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파트2] 가뭄이 불러올 최악의 시나리오

반세기 만에 최악의 가뭄이 미 대륙을 덮쳤다. 전쟁의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듯 황폐해진 미국의 모습이 가뭄의 공포를 세계인에게 선명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더 끔찍한 것은 지금의 재앙이 100년간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게 될 기후라는 점이다. 당신은 새로운 일상을 맞이할 준비를 끝냈는가.

▲ 반세기만의 최악 가뭄에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 문제는 이번 재앙이 100년간 마주하게 될 일상이 될 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미국 국토의 80%가 메말랐다. 직접적인 가뭄 영향권에 든 지역은 전체의 61%로 열을 이겨내다 못해 벌겋게 타들어가고 있다. 특히 중서부 인디애나주의 피해가 심각하다. 최대 수확철이지만 알곡이 빼곡히 들어찬 옥수수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열기를 이기지 못한 바싹 마른 옥수수 잎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재로 변하기도 한다. 농장주의 애타던 마음

 
은 돌처럼 굳었다. 비가 온다 해도 이미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소리 없이 잔인한 가뭄이 만든 새로운 추수기 풍경이다.

미국의 젖줄인 루이지애나주의 미시시피 강 하류 수위도 기록적으로 낮아졌다. 화물 선박들은 강바닥에 닿아 좌초되지 않도록 불을 밝히며 조심스럽게 운항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던 화물 선박의 통행량도 20% 가까이 줄었다.

그칠 줄 모르는 폭염은 전력생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냉각수로 쓰이는 강물 온도가 올라 원자로 열을 낮추기도 어렵다. 시카고에서는 원자로의 냉각수조 온도가 규정한도 수치인 100도를 넘어 가동 중단 위기에 몰렸다. 더위로 사람들의 전력 소요량은 증가하는데 전력 생산량은 설비용량의 93%로 떨어졌다.

폭염과 가뭄에 시달리는 곳이 미국뿐만이 아니다. 지구 전체가 ‘찜통’이 돼가고 있다. 서부 시베리아는 100년 만의 이상고온에 몸살을 앓고 있다. 북한에도 폭염이 찾아와 황해북도 사리원의 낮 최고기온이 35.6도까지 치솟았다. 이탈리아 로마는 8일 낮 기온이 37도를 가리켰고, 시실리섬은 무려 44도까지 치솟았다.

21세기는 대가뭄의 세기

더욱 끔찍한 것은 이런 가뭄•폭염이 향후 100년간 계속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이다. 오레곤 주립대학, 북
 
부 아리조나 대학 등 여러 대학이 공동으로 연구해 발표한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지’ 보고서에는 21세기가 대가뭄의 세기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유엔 산하 국제협의체 IPCC가 낸 ‘기후변화에 관한 제4차 보고서’ 역시 이와 같은 이상기후가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암시하고 있다.

“1906년부터 2005년까지 100년 동안 지구 온도는 0.74도, 해수면은 연평균 1.8㎜ 상승했다”며 “2090~2099년 지구의 평균 기온은 1980~1989년 대비 최고 4도, 해수면은 최대 59㎝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IPCC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면 산업은 그대로 직격탄을 맞는다. 특히 기상변화에 민감한 농업은 취약지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창길 연구위원은 ‘기후변화가 농업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지구온난화로 평년보다 기온이 2도 오르면 10a당 벼 수확량이 4.5% 감소하고 평년 대비 3도 상승하면 8.2% 준다”고 분석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의 보고서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부터 40년 동안 국내 기온이 1.1~1.2도 오르면 쌀 수확량은 6.4% 감소한다. 2014년부터 2070년까지 2.5~2.8도 상승하면 12% 줄어든다. 2010년 쌀 수확량은 429만5000t이었다. 여름철 날씨가 계속 뜨거워지면 2040년 27만4880t, 2070년 51만5400t의 쌀이 사라진다.

쌀 27만t은 국민 전체의 한 달 소비량이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국립농업과학원 심교문 연구원은 “지금 같은 기후변화 속도라면 2050년 쌀 생산량이 최대 15% 줄어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타들어 가는 미국의 논밭이 묻는다.“새로운 일상을 맞이할 준비가 됐는가?”
양식업도 피해를 볼 가능성이 많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지구온난화가 연안해역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해수면이 1m 상승하면 국토 50.4㎢와 (국토로 인정되지 않는) 간척지 1551㎢가 유실된다”고 분석했다.

지구온난화가 빨라지면 여의도 200배 규모의 땅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그 결과 양식 및 공동어장의 총 생산액이 50% 줄어 어업손실액은 5000억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건설 역시 폭염에 민감한 업종이다. 폭염 발생 시 콘크리트 타설 비용이 치솟고 안전사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강운산 연구위원은 “8월 평균 온도가 2도, 3도 상승할 경우 현장노동자의 사망률이 각각 0.1%, 0.4%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수송업도 폭염에 취약하다. 미국에서는 이미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다. 6일 워싱턴 DC 인근의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서는 섭씨 38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에 공항 활주로가 녹아내렸다. 설상가상으로 녹아내린 아스팔트가 여객기 바퀴에 눌어붙어 항공편 운항이 취소되고 비행기 이착륙이 지연돼 물류에 차질을 빚었다. 전철 선로가 늘어나 열차 운행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다. 텍사스주 동부에서는 고속도로 아래 토사층이 고열로 흘러내리면서 갈라진 도로를 보수하기 위해 긴급보수반이 투입되기도 했다.
 
이상기후가 산업에만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 국가경제에도 직결된다. 유엔 IPCC는 “지구 평균기온이 2.5도 오르면 선진국의 GDP(국내총생산)는 1~1.5%, 개도국은 2~9%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폭염•가뭄 등의 이상기후는 이미 소리없이 우리의 생활 면면을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미국의 일을 팔짱끼고 불구경 하듯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미국은 이번 대가뭄으로 ‘세계의 곡창지대’로 불리던 위상을 잃었다. ‘가뭄’이라는 자연재해가 바꾼 일상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브로커들의 반응이 가장 빨랐다. 세계 최대 옥수수 수입국인 일본은 주요 시장을 미국에서 브라질로 전향했다. 시장 자체를 바꾼 것은 가뭄이 올해로 끝날 일회성 재난이 아님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찜통 된 지구 “산업이 바뀐다”

일본 상품 브로커인 후지토미의 사이토 가즈히코 애널리스트는 “아시아 지역의 곡물 수입 업체들은 미국보다 값싸고 안정적인 곡물 공급처를 찾아 남미 지역으로 거래를 이전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 일본은 연초 이후 85만t의 옥수수를 브라질로부터 매입했고, 올해 남미 국가로부터 사들이는 곡물이 100만t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농장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덜 보는 것은 아니다. 당장 에어컨 구입이나 수리를 하려해도 최소 10일은 대기해야 하는 지금의 이 상황이 바로 시작이다. ‘재해의 일상화’란 영화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마음의 준비가 됐는가. 가뭄이 모든 것을 바꿀 일상에 대비는 돼 있는가.

정다운 기자 justonegoal@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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