오” 하고 사공은 나룻배를 도로 돌려대었다. 그 자가 배에 오른다. 서애 역시 불쾌한 눈으로 그 자를 노려보았다. 그 자는 신체가 거대하고 얼굴에 술기운을 띄었다. 거만한 태도가 가증스러웠다.

때마침 강바람이 나부껴 뱃바닥에 있는 신부의 교자의 주렴이 들렸다. 그 야우라는 자가 그 교자 안에 앉은 신부를 들여다보고 또 그 신부에게 손을 대었다. 정말 무법천지가 되었다.

신부를 호송하는 노인이 있어 그 자의 만행을 꾸짖었다. 야우가 그 꾸짖는 말에 노하여 위아래의 예절도 없이 그 노인에게 대들어 뺨을 쳤다. 그 노인은 뱃바닥에 자빠졌다.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선중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이 광경을 당하고 뉘 아니 분하리오. 유성룡도 청년의 기상에 노기를 감출 수 없었다.

선중 행인들이 분노치 않는 이가 없었다.

이런 것을 보고는 비록 창해역사와 요리 극맹16) 같은 의협지사가 아니라도 그저 둘 수는 없다. 죽은 사람이 아닌 이상에는 어찌 보고만 있단 말인가. 그런데 하물며 청년시대의 의기남아로서 같이 한 배에 실렸다가 이 광경을 당하고 참을 수 있을쏘냐.

그러나 야우의 용력이 맹호와 같음을 무서워하여 먼저 나서는 이가 없었다. 야우는 더욱 그 용력을 자랑하는 듯이 선중의 다수한 사람의 기운을 누르며 모욕하는 듯하였다. 만선중의 울분은 구름 일듯 하였다.

이러는 때에 한 이십세 가량 되는 약관청년이 사람들 중에서 뛰어나온다. 그 청년은 키가 훌쩍 커서 칠팔척이나 되고 몸이 호리호리하고 옷은 청창의靑氅゚를 입었고 갓은 양립凉笠을 쓰고 신은 당혜唐鞋를 신었다. 얼굴은 범의 머리에 제비의 턱이요 몸은 잔나비 팔에 곰의 허리였다. 참으로 준수한 청년이었다.

그 청년은 대번에 그 야우란 자의 뺨을 쳤다. 야우는 반항하였다. 야우의 주먹은 정말 무서웠다. 황해도 대적大賊 임꺽정林巨正과도 갑을을 겨누던 권법이다. 임꺽정이 죽은 뒤로는 제 스스로 천하무적이라는 놈이었다. 그 놈이 주먹을 겨누어 청년을 후려친다. 배안의 사람들과 유성룡은 야우의 용력이 절륜한즉 그 청년이 행여나 능욕을 당할까 염려하여 동정심은 그 청년의 신상으로 쏠렸다. 그러나 그 청년은 야우의 주먹을 교묘하게 피하더니 홀연히 공세를 취하여 발로 야우의 가슴을 차서 야우는 용력을 쓰지 못하고 뱃바닥에 자빠졌다. 그 청년은 나는 듯이 두 번째 발질을 차서 야우는 벌써 반생반사가 되었다가 결국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야우는 무쌍한 역사力士로 국구부원군의 하수인이 되어 일세에 기탄없이 횡행하며 살인 겁간하다가 금일에 이르러 그 일생을 마치고 말았다.

 
배에는 일대문제가 발생하였다. 야우가 저지른 범행의 선악은 고사하고 ‘살인자는 사형’이라는 국법을 무서워하여 사람들은 전전긍긍 하였다. 그러나 청년은 참으로 뛰어난 용사였다. 아까는 마치 매가 참새를 취함과 같았다. 그 청년이 야우의 죄상을 꾸짖기를 “경향을 물론하고 살인범간한 중범인데 이런 놈을 관리가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그 주인 되는 재상의 권세 때문이다. 이제 그 같은 만행을 백주에 감행하니 이것이 모두 그 재상이 버릇을 잘못 키워준 탓이다” 하고 옷고름에 찬 장도를 빼어 들고 그 놈의 목을 베어 그 하체는 강물에 밀어 넣고 그 수급만을 뱃전에 걸터앉아 피가 빠져 없어지도록 흔들어 씻는다. 피가 없어진 뒤에는 수건을 내어 그 수급을 싸가지고 조용히 천연한 태도로 사람들 사이로 은신하여 버렸다. 선중의 사람들은 일변은 쾌히 여겼으나 일변은 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는 법을 생각하고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광경을 본 유성룡의 생각에도 야우를 두둔하는 모 재상의 혁혁한 세도와 그 간흉한 수단을 염려하여 장차 무슨 후환이나 있지 않나하고 근심하는 중에 사공이 배를 저어 강의 북안에 대자 그 청년이 먼저 배에서 뛰어내린다. 유성룡은 그 주도면밀한 생각에 그 청년의 이상스러운 행동을 끝까지 보아 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서동에게는 뒤에 오라고 하고 자기는 걸음을 재촉하여 곧 그 청년을 따라갔다. 그 청년의 걸음은 달리는 말과 같았다. 유성룡은 간신히 뒤쫓아 가는데 어느새 종로를 지나고 북촌에 들어가 야우의 주인 되는 모 대가에 도달하였다. 그 대문간에는 별배와 겸종이며 행랑 하인들이 늘어서 지키고 있어 보기에도 권문세가의 본색이 완연하였다. 그 청년은 별배더러 묻기를 “너의 댁 대감이 지금 계시냐” 하였다. 별배는 “네, 사랑방에 계십니다” 하고 대답한다. 그 청년은 두 번 묻지 아니하고 바로 들어가 마루에 올라 방 안으로 들어간다. 유성룡은 같이 온 사람 모양으로 역시 마루에까지 올라가 그 거동을 엿보고 있었다. 일종의 호기적 의협심에 끌려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청년은 그 주인 재상의 멱살을 대번에 질풍같이 숨 쉴 여유도 없이 움켜잡고 꾸짖는 말이 “네 문객인지 하인 겸종인지 되는 야우라 하는 놈이 한강진 선중에서 사람으로서는 하지 못할 짐승 같은 짓을 감행하니 이는 전혀 네 권세를 빙자하고 그러함이라 내 그놈의 목을 베어왔노라” 하고 한 손으로 허리에 찼던 수건을 펴고 야우의 수급을 내어들고 그 재상의 가슴팍을 쳤다. 그 재상은 사생간 경황망조하였다. 경황한 중에도 “야우는 천하장사인데도 불구하고 그 목이 떨어졌을 때에는 하물며 나 정도야…” 하고 생각함에 혼이 몸에 붙지를 아니하였다.  <다음호에계속>

 

 

 
>>정리|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교육지대(대표 장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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