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쟁 탓에 1년 넘게 ‘낮잠’

소상공인의 생계가 달려 있는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안’이 지난해 발의됐지만 국회서 낮잠만 자고 있다.[사진=뉴시스]
소상공인의 생계가 달려 있는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안’이 지난해 발의됐지만 국회서 낮잠만 자고 있다.[사진=뉴시스]

김기식 금감원장이 ‘셀프후원’ ‘외유성 출장’ 논란으로 취임 14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댓글로 여론을 조작한 ‘드루킹 사건’에 여당 의원이 연루됐다며 야당은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극적인 이슈도 있었다. 11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남북정상은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 모두 4월에 있었던 일이다. 연일 이슈가 터졌고, 한숨과 환호가 교차했다. 

그런데 아는가. 여야가 한치의 양보 없이 정쟁을 일삼고 온 국민이 역사적인 순간에 감동하는 그 순간, 민생법안들은 국회에서 긴 잠을 잤다. 무엇보다 일몰이 코앞으로 다가온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대안으로 꺼내든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안’은 1년째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5월이 됐지만 상황이 변할 것 같지 않다. 정쟁의 늪에 빠져 있는 여야 금배지들에게 민생은 늘 뒷전이기 때문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 정상화 시한이라고 밝힌 지난 8일에도 여야가 하루종일 마라톤 회동을 이어갔지만 결국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더스쿠프(The SCOOP)는 묻는다. “소상공인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인데, 높으신 금배지들께선 지금 뭐하시나요?”

 

4월에 이어 5월 임시국회도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사진=뉴시스]
4월에 이어 5월 임시국회도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사진=뉴시스]

김기식 금감원장 사퇴, 드루킹 댓글조작, 대한한공 갑질 파문…. 각종 이슈들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여야도 연일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산더미처럼 쌓인 법안들은 뒷전인 채 말이다. 그 가운덴 소상공인의 생계가 달려 있는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안’도 들어있다. 지난해 발의된 이 특별법안은 낮잠만 자고 있다.

1979년 정부는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를 시행했다. 생산공정이 비교적 단순하거나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지 않는 품목, 소규모 투자로 생산이 가능한 품목 등 특정업종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하는 제도였다. 고유업종으로 지정된 사업 분야는 대기업의 신규 참여를 원칙적으로 금지,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제도는 공감대를 얻는 데 실패했다.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는 점, 중소기업이 기술개발이나 품질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점 등이 논란을 부추겼다. 결국 제도는 2006년 폐지됐다.

장애물이 사라지자 대기업은 기다렸다는 듯 골목을 파고들었다. 이훈(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된 후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재벌그룹의 계열사가 477개 새롭게 생겼다. 이중 81.1%에 해당하는 387개가 생계형 소상공인이 주로 영위하는 사업영역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다시 든 게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다. 동반성장위원회는 현재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부터 중소기업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2011년 도입한 제도다. 골자는 다음과 같다. 특정 품목ㆍ서비스에 대기업의 사업 진출을 제한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되면 대기업은 3년간 관련 업종 사업을 철수 또는 축소하거나 시장 확장과 진입을 자제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권고사항이다. 법적인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강제력이 없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소상공인들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법제화’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ㆍ여야 ‘특별법’ 강조

실제로 소상공인연합회는 최근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 특별법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다. 지난해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중 27번 항목을 보자. 

“2018년부터 적합업종 해제 품목 중 민생에 영향이 큰 업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2017년 중 특별법 제정)하고, 2018년부터 복합쇼핑몰에 대해 대형마트 수준의 영업제한 등을 통해 골목상권을 보호한다.” 이번엔 28번 항목이다. “2017년에 지역상권 내몰림 방지 및 생계형 적합업종을 법제화한다.”

 

여야 모두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지만 계류 중이다.[사진=뉴시스]
여야 모두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지만 계류 중이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정부의 계획과 달리 이 특별법안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지난해 1월 2일 이훈(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표했지만 별다른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 법안엔 ‘중소기업청장은 대기업 등이 사업을 인수ㆍ개시 또는 확장함으로써 해당 업종을 영위하고 있는 다수 소상공인의 영업이 위축되거나 현저하게 위축될 우려가 있는 사업영역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ㆍ고시함(제7조)’ ‘대기업 등은 생계형 적합업종의 사업을 인수ㆍ개시 또는 확장해선 안 되며, 위반시 중소기업청장은 시정명령을 거쳐 이행 강제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함(제8조~10조)’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그해 12월엔 야당 의원들도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정유섭(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안건과 큰 틀에선 같다. 정 의원은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의 경우, 신청대상 등을 제한하고 있지 않아 무분별한 신청이 우려된다”면서 이를 구체화하는 내용을 법안에 추가했다. 이 안건 역시 12월 이후 잠만 자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안을 들고 나온 건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보호막이 뚫릴 위기에 있어서다. 현재(4월 기준)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제조업 54개. 서비스업 19개, 총 73개 품목이다. 2016년부터 적합업종 해제 품목이 발생해 지난해에만 제조업 49개 품목의 권고기간이 만료됐다. 1년 간 한시적 유예기간을 두기로 결정했지만 이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 

 

정쟁에 묻힌 소상공인의 외침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지난 3월 국회 앞에서 대규모 기자회견을 열고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로 대기업의 무분별한 영세 소상공인업종 침탈이 조금 늦춰지긴 했지만 권고기간이 하나씩 만료되면서 대기업이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며 “49개 품목 지정기간 만료일인 6월 말 이전에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선 4월 임시국회 안에 반드시 특별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4월 임시국회는 문을 열었다가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하고 도로 닫았다. 김기식 금감원장 사퇴, 드루킹 사건 등으로 여야가 정쟁에 휩싸여서다. 5월 임시국회도 소집은 됐지만 여야 간 합의에 실패, 또다시 파행을 걷고 있다. 야당 대표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신세계, 롯데, 다이소 등 소상공인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 대상들은 ‘괜히 존재감을 드러냈다가 규제의 타깃이 될까’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다. 하지만 긴장감이 풀리면 언제 또 슬금슬금 영세 소상공인들의 밥그릇을 빼앗을지 모른다. 정쟁에 빠져 정작 중요한 논의는 뒷전인 금배지들 때문에 서민들의 아픔만 깊어간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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