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없는 대규모 정전 극복책

 
위기다. 초여름부터 걱정했던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이 현실화되고 있다. 문제는 블랙아웃을 면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절전’이라는 구호 외에 별다른 방도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싼값에 전기를 사용해 국민만 죄인이 됐다.

정부는 6일부터 전기요금을 평균 4.9% 인상하기로 했다. 산업용과 주택용이 각각 6%와 2.7%, 교육용과 농업용은 3%, 심야전력은 4.9% 인상됐다. 한국전력공사(한전)가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전기료 인상을 꾸준히 주장한 결과다.

 
블랙아웃 우려는 전기료 인상에 큰 역할을 했다. 논리는 다음과 같다. “전기는 석유나 가스에 비해 싸다. 모두가 값싼 전기를 펑펑 써댔고, 블랙아웃이 우려되는 지경까지 왔다. 전기사용량을 줄여야 블랙아웃을 면할 수 있는데 줄이지 않는다. 현재로선 가격을 올려 전기사용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8월과 12월 각각 4.9%와 4.5%로 전기료가 올랐던 이유다. 이번에 4.9%를 올렸으니 1년 동안 15%의 전기료가 인상된 셈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전력난 해소책은 또 있다. 정부는 5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0년)에 따라 2024년까지 59기의 발전소를 더 지을 계획을 세웠다. 원자력발전 14기, 석탄발전 17기, 복합화력발전 26기, 양수발전 2기다.

하지만 전기료 인상, 발전소 건설 등 전력난 해소책으로 블랙아웃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기업이나 가정에서 전기료를 인상한다고 전기사용량을 줄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전기만큼 값싼 대체 에너지가 없어서다. 발전소 추가 건설 계획 역시 당장 효과를 낼 수 없다. 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일정한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6일 최대전력수요는 7429만㎾로 정부가 예상했던 2020년 전력수요 7181만㎾를 이미 넘어섰다.

▲ 8월 6일 최대전력수요는 7429만㎾로 정부의 2020년 전력수요 예상치 7181만㎾를 이미 넘어섰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절전캠페인이다. 전 사회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정부주도형 절전캠페인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방불케 한다. 과연 전기료를 유류비나 가스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발전소를 더 짓고, 그래도 안 되면 연례행사처럼 캠페인을 벌이면 블랙아웃 우려를 씻을 수 있을까. 

원전 육성 정책부터 바꿔야

한편에선 ‘전력생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블랙아웃 위험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력요금이 왜 싼 지, 가정이나 기업에서 무슨 이유로 전기를 많이 쓰는지를 먼저 분석해야 해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경북대 진상현(행정학부) 교수는 국내 전기료가 싼 이유로 원자력발전소(원전)를 꼽았다. “원자력발전은 다른 발전소처럼 수요량에 따라 출력을 조절할 수 없어서 남는 전기를 싸게 판다. 원자력의 싼 전기는 전력소비량을 늘리는 데 일조했다.”

▲ 원전은 전력을 과잉생산해 전기료를 낮췄고, 현재 전력난의 원인이 됐다.
동국대 박진희(교양교육원) 교수는 “역대 정부는 수출을 강화하기 위해 값싼 에너지 공급 정책을 썼다”며 “이 정책이 값싼 전기를 생산한다는 원전을 키웠고, 결과적으로 전력소비량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발전설비의 70%를 원자력에 의존하는 프랑스는 원전 증설과 함께 2000년대부터 에너지 과소비 현상을 겪었다. 지속적으로 늘어난 전력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프랑스는 결국 2006년 중유발전소를 다시 가동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상황이 2000년대 프랑스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원전에서 생산되는 값싼 전기 덕분에 각 가정은 석유난로나 가스레인지를 전기난로와 전기레인지로 교체했다. 난방용 기름보일러나 가스보일러도 전기장판으로 바뀌었다. 농촌에서는 온실난방 설비가 중유시설에서 전기시설로 바뀌었다. 면세대상인 농사용 중유가 전기보다 비쌌기 때문이다.

각 기업도 산업현장의 에너지생산시설을 전기로 교체했다. 값싼 전기를 활용해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국내 각 제철소는 용광로에 쓰이는 연료를 석탄 등 화석연료에서 전기로 바꿨다. 박진희 교수는 “가정이든 기업현장이든 전력사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버렸다”며 “이런 구조를 바꿔야 블랙아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5년 동안의 에너지수급현황 자료를 보면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린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하는 연도별 에너지수급현황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전력소비량 증가율은 24.5%였다. 그러나 전력생산량 증가율은 이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같은 기간 국내 총 전력생산량 증가율은 전력소비량보다 0.7%포인트 적은 23.8%였다.

전력소비량이 전력생산량을 웃돈 이유는 산업용 전력소비량이 급격히 늘어서다. 전력소비량 증가율을 용도별로 살펴보면 가정용 전기는 13.7%, 상업용 전기는 18%, 산업용 전기는 30.1% 가량 늘었다. 산업용 전력사용량 증가율이 국내 총 전력생산량 증가율보다 6.3% 높은 셈이다. 산업용 전기소비량이 가정용 전기소비량의 2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력소비 비중 변화를 살펴봐도 가정용 전력소비 비중은 2007년부터 14%대를 유지해오다 2011년에는 13.5%로 줄었다. 반면 산업용 전기소비 비중은 같은 기간 50.5%에서 53.2%로 2.7%포인트 늘었다.

 
블랙아웃의 원인을 요약하면 크게 두 가지다. 원전과 산업용 전력소비량의 증가다. 박진희 교수는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은 대부분 반도체•1차 금속•석유화학 등 수출 주력상품을 만들고 있다”며 “전기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긴 어려워 보인다”고 주장했다. 국가 기간산업의 전기수요를 막을 수 없다는 논리다.

그렇다고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대체에너지 개발을 통해 에너지 공급원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원전 위주의 에너지 정책에서 탈피해 태양광(열)•지열•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분야를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대체 에너지 개발하는 게 능사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국회의원은 “정부가 신재생 에너지 R&D(연구개발)에 지출하는 정부예산은 원전 지원금액의 9%에 불과하다”며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태양광산업협회 이성호 전 부회장은 “현재 기술력으로도 건축물의 지붕, 각종 도로, 유휴부지 등을 활용해 국내 소비전력의 10%에 이르는 태양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며 “신재생 에너지를 더욱 육성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경제동향연구재단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이사장이 강조하고 있는 ‘3차 산업혁명’과 부합된다. 제레미 리프킨 이사장은 “독일에선 전체 에너지의 20%가 그린에너지이고, 자가 에너지 생산 빌딩은 100만개에 달한다”며 “각 빌딩을 스마트그리드로 연결해 남는 에너지를 필요한 곳에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다른 대안도 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전기료에 환경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박진희 교수는 “단순히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부담금을 부과하면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돕고, 요금 인상에 따른 반발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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