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 윤증展

❶ 영당기적, 작자 미상, 1885년 ❷ 윤증, 친필, 절명시
❶ 영당기적, 작자 미상, 1885년 ❷ 윤증, 친필, 절명시

윤증尹拯(1629~1714년)은 조선 후기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한때 스승이었던 송시열宋時烈과의 갈등으로 각각 소론과 노론의 영수領袖가 되어 정국을 이끌었다. ‘회니시비懷尼是非’라 불렸던 이 갈등은 결국 노ㆍ소 분당으로 이어졌다. 조선의 정치사에서 윤증을 꼭 거론하는 것은 그가 치열한 논쟁의 시대를 겪으면서도 화합과 평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한국서예사특별전 34 : 명재 윤증展이 5월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평생 벼슬하지 않았지만 소론의 영수로 추앙된 윤증의 유물을 통해 그의 삶과 사상을 들여다본다. 이번에 전시되는 ‘윤증 초상’과 초상 제작관리 내력이 적힌 「영당기적」은 보물 제1495호다. 윤증의 초상은 생전에 변량이라는 화가가 처음 그린 후 윤증 사후 장경주, 이명기 등에 의해 제작됐다. 이번에는 이명기가 1788년에 구법으로 그린 초상이 전시된다.

윤증의 호는 명재明齋,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그는 조선 후기 ‘산림山林(학식과 덕이 높으나 벼슬하지 않고 숨어 지내는 선비)’의 삶을 살았다. 85세의 노령으로 별세할 때까지 이조판서ㆍ좌찬성ㆍ우의정 등 수많은 관직에 제수됐지만 한번도 오르지 않았다.

 

❸ 윤증, 친필, 주자시 ❹윤순거, 친필, 이백시
❸ 윤증, 친필, 주자시 ❹윤순거, 친필, 이백시

윤증의 집안은 문과 급제자를 46명이나 배출한 명문가였다. 윤증은 조부인 윤황尹煌, 아버지 윤선거尹宣擧와 함께 3대에 걸쳐 시호를 받았다. 그의 학문과 교육은 전국의 선비들을 매료시켰다. 함께 전시되는 ‘시호 교지’는 1723년 조선의 20대왕 경종이 윤증에게 내린 것이다.

윤증의 가문은 명필 집안이었다. 아버지 윤선거의 3형제가 쓴 ‘노성3선생필적’에는 박세당, 박세채 등 당대 이름난 인물들이 발문을 쓰기도 했다. 윤증 역시 뛰어난 글과 글씨를 남겼다. ‘명재 친필 주자시’ ‘명재 친필 8폭병풍’ 등의 작품을 통해 그의 빼어난 초서를 감상할 수 있다.

윤증은 동시대 인물들과의 교류도 활발했다. 그가 주변 인물들과 주고받은 간찰簡札들은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이번 전시에서는 송시열, 김장생, 윤휴 등 당대 최고 학자들의 친필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간찰 자료도 소개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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