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❷

코엔 형제 감독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비교적 친절하게 연출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배치하여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내레이션은 노 보안관 벨의 침울한 목소리가 담당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마치 다큐를 연상케 하듯 황량한 텍사스 사막을 배경으로 벨의 독백이 흐른다.

 

벨은 좋았던 옛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보안관 자리에서 물러난다.[사진=아이클릭아트]
벨은 좋았던 옛날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보안관 자리에서 물러난다.[사진=아이클릭아트]

“나는 평생 보안관 일을 했다. 아버지도 보안관이었고, 아버지와 함께 보안관 일을 하기도 했다. 그 당시 보안관은 총을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었다”면서 ‘좋았던 옛날’을 회상한다. 그리고 우울한 독백이 다시 이어진다. “얼마 전 한 사이코 살인마를 붙잡아 교수대에 세웠다. 어쩔 수 없는 사이코였다. 사람을 죽이고도 전혀 죄의식이 없고, 감옥에서 나오면 사람을 또 죽이겠다고 했다.”

벨은 ‘좋았던 옛날’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그런 ‘사이코’가 앞으로는 계속해서 출몰할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안 좋은 예감은 항상 적중한다. ‘잘못될 수도 있는 일은 항상 잘못된다(Anything that can go wrong will go wrong)’는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을 닮았다. 잘못될 확률이 10%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일도 여지없이 잘못된다. 어쩌면 ‘낙관주의자’인 사람들이 잘못될 확률을 너무 낮게 산정했기 때문에 나쁜 예감이 항상 들어맞는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 ‘머피의 법칙’이 유래된 것도 어쩌면 미국인들의 낙관적 성향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벨은 카우보이 모자를 쓴 전형적인 미국 보안관이지만 미국인답지 않게 낙관적이지 않다. 평생을 얼마나 수심에 찬 채 살았는지 온 얼굴은 깊은 고랑 같은 주름으로 뒤덮여 있다. 시골 파출소에서 기이한 범죄 용의가가 부副보안관을 살해한 후 도주하고 한적한 도로에서 차량 강탈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사막 한가운데서 마약 갱단들의 떼죽음이 발견되면서 벨은 왠지 ‘불행한 예감’에 휩싸인다. 또다시 누군가를 잡아 사형장으로 보내야만 하는 사건이 진행되는 것 같아서다.

벨의 ‘나쁜 예감’대로 전대미문의 살인자 안톤 시거가 등장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벨의 ‘나쁜 예감’대로 전대미문의 살인자 안톤 시거가 등장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은퇴를 앞둔 벨의 ‘나쁜 예감’대로 그가 사형대로 보낸 사이코를 능가하는 전대미문의 살인자 안톤 시거가 등장한다. 어쩌면 한적한 텍사스 시골 마을 보안관에게나 전대미문일 뿐이지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에선 흔한 유형의 범죄자일지도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안톤 시거는 텍사스 최대도시 댈러스에서 시골 마을로 ‘출장 살인’을 온 인물이다. 감히 마약 조직의 돈 200만 달러를 들고 도망친 모스를 추적하기 위해 조직이 고용한 해결사다.

안톤의 살인 행각이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고 자책하던 벨은 결국 은퇴한다. 벨은 노련미로 단서를 속속 찾아내지만, 안톤이 텍사스와 멕시코를 오가며 12명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200만 달러와 함께 홀연히 사라지는 사건 현장에는 항상 한발 늦게 도착한다. 이렇듯 벨은 사건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방관자 신세가 된다.

안톤의 살인 행각은 평생을 보안관으로 살아온 벨의 예상과 계산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닥치는 대로 죽이는 안톤은 기존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벨의 한탄대로 벨은 안톤의 상대(Match up)가 되지 못한다. 이런 종류의 사건이 밀려올 시대라면 자신과 같은 ‘노인’은 더 이상 보안관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고 물러난다.

 

아버지 세대의 ‘좋았던 옛날’은 그저 허망한 꿈인 시대가 됐다.[사진=뉴시스]
아버지 세대의 ‘좋았던 옛날’은 그저 허망한 꿈인 시대가 됐다.[사진=뉴시스]

영화의 에필로그도 벨이 담당한다. 자책과 회한 속에 무기력하게 은퇴한 늙은 전직 보안관은 늙은 아내와 밥상 앞에 마주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텍사스 평원의 광경은 평화스럽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다. 벨은 조용히 밥을 먹다가 문득 요즘 꿈에 아버지가 자주 나타난다고 독백처럼 중얼거린다. 첫 번째는 아버지가 주신 돈을 잃어버린 꿈이고, 또 다른 꿈에서는 눈 쌓인 계곡을 아버지와 말 타고 달리다 아버지가 먼저 가서 불을 피워 놓을 테니 그 불빛을 보고 찾아오라고 했다고 말한다.

벨은 아버지 세대가 물려준 ‘돈’처럼 귀한 ‘좋은 세상’을 모두 날려버린 것이 아닌가 자책한다. 아버지 시대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 믿고 따랐던 모든 질서와 가치가 무너지고 마치 눈보라 속에 길을 잃은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 시대가 밝혀주는 불빛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제는 허망한 꿈일 뿐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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