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립기금 운용구조 그대로 두고 적자, 고갈 들먹여서야

국민연금 재정이 위태롭다는 얘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해법도 이미 제시된 상황이다. 국민의 합의를 전제로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다. 문제는 보험료만 인상하면 불안감을 지울 수 있느냐다. 절대 그렇지 않다. 진짜 문제는 국민연금 재정이 고갈된다는 사실보다 잘못된 운영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각종 기금의 운영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하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정우 인제대 교수에게 사회보험 적자의 진실을 물어봤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사진=뉴시스]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늦추려면 원론적으로 보험료를 올리거나 보장률을 낮춰야 한다. 보장률이 이미 상당히 낮다. 결국 보험료를 높이는 게 자연스럽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근 한 언론사가 주관하는 포럼에서 꺼낸 얘기다. 새삼스러운 주장은 아니다. ‘공적보험의 기금고갈’ 얘기는 늘 거듭돼 왔기 때문이다. 

2015년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60년 장기재정 전망’이라는 보고서는 이를 뒷받침한다. 보고서는 장차 우리나라 살림살이가 여러모로 험난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고령화의 여파로 성장동력은 떨어지고, 과도한 복지수요 분출로 미래세대의 부담도 커지며, 덩달아 국가채무도 빠르게 증가한다….” 

이런 우려스러운 전망이 복지재정에 반영되는 건 당연하다. 일례로 국민연금은 “2044년 처음 적자가 발생하고, 2060년이면 그동안 모아둔 적립기금이 완전히 고갈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군인연금은 이미 오래 전 기금이 고갈돼 국가 지원으로 간신히 재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공무원연금 역시 멀지 않은 미래에 군인연금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고갈은 건강보험(2022년→2025년), 노인장기요양보험(2024년→2028년), 사학연금(2027년→2042년) 등에서도 줄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박 장관이 ‘국민적 논의를 통한 보험료 인상’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보험료 인상만이 적립기금 불안감을 해소할 유일한 대안이냐는 거다. 공적보험에서 기금이 고갈되면 국민의 노후보장이나 의료보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좀 더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는 600조원(국민연금)의 적립기금을 쌓아두고 불안에 떨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다시 짚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먼저 생각해 볼 건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소위 ‘사회보험’은 일반 민영보험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민영보험에서 재정적자는 보험료 수입보다 보험금 지급이 더 클 때 발생한다. 적자가 누적되면 보험회사는 파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보험의 재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보험료, 정부보조금, 가입자의 범위(민영보험의 보험 판매량과 동일) 등은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국가 주도로 결정된다. 사회보험 재정 상태는 시장에서의 성과가 아니라 법 또는 제도가 정하는 바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다.  

민영보험과 사회보험이 다른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업 운영의 책임을 전적으로 해당 기업이 부담하는 민영보험과 달리, 사회보험은 국가나 전체 가입자가 공동으로 진다. 따라서 사회보험에선 원칙적으로는 적자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사회보험 재정이 부족하면, 다음해의 보험료에 반영(보험료 인상)해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은 관련 법률에 따라 재정의 과부족 문제를 이듬해 보험료 수입에서 정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런 보험료 정산방식은 사회보험에서만 가능한 고유의 기능이고, 미래의 불확실성에도 재정의 균형과 보험금 지급의 안정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비밀무기다. 

그런 면에서 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고용보험 등과 같은 단기성 사회보험은 별도의 적립기금을 조성할 필요가 없다. 그해에 지출할 총비용을 그해 수입으로 충당하고, 부족분은 이듬해 보험료에 반영하면 그만이다. 재정상황에 따라 수시로 보험료를 조정해야 할 때 행정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규모 완충기금만 운영해도 된다.

민영보험과 다른 사회보험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ㆍ사학연금ㆍ군인연금과 같은 장기성 사회보험에서는 ‘저축성 보험’이라는 특성이 있어서 일정한 규모의 적립기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때도 반드시 기금을 100%로 적립해야 하는 건 아니다. 적립기금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각각의 공적연금제도는 재정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ㆍ공무원연금ㆍ사학연금의 예를 살펴보자. 국가는 5년마다 국민연금ㆍ공무원연금ㆍ사학연금의 ‘재정 계산’을 실시한다. 연금재정의 장기적 균형을 위해 보험료나 연금 지급에 관한 내용을 재조정할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다. 국가의 공권력이 국민의 노후보장을 위한 담보장치인 셈이다. 

이쯤에서 독일의 사례를 짚어보자. 1889년에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한 독일이 현재 운용하는 적립기금은 연금 지급액 기준으로 한달치의 10분의 1 수준이다. 기금을 쌓아두지 않고 연금을 곧바로 지급해서 소진한다는 얘기다. 

물론 독일도 처음 이 제도를 도입할 때는 완전한 적립방식을 채택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정부가 이 적립기금을 전쟁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장부에는 돈이 있지만, 실제로는 지급할 돈이 없는 상황을 겪은 거다. 독일이 적립기금을 쌓아두지 않게 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아직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나라의 적립기금은 안전할까.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공약으로 보육ㆍ임대주택ㆍ요양 등의 복지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국공채를 발행하고, 국민연금이 국공채에 투자하는 방식을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국공채는 국민이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빚이다. 쉽게 말해, 국민연금 적립기금을 빌려 사업을 추진하고 국민 세금으로 이자까지 채워 넣는 이상한 구조다.

 

우리는 종종 형식적인 국가의 지급보증보다는 실물적인 적립기금을 축적하는 게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적립된 기금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 주식에 투자한 국민연금의 적립기금을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느냐는 문제만 따져봐도 적립기금이 더 안정적인지는 의문이다. 

기금 운영구조 논의가 더 시급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은 공적연금이 세대간 형평성을 고려해서 운용되느냐는 거다. 현재 연금을 받는 세대는 지금 세대가 내는 보험료보다 적은 돈을 내고도 지금 세대가 받을 연금보다 더 많은 보험금을 받는다. 더구나 연금을 받는 이들 사이에서도 부유한 사람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장기근속이 가능(정규직)하고 많은 급여를 받는 이들이 보험료를 더 많이 내고 장기간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노령, 장애 또는 사망에 대해 연금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국민연금법의 설립 취지와도 맞지 않다. 보험료를 걷는 즉시 연금 수령자에게 나눠주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물가까지 고려할 수 있다. 현재 소득을 토대로 보험료가 책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무조건 독일처럼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정부와 정치인들이 지금처럼 쌈짓돈 빼먹듯 할 수 있는 적립기금 운영구조를 그대로 두고 ‘재정적자’나 ‘기금 고갈’을 들먹이면서 사회보험의 불신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거다.
글 : 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socwjwl@hanmail.net
정리 :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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