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엘리엇 ISD 소송 빌미, 누가 제공했나
[심층분석] 엘리엇 ISD 소송 빌미, 누가 제공했나
  • 김정덕 기자
  • 호수 287
  • 승인 2018.05.07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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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떠오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슈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엘리엇이 결국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염두에 두고 법무부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더스쿠프(The SCOOP)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꾸준히 엘리엇의 ISD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전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입증되고 있는 만큼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가 소송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왜 일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문제를 제기한 엘리엇의 ISD 소송은 예견된 일이었다.[사진=뉴시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문제를 제기한 엘리엇의 ISD 소송은 예견된 일이었다.[사진=뉴시스]

헤지펀드 엘리엇이 4월 13일 한국 법무부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제기하기에 앞서 협상을 통해 해결할 생각이 있는지 한국 정부에 의향을 물어본 거다. 엘리엇은 2일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연금공단까지 이어진 부정부패로 인해 엘리엇과 다른 삼성물산 주주들이 불공정한 손해를 입었고, 손해의 배상과 관련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요청했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2015년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했을 때처럼 “엘리엇으로부터 삼성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주장에서부터 “향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합병 관련 커넥션이 인정되면 엘리엇에 도움을 주는 것이니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까지도 나온다. ‘악한 외국계 투기자본’ 엘리엇으로부터 ‘국내 토종 자본’ 삼성을 지킨다는 게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이다. 과연 이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 일단 사실관계부터 따져보자.

◆ 文정부 빌미 제공했나 = 먼저 문재인 정부가 엘리엇의 중재의향서 제출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주장부터 보자.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건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국민연금을 압박한 사실은 지난해 6월(1심) 법원 판결을 통해 나왔다. 그해 11월(2심)에는 문 전 장관의 범행 동기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라는 판단까지 더해졌다. 그 결과, 엘리엇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연금공단까지 이어진 부정부패”라는 결론을 내렸다. 문재인 정부가 엘리엇 공세의 빌미를 제공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일부에선 “보건복지부 조직문화 및 제도개선 위원회(일명 적폐청산위원회)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인정한 것이 엘리엇 측이 중재의향서를 보낸 결정적 이유”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거다. 하지만 이는 사실 왜곡이다. 엘리엇이 법무부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건 4월 13일이고, 위원회의 발표는 그보다 5일 후인 18일에 나왔다. 엘리엇이 위원회 발표를 ISD 소송의 근거로 삼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더구나 위원회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못 박지 않았다. “국민연금이 중요한 의결권을 행사할 때에는 주식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거쳐야 하는데 이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규정했을 뿐이다.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문 전 장관은 국민연금에 합병 관련 입김을 행사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하면 손해’라는 내부 분석과 달리 문 전 장관의 뜻을 따랐다. 엘리엇이 문제삼는 건 이것이다.


◆엘리엇 피해 입었나 = 그렇다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결정으로 엘리엇은 손해를 입었을까. 이 질문은 중요하다. 엘리엇이 제기하려는 ISD 소송의 요건이기 때문이다. 손해가 없으면 소송 가치도 없다. 엘리엇이 손해를 보지 않았다고 보는 이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후 주가가 떨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원인이 단순히 합병 때문인지 알 수 없다. 합병 탓이라고 하더라도 그에 따른 주가 하락분을 정확하게 계산하긴 힘들다.” 쉽게 말해, 엘리엇의 손해를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손해를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손해가 없었다는 걸 증명하는 건 아니다.

외국계 헤지펀드도 주주로서의 권리가 있다.[사진=뉴시스]
외국계 헤지펀드도 주주로서의 권리가 있다.[사진=뉴시스]

사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주주’로서 합병을 반대하는 게 옳았다. 삼성물산의 주당 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내부 회의의 결론도 그랬다. 삼성 측이 제안하는 합병 비율대로 합병할 때 3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ISS나 글라스루이스 같은 세계 1·2위의 의결권 자문사들은 “합병 과정이 불투명하다”면서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하기 전에 ‘합병 비율’이라도 조율했어야 했다.

하지만 문 전 장관의 입김을 받은 국민연금은 그러지 않았다. 합병 비율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던 엘리엇으로선 납득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설상가상으로 “합병을 멈춰 달라”면서 제기한 엘리엇의 가처분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엘리엇이 실체적인 손실을 입었는지 따져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엘리엇은 투기자본인가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경제학) 교수는 최근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에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은 것을 두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엘리엇이 현대차의 미래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엘리엇 같은 헤지펀드는 주가를 띄운 뒤 차액을 챙겨 나가면 그만이다.” 엘리엇이 ‘돈만 밝히는 먹튀 자본’이라는 건데,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그 행위에 감정을 이입해 선악으로 구분하는 게 옳은지는 의문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한성대(무역학) 교수로 재직하던 2015년 6월 더스쿠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의 룰대로 돈을 좇는 헤지펀드를 어떻게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있겠는가. 헤지펀드에 대가를 치른 후에라도 바꿀 부분이 있으면 바꾸고 변해야 한다. 그런데 국내 대기업들은 여전히 헤지펀드를 선과 악으로만 이분화하는 데 급급하다. 하지만 헤지펀드는 선도 악도 아니다. 투자가 결과를 결정지을 뿐이다.”

기업의 미래에 별다른 관심이 없기는 개미투자자도 매한가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말까지 코스피와 코스닥 전체 주식 거래량(1955억주) 가운데 48.01%는 데이트레이딩(단기투자) 거래였다. 이 중 개인투자자 비중이 96%에 달했다.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절반가량이 건전한 투자가 아니라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였고, 거의 대부분이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이뤄진다는 얘기다. 엘리엇 같은 헤지펀드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감정을 빼고 투자자 이익의 관점에서만 보면 엘리엇이 불합리한 손실을 보상하라는 건 당연하다. 다만 헤지펀드는 자본의 규모가 더 커서 자본이 들어왔다 빠져나가면 타격이 더 크다는 게 문제다.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 헤지펀드가 헤집고 다니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이럴 때 올바른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무어냐가 남는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 이사는 2015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성과 엘리엇의 분쟁은 기업(삼성)의 지배구조가 글로벌 위상에 맞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면서 이렇게 조언했다.

“한국에선 ‘지배구조가 취약하다’고 하면 그걸 ‘지배주주의 지분이 적다’고 받아들인다. 그렇게만 여기면 발전의 여지가 없다. 지배구조란 시장 참여자가 각자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측정하는 척도다. 시장 참여자란 기업 경영진과 이사회뿐만 아니라 주주, 각종 법률과 규제 등 사회적 시스템까지 포괄한다.”

 

경영진이 독단적으로 판단할 게 아니라 이사회나 주주와 끈끈하게 연대하면서 기업을 경영해야 하고, 그래야 지배구조가 건전해진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다면 헤지펀드의 공격은 언제라도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엘리엇이 늦게 움직인 이유 = 엘리엇은 문 전 장관이 구속될 때에도 ISD 소송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움직인 걸까. 엘리엇 측 내부사정을 잘 아는 익명의 인수·합병(M&A) 전문가는 지난해 더스쿠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엘리엇은 세번의 패배를 겪으면서 ‘한국=삼성공화국’이라는 걸 크게 실감했을 거다. 법원의 비상식적인 판결에 실망도 컸을 거다.” 충분히 근거가 쌓일 때까지 신중하게 기다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더구나 현재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도 함께 건드리고 있다. ISD 소송을 거론하면서 현대차그룹을 압박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난 1일에는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 비율을 만들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장부를 고의적으로 꾸민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엘리엇 입장에서 ISD 소송은 그대로 진행해도, 아니면 협상카드로 써도 좋은 꽃놀이패라는 얘기다. 일부에서 ‘절묘한 타이밍’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ISD 소송 누가 유리할까 = 다시 복기復棋해보자.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개입했다. 삼성물산의 주주인 엘리엇은 어떤 방식으로든 손해를 봤을 공산이 크다. 당연히 엘리엇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엘리엇도 약점은 있다. 지난 2일 검찰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엘리엇 담당자들에게 출석을 통보했다.

2015년 4~5월 사이에 삼성물산 지분 2.17%를 확보한 엘리엇은 5월 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발표된 이후부터 지분을 빠르게 늘렸다. 6월 2일엔 4.95%, 6월 4일엔 7.12%로 늘었다. 검찰은 이틀 사이에 2.17%나 되는 삼성물산 주식을 어떻게 장내에서 매입했을까라는 데 의문을 갖고 있다. 물량은 대략 340만주로 당시 주가 기준 6188억원 어치다. 대량보유 공시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엘리엇이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면 애초 엘리엇의 주주권 자체가 무효화될 수 있다.

엘리엇 반격의 핵심은 오너 일가들의 이익만 대변하는 자본시장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있다.[사진=뉴시스]
엘리엇 반격의 핵심은 오너 일가들의 이익만 대변하는 자본시장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있다.[사진=뉴시스]

엘리엇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전 정부와 국민연금의 부당 개입과 관련해 손해배상을 추진하고 있다는 걸 밝힌 지 불과 몇시간 만에 2년 동안 중단돼 있던 검찰 수사 재개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엘리엇 측은 “한국법이 허용하는 방식으로 합법적인 스와프 거래를 활용했다는 점을 과거 검찰 조사에서도 충분히 설명했고, 이해를 돕기 위해 세부 자료도 제출해 성실히 조사에 임했다”면서 “그래서 2년 동안 위법성도 나오지 않아 잠정 중단된 수사가 다시 시작됐다는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2년간 끌었지만 검찰이 수사결과를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ISD 소송의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엘리엇 공격과 방어 = 엘리엇은 아직 우리 정부를 공격하지 않았다. 주주로서 피해를 입었다는 것만 강조하고 있다. 다만, 재벌 오너 일가의 이익은 잘 보호해주는 국내 증시 시스템이 일반주주나 소액주주는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 문제는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상식 있는 일반주주와 소액주주들이 틈만 나면 해오던 주장이다. 엘리엇의 ISD 소송과 무관하게 ‘기울어진 증시’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거다.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격을 ‘전체주의 시각’으로 봐선 안 되는 이유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주장을 다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삼성 측은 후계자 승계 과정을 주주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단 한번도 거치지 않았다. 엘리엇은 이를 이용해 삼성을 공격하는 것이고, 그 빌미를 삼성이 제공하고 있다. 삼성이 변화하지 않으면 더 큰 비용을 치를 것이다.” 빌미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삼성이 제공한 거다. 팩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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