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대기업 규제 비웃는 이유

기울어진 유통산업을 바로잡기 위해 유통대기업을 규제한 지 벌써 8년. 하지만 골목상권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고 규제의 대상인 대기업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정부의 엉성한 규제안을 대기업이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정부 규제 위에서 춤을 추는 유통 대기업의 실태를 취재했다.

유통산업발전법이 유통대기업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사진=뉴시스]
유통산업발전법이 유통대기업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사진=뉴시스]

“2000년대 초만 해도 골목상권 주인들이 거리로 나온 적은 많지 않았다. 대형마트가 인근에 들어서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유통망을 이용한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급속도로 퍼져나가면서 골목상권이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골목상권 상인들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 계기다. 2010년 SSM규제법, 2012년 유통산업발전이 개정돼 대형마트와 SSM을 규제하기 시작했지만 크게 바뀐 건 없다. 대기업은 언제나 규제를 교묘히 빠져나갔다.”

소상공인 단체 관계자의 푸념이다. 골목상권,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있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는 거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형 유통기업의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마련한 규제는 허술했고 이를 뚫는 유통 대기업들의 수법은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무용지물 된 SSM규제법 = 2000년 중반 SSM이 대도시는 물론 지방 중소도로까지 확대하면서 지역상인과의 마찰이 잦아졌다. 영세상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2010년 12월 전통시장 500m 내에는 대형마트와 SSM의 출점을 금지하는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SSM을 사업조정신청 대상으로 지정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법(상생법)을 개정했다. 시행 초 효과는 있었다.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은 2011년 1월 SSM 규제법 시행 이후 두달 동안 SSM의 월 평균 출점수가 기존 13건에서 6건으로 크게 감소했고 밝혔다. 


규제의 효과는 길지 않았다. 전통시장 500m 밖에는 SSM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사업조정신청 대상을 점포 개점 비용의 51% 이상을 대기업이 부담한 ‘위탁형 가맹점’으로 한정한 허점도 파고들었다. 유통 대기업들은 가맹점주의 비용을 늘린 ‘순수형 가맹점’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그 결과, 2010년 889개였던 SSM의 점포수는 2013년 1179개로 36.2%나 증가했다. 

오프라인 안 되면 온라인 =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유통업계를 개선하기 위해 2012년 1월 정부는 더 강력한 규제 정책을 내놓았다.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을 자정에서 오전 8시까지 제한하고 매월 1~2일의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는 내용의 ‘유통법 개정안’이었다. 대형마트는 손님이 가장 적은 평일 수요일을 휴업일로 정했다.

결국, 규제의 실효성 논란이 발생했고 2013년 영업시간 제한 2시간 확대, 의무휴업일은 매월 2회(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로 확대했다. 유통업계는 “소비자가 불편함을 겪는다” “매출액이 급감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유통업계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법제연구원이 일반소비자 19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66.7%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에 특별한 불편함이 없다’고 답했다.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도 여전하다. 대형마트 시장점유율이 45.8%(2015년 기준)에 이르는 이마트의 매출액은 유통법이 강화된 2013년 13조353억원에서 지난해 15조8767억원으로 21.8% 증가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4762억원에서 6279억원으로 31.8%(1517억원) 늘어났다. 규제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유통 대기업들은 허술한 규제의 사각지대를 파고든 사례는 또 있다. 온라인이다. 대형마트의 온라인몰은 휴무일에도 아무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구축해 당일 배송도 가능하다. 2014년 5210억원에 불과했던 이마트몰의 매출액이 지난해 1050억원으로 두배 가까이 증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마트몰의 대형마트 온라인 시장점유율은 46%에 달한다”며 “가격경쟁력 등을 감안하면 이마트몰의 시장점유율은 70%대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의 온라인 유통몰에선 라면부터 야채 등 신선식품까지 모든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며 “배송도 빨라 의무휴업일 전날 주문하면 다음날 물품을 받을 수 있는데 의무휴업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반문했다.

마트를 고집하지 않으면 의무휴업제를 비웃는 편법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규제가 낮은 다른 형태의 유통 채널을 선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유통법은 대형마트와 SSM을 주요 규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 대규모 점포의 범위는 대형마트로 한정했다. 복합쇼핑몰, 아웃렛, 편의점 등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대형마트만큼 골목상권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규제에서는 자유롭다는 얘기다.

울타리 밖에 있는 유통 대기업 = 대형마트·SSM과 비슷하지만 유통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규제를 받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표적인 것이 변종 SSM인 신세계의 ‘이마트24’다.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대부분을 팔고 있다. 사실상 SSM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마트24는 규제 울타리 밖에 있다. SSM이 아닌 ‘편의점업’으로 등록돼 있어서다. 

대형마트는 물론 시장지배력이 강한 대형유통기업도 규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대형마트는 물론 시장지배력이 강한 대형유통기업도 규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이케아’도 마찬가지다. 이케아는 복합쇼핑몰 부럽지 않은 대형 매장을 갖추고 있다. 이케아 광명점의 면적은 13만1550㎡(약 4만평)에 이른다. 이보다 작다는 고양점의 면적도 5만2199㎡(약 1만5000평)다. 부대시설로 푸드코트를 운영하고 다양한 생필품을 팔고 있지만 업종이 가구전문점으로 등록돼 있는 이케아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

신흥 유통공룡으로 떠오르고 있는 다이소도 규제 사각지대에서 춤을 추고 있다. 다이소는 전국 매장 수는 1200여개에 이른다. 최근에는 매장 대형화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3만여개의 상품을 판매하면서 소상공인의 시장을 뺏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케아·다이소 규제할 수 있나

하지만 다이소는 유통법상 ‘대규모전문점’으로 분류돼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의무 휴업 등의 규제에서 자유롭다. 유통법의 취지는 이렇다. “유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과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고, 건전한 상거래질서를 세움으로써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한다.” 대기업이 피해나갈 수 있는 큰 구멍이 있는 법률이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대기업의 꼼수와 편법이 통하지 않는 촘촘한 규제안이 필요한 이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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