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아버지, 그 가슴 저린 이름
[윤영걸의 有口有言] 아버지, 그 가슴 저린 이름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287
  • 승인 2018.05.0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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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맞게 아버지상 다시 세워야 할 때
영화 당갈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상이 아닐지 모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당갈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상이 아닐지 모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당갈’은 두 딸을 인도 최초의 국제대회 여성 레슬링 금ㆍ은메달리스트(2010년 영연방 경기대회)로 키워낸 가족의 성공스토리를 감동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아버지이자 코치인 마하비르 싱 포갓은 가부장적 리더십과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남녀차별이 심한 인도에서 딸을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내지요.

그런데 문득 영화는 영화일 뿐, ‘당갈’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아버지상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한 정신력이 뒷받침돼야 할 레슬링 경기에서는 일시적으로 통할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야 하는 21세기 가족에게는 이런 아버지는 설 자리가 없을 겁니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의 ‘골프 대디’ 아닐까요? 박세리ㆍ박인비 등 세계 정상을 경험한 선수들 뒤에는 하나같이 ‘골프대디’가 있었지요. ‘고보경’의 재능을 읽어내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를 만든 것도 아버지였습니다. 

자식의 성공이 곧 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핏줄의식과 근면ㆍ집념이 코리안 골프 대디의 특징이지요. 하지만 지나친 간섭과 성적지상주의가 이런저런 후유증을 낳기도 했습니다. 리디아 고는 아버지가 스윙코치 캐디 클럽에까지 지나치게 관여하면서 스럼프를 겪었고, 미셸 위는 한때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일부러 경기를 망친다는 뒷담화가 나돌기도 했으니까요. 

해마다 5월 어버이날(8일)이 오면 세상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집니다. 필자 또한 나이가 들고 보니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끼게 된 것이겠지요. 특히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가 겪었을 외로움을 이해 못해 드린 점이 회한으로 남습니다. 아버지와 좀 더 소통하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눠야 했는데 어머니에 비하면 훨씬 데면데면했으니까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은 파란만장한 아버지의 삶에 대해 좀 더 기록에 남길 걸 하는 아쉬움 또한 큽니다.

노후대책하면 은퇴자금 마련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추억해보면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신神은 전체 가구의 4분의 1 가까이를 독신 세대주로 만들어 놓고, 혼자서는 행복을 느낄 수 없도록 ‘교묘하게’ 설계해 놓았습니다.  

그 답은 가족과 이웃 아닐까 싶습니다. “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은 개인의 마음 상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관계의 문제일 겁니다. 별거에 따른 불행은 실직이 주는 고통보다 평균 5배나 더 심각하다고 합니다. 행복의 원천은 누가 뭐래도 가족과 이웃입니다.

다산 정약용이나 퇴계 이황 같은 위대한 인물들은 가족에게 큰소리치며 군림하는 가장이 아니라 따뜻한 여성형 리더십의 소유자였지요. 다산은 귀양을 가서도 절절한 편지로 집안의 소소한 일까지 챙기고 자식들을 훈육했습니다. 자식의 고뿔까지 걱정할 정도로 가족 간의 소통을 중시하고, 식구들이 불행해질까 가슴 졸이며 살았지요. 21세기 아버지가 가야 할 길은 바로 ‘엄마 같은 아빠’일 듯합니다. 

미국ㆍ영국ㆍ멕시코ㆍ중국ㆍ일본은 매년 6월 셋째주 일요일이 아버지 날이고, 다른 주요국들도 아버지를 위한 날을 따로 정해놓고 있지요. 한국은 원래 5월 8일이 ‘어머니날’이었는데 1973년에 ‘어버이날’로 바꿨습니다. 기념일 하나가 뭣이 대수냐고 하시는 분이 있겠지만 아버지를 기리는 날조차 따로 없는 것은 추락하는 한국 아버지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아버지상을 시대에 맞게 다시 세워야 할 때입니다. 사랑 대신 권위로 자녀들 위에 군림하는 아버지는 가족 안에서 늘 타인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요. 아버지는 무엇보다 힘든 부양자 역할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깨우쳐야 합니다. 아무리 옳다고 해도 자식에게 강요하지 말고, 대화하고 보살피고 어울리는 역할을 남자들이 되찾아 오자는 겁니다.

가시고기는 알과 새끼를 사력을 다해 보호하다가 새끼가 독립하면 최후를 맞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아버지 역시 후계자인 자식에 의해 거세되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을 몰아내려는 자식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신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어머니의 사랑은 조건 없이 베풀면 되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결국 자신이 소멸됨으로써 완성됩니다. 그래서 아버지라는 이름은 세월이 갈수록 어머니라는 이름 못지않게 외롭고 가슴 저려오는지 모릅니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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