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 없는 농협 개선할까

NH농협금융지주의 새로운 수장에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이 취임했다. 반응은 엇갈린다. “엘리트 출신 관료인 김 회장이 농협금융지주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과 “농협의 문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혹평이 엇갈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부진한 실적, 농업인 없는 농협, 농협중앙회와의 관계 등 김광수 신임 회장의 과제를 짚어봤다.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이 신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취임했다.[사진=뉴시스]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이 신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취임했다.[사진=뉴시스]

지난 4월 30일 취임사를 읽어 내려가는 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신임 회장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김광수 회장은 준비된 취임사를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읽어내려 갔다. ‘모피아의 적자嫡子’ ‘엘리트 관료’로 불리는 인물인 만큼 정확했다. 언뜻 ‘적임자가 맞느냐’는 논란을 불식시킬 만 했다. 하지만 ‘정권은 바뀌어도 모피아는 영원하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는 그는 ‘금융지주’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장 시절(2011년) 저축은행 사태에 휘말려 야인野人이 된 이후에도 그는 금융감독원장, 한국거래소 이사장 후보(출마 후 사퇴)로만 하마평에 올랐다. 농협금융지주 관계자는 “김 회장이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 당시 농협, 수협 등의 협동조합과 국책은행을 비롯한 특수은행에 관한 업무를 담당했다”며 “농협문화와 조직, 사업 전반을 이해하는데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찰자 입장과 안살림까지 챙겨야 하는 회장의 임무는 다를 수밖에 없다. 김 회장이 금융정책과장으로 업무를 본 건 2006년이 마지막이다. 그를 두고 ‘전문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농협 문화를 이해하는 건 어려울 것’이라는 비평이 쏟아진 이유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확함을 넘어 치밀한 취임사’는 많은 농협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면엔 ‘다른 모습’도 있었다.

취임식이 끝난 뒤 그를 둘러싼 기자들은 숱한 질문을 쏟아냈다. 준비된 취임사가 빠진 자리는 어색한 ‘설익음’이 채웠다. “아직 업무파악을 마치지 못 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이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농협을 잘 알고 금융 전문성을 갖췄다는 신임 회장의 말치곤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복잡한 농협의 현실을 파고들면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그가 농협금융회장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무엇보다 주요 금융지주 중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경영지표를 개선해야 한다. 지난해 농협금융은 당기순이익 1조1272억원(농업지원사업비 포함 기준)을 달성했다. 2012년 지주사 출범 이후 최대 실적이다. 하지만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KB금융지주는 농협금융의 당기순이익보다 3배가량 많은 3조311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했다.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도 각각 2조9177억원, 2조368억원에 달했다. 농협금융은 ROA(0.23%), ROE(4.78%) 부문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국내 4대 금융지주 중 가장 낮은 하나금융의 ROA 0.58%, ROE 8.77%와 비교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건전성 지표도 꼴찌다.

농협금융의 지난해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05%로 금융지주(신한 0.63%, KB금융 0.69%, 하나금융 0.77%) 가운데 가장 높았다. 반대로 대손충당금 적립비율은 79.71%로 가장 낮았다. 
김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다른 금융지주에 비해 이익규모뿐만 아니라 ROA, ROE 등 수익성 지표가 낮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이렇다 할 전략이나 플랜은 제시하지 않았다.

주요 지주사 중 수익성 ‘꼴찌’

비은행 계열사의 실적 개선 문제도 김 회장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지난해 농협금융지주의 수익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61.96%에 이른다. NH투자증권이 33.22%로 뒤를 이었지만 생명보험·손해보험·캐피탈·저축은행 등의 금융계열사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수익의 불균형 현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고 있다. 일례로, 2015년 36.2%에 불과했던 은행의 비중이 지난해 61.96%로 높아지는 동안 손해보험의 비중은 34.41%에서 8.1%로 쪼그라들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내로라하는 금융관료들이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도맡아 왔다”며 “하지만 수익성은 여전히 업계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십수년 전의 경험이 사업환경과 문화가 바뀐 현재에도 먹힐지는 의문”이라며 “현장 경험이 전혀 없어 거대한 금융조직을 총괄하고 경영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회장의 과제는 또 있다. ‘농심農心 가슴에 안고 농민農民 곁으로’라는 슬로건을 갖고 있는 농협이 정작 농업인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의 저금리 대출자(2017년 8월 말 기준) 상위 200명(신용대출·담보대출 각 100명)에 농업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앞에선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떠들면서 실제론 농업인을 외면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취임사에서 김 회장은 이 문제를 중요하게 거론하지 않았다. 김 회장은 “농업·농촌을 지원하는 범농협 수익센터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는 원론적인 계획만 제시했다. 김 회장이 농협중앙회와 어떤 관계를 설정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농협금융지주의 대주주는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농협중앙회다.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농협중앙회와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농협중앙회가 금융지주에 과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12월 이대훈 NH농협은행장을 선임할 때 ‘시나리오가 있는 것’ 같은 묘한 행보를 보였다. NH농협은행장 선임되기 직전 이 행장이 임기가 1년이나 남은 농협상호금융 대표 자리를 내놓자, 농협중앙회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일정을 뒤로 미뤘다. 그 덕분에 이 행장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 행장은 단독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NH농협은행장에 선임됐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농협금융지주에는 100% 지분을 가진 농협중앙회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이전 회장들의 가장 큰 불만도 농협중앙회의 경영간섭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지주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할 은행은 이미 중앙회의 영향력 아래 있다”며 “결국, 농협중앙회 회장과 어떻게 교감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라고 말했다.

빠른 업무 파악 필요해

김 회장은 취임식 이후 “업무파악을 빨리해 100일 기념 간담회를 일정보다 앞당길 것”이라며 “빠른 시일 내 경영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농협 밖에서 살았던 사람에게 100일은 긴 시간이 아니다. 100일 안에 조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밑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그는 가시밭길을 걸을지 모른다. 그는 이제야 준비를 시작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는 2년에 불과하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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