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part3] 먹히지 않는 재계의 볼멘소리

▲ 회삿돈 횡령ㆍ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SK 최태원 회장이 8월 22일 3차 공판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출두하고 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화는 애써 추진하던 굵직한 사업들에 제동이 걸리게 생겼다며 울상을 짓는다. 그러나 경영공백이나 경제악화 핑계는 더 이상 선처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재벌 총수에게는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되던 관례가 깨졌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한 서경환 부장판사는 “실형선고는 2009년 도입한 양형 기준에 따른 것”이라며 “경영공백이나 경제발전 기여 공로는 집행유예를 위한 참작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역대 최초로 10대 그룹의 총수가 실형을 받자 재계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8월 16일 “경제도 어려운데 기업인을 법정구속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전경련은 공식 논평보다는 ‘전경련 관계자 멘트’를 통해 짧은 입장을 전달했다.

대한상의는 “공식 논평은 없다”면서 “기업인에 대해 실형을 내린 것은 기업 사기나 경제를 살리려는 의욕을 위축시킬 수 있고 국가경제에 미칠 영향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화측은 오너의 부재로 한화가 최근 야심차게 추진해온 굵직한 사업들도 당분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승연 회장이 가장 야심차게 추진한 사업은 이라크 신도시 프로젝트다. 김 회장이 직접 이라크를 오가며 사업을 진두지휘한 결과, 한화는 국내 단일 사업수주로는 가장 큰 규모인 80억 달러(9조4000억원)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이번 수주에 따라 한화는 향후 전개될 이라크 100만호 주택건설 사업과 철도·항만·도로 등 기간사업, 발전소·정유공장·석유화학공장 등 생산설비, 신도시에 건설되는 학교에 태양광을 활용한 발전설비 공사에도 참여키로 했다. 이르면 8월 중 8000억원 규모의 선수금을 받을 예정이다.

▲ 재벌총수는 지금껏 솜방망이 처벌을 받아왔다.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이 마련한 대기업 CEO 조찬간담회에 참석한 10대 그룹 총수들.
한화 대형 산업 빨간불 껴지나

김 회장은 7월 28일에도 이라크를 다시 방문해 누리카밀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와 추가 수주에 대한 논의를 마치고 돌아왔다. 이 때문에 2차, 3차 사업의 추가 수주도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한화 관계자는 “이라크 사업의 2차, 3차 사업 추가 수주 문제는 이미 실무진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사업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영향은 미칠 수 없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한화가 꾸준히 신성장 동력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태양광 사업도 차질을 빚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독일의 태양광업체 큐셀의 인수가 성사될지도 불투명해졌다.

 
한화케미칼은 지난 14일 긴급이사회를 열고 인수금액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확정했다. 한화는 이르면 16~17일 최종 큐셀 인수 발표를 할 계획이었다. 큐셀은 2008년까지 태양광 모듈 생산부문 글로벌 1위를 차지했던 회사다. 이번 인수가 성사될 경우 한화의 태양광 모듈 생산 능력은 세계 2위로 올라설 것이란 기대가 모아지고 있었다.

한화 측은 “김승연 회장의 공동정범 등에 대한 유죄인정에 대해서는 법률적 다툼의 소지가 상당히 있다”며 “항소를 통해 적극 소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와 한화 측의 우려와는 달리 총수의 공백이 그룹의 경영과 경제 전체에 큰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재계와 한화 측이 엄살을 떨며 헐리우드 액션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SK의 사례를 보면 수긍이 가는 얘기다. 지난해 SK그룹은 연이은 악재에 시달리면서도 역대 최고의 실적을 달성했다. 2011년 4월 SK는 최 회장의 대규모 선물투자손실이 알려지면서 곤욕을 치렀다. 9월부터는 SK그룹의 오너 형제 최 회장과 최재원 그룹 수석부회장의 검찰수사설이 흘러나왔다.

SK와 SK텔레콤은 11월 국세청의 고강도 세무조사를 받았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SK그룹은 지난해 매출 120조원, 영업이익 7조원을 기록했다. 2010년 100조원의 매출과 5조원의 영업이익에 비해 크게 개선된 경영성과다.

겉으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오너만이 기업의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거나 구체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며 엄살을 부렸지만 실제로는 총수의 경영공백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SK 오너 형제 리스크는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계열사 자금 횡령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2012년이 SK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화증권 박종수 연구원은 “SK텔레콤은 하이닉스 인수로 규제가 심한 통신사업에서 벗어나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오리온 담철곤 회장은 300억원대의 회사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해 6월 구속돼 10월 1심에서 징역 3년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어 지난 1월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풀려났고 현재 검찰의 항소로 3심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총수의 공백에도 오리온의 올 2분기 연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26.9%, 101.8%나 증가한 5132억원, 575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경영 공백에도 개선된 경영실적

물론 총수에게 실형이 내려진 이후 경영실적이 급격하게 악화된 케이스도 있다. 올 초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과 모친 이선애 상무는 거액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태광그룹의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경영공백이 발생한 올 해 태광그룹은 62년 만에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하지만 태광그룹의 적자는 총수의 빈자리와는 무관하게 주력 업종인 화학섬유 분야의 수익성 악화가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올 해 런던올림픽 기간 각 10대 그룹의 총수들은 앞 다퉈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각 그룹 측에 총수의 경영공백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자 모두 한 목소리로 “요즘 같은 전문경영인 시대에는 회장이 자리를 비워도 의사결정 문제에 아무런 악영향이 없다”고 대답했다. 반면 그들은 경제범죄가 드러날 때마다 재벌총수의 공백은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경제악화론을 내밀었다. 이번 실형 선고가 봐주기 관행의 종료인지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여론을 의식한 일시적인 눈가림인지는 항소심에서 결정이 날 전망이다.

심하용 기자 stone@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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