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part2] 김승연 구속 후폭풍 ‘실형 공포’

▲ 징역 4년 6월, 벌금 20억을 선고받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2월 서울 서부 지방법원에서 열린 최종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응급차로 옮겨타고 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최근 검찰이 대기업 총수들에게 중형을 내리고 있어 재판을 앞둔 대기업들이 긴장 속에 몸을 떨고 있다. 8월 16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법정구속 판결로 재계는 당혹감을 넘어 실형 공포에 휩싸인 모습이다. 일부에서는 아직 재판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끝까지 가 봐야 안다며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기도 했다.

재계가 단 하나의 재판으로 벌집 쑤셔놓은 듯 혼란에 빠진 것은 태광그룹 이호진(49) 전 회장에게 구형된 실형이 발단이 됐다. 그동안 총수들의 불법행위 재판은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으로 대부분 풀려나는 게 공식이었는데 이 회장의 실형 구형으로 이 구도가 깨진 것이다.

올해 2월 21일 서울서부지법은 14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 6개월과 벌금 20억원의 중형을 선고했다. 모친인 이선애 전 상무(84)에게도 징역 4년과 벌금 20억원이 선고됐고 그 자리에서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간암을 앓고 있는 이 전 회장과 고령이라는 이 전 상무의 항변에도 감형 사유가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에 없이 완고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법원이 중형을 선고하면서 재벌들의 긴장감도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이 전 회장 이후 재판을 받는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총수가 재판을 받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 전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되는 것을 보고 최근 들어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하게 됐다”며 “예전 같으면 병중이거나 고령일 경우 대부분 선처를 받곤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재판 앞둔 총수들 “어쩌나”

 
예전 총수들은 지은 죄에 비해 대부분 집행유예를 받는 등 사실상 특혜를 받아왔다. 그럴 때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뼈아픈 외침이 회자되곤 했다.

많게는 수조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은 사회 기여 등을 이유로 모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또 2년도 못돼 모두 특별사면 됐다.

지난 3일 첫 재판이 시작된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2003년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기소됐지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게 다였다. 하지만 이호진 전 회장 이후 재판을 받는 기업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기업에 호의적이던 법원이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 해도 별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미 3월 2일 회사 돈을 빼돌려 선물투자에 썼다는 혐의로 기소된 SK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첫 재판에서도 법원의 기류 변화는 감지됐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이원범 부장판사)는 오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최태원 회장과 구속 기소된 최재원 부회장 등에 대해 첫 공판을 진행했다.

최 회장은 지난 2008년 SK 계열사가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게 2800억원을 투자토록 한 후, 497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또 지난 2005년부터 5년간 계열사 임원에게 매년 성과급을 과다지급한 뒤 이를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139억5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있다. 특히 최 부회장은 지난 2010년 베넥스 투자금으로 자신의 IFG 차명주식 6500여주를 적정가의 8배인 230억원에 매입토록 해 201억원 상당을 배임한 혐의도 받고 있었다.
 

검찰은 펀드 투자를 가장한 신종 횡령 범죄라며 최 회장을 옥좼다. 또한 “이 사건은 피고인들이 사전에 공모해 베넥스를 사금고화한 것은 죄질이 중하다”며 “죄가 없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은 재벌기업의 비자금을 용인해주고, 횡령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최 회장이 임원들의 성과급 일부는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별도 오피스텔에 현금으로 관리하며 일부를 딸의 해외유학경비로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 회장은 전에 없이 몸을 낮춘 채 “많은 분들께 걱정을 끼쳐 드려서 대단히 송구스럽다. 제가 부덕한 소치라고 생각한다. 성실히 재판에 임해 오해를 풀고 싶다”고 말했다. 재판이 끝나기 직전 진행된 피고인 모두발언에서 “제가 왜 이런 오해를 받을까 하는 데 대해 속으로 자괴감을 느낀다. 어쨌든 저의 경영상 관리소홀로 벌어진 일인 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반성하겠다”고도 말했다.

예전 총수들이 혐의를 부인하고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구한다는 짤막한 말로 대신했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재계는 “이와 같이 달라진 판결 양상은 정재계에서 불고 있는 경제민주화 바람의 상징적 결과”라고 말한다. 지난해 말 불어 닥친 재벌의 골목상권 진출이나 정치권의 재벌개혁 논란도 일정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인수합병(M&A)을 추진하던 하이마트도 검찰 수사로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우여곡절 끝에 M&A는 성사분위기지만, 대검 중수부가 하이마트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의 재산 해외도피와 탈세의혹을 수사 중이다.

국세청이 나설 일에 중수부가 투입된 것 역시 관심을 끌고 있다. 국부유출이나 탈세가 국가에 영향을 끼치는 경제범죄라서 그렇다지만 최근 엄격해진 사법부 분위기상 일벌백계 차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LIG그룹도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다. 300억원대 CP(기업어음) 부정발행 의혹을 받고 있는 구자원 LIG 회장과 구본상 부회장 등도 검찰수사와 재판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검찰에 따르면 구 회장 등은 LIG그룹이 자회사인 LIG건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을 앞두고 지난해 2월 28일부터 3월 10일까지 금융기관에서 약 242억4000만원의 기업어음을 부정 발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LIG건설의 발행어음 1836억원 가운데 LIG그룹이 법정관리 신청사실을 미리 알고도 242억4000만원의 기업어음 발행을 지시해 어음을 인수한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은 것으로 보고 있다.

C&그룹 임병석 회장은 1월 5일 1조원대 대출사기, 횡령, 배임 혐의로 2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임 회장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회사 돈 130억여원을 횡령해 계열사에 900억원대 손해를 안기고 금융권에서 1704억원을 사기대출 받는 한편 C&중공업 등 계열사 주가조작을 통해 245억원을 챙긴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총수 재판 진행 중인 기업들 전전긍긍

 
검찰은 지난해 10월 임 회장을 긴급 체포한 뒤 범행 여부와 돈 흐름을 추적, 같은 해 11월 그를 처음 기소했다.

이밖에 300억 원대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풀려난 담철곤 오리온 그룹 회장은 대법원의 최종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1심서 징역 3년에 법정구속 됐다가 올 1월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재계 관계자는 “죄가 있다면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만 경제 위기로 강력한 오너십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에 대기업 총수가 법정 구속돼 안타깝다”며 “앞으로의 재판에서 경제민주화로 인해 기업인들이 지나치게 중한 형량을 선고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직 재판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업의 사회적 기여도 등을 따져봤을 때 향후 다른 판단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며 “선거철 민심을 고려한 사법부의 고심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리=정다운 기자  justonegoal@thescoop.co.kr|@itvfm.co.kr
김훈기ㆍ박문호ㆍ김영욱 뉴시스 기자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