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한국GM 사태

정부가 한국GM 금융지원 방안에 최종 합의했다. 산업은행이 한국GM을 실사한 결과,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결과다. 정부는 한국GM의 철수를 막았고, 한국GM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한국GM 사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군산공장 협력업체들이다. 정부가 군산공장 폐쇄로 인한 여파를 줄이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은 없다. 이들에겐 한국GM이 철수한 것과 마찬가지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한국GM 군산공장 사람들의 한숨을 들어봤다. 
 

정부가 한국GM 군산공장 협력업체들을 위한 지원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정부가 한국GM 군산공장 협력업체들을 위한 지원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한국GM 사태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 10일 정부는 제16차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한국GM 경영회생 방안을 최종적으로 확정짓고 금융제공확약서(LOC)를 발급(11일)했다. 산업은행과 GM(제네럴모터스)이 4월 26일 합의한 “한국GM 최종 실사 결과에 이상이 없을 경우 총 71억5000만 달러(약 7조6784억원)의 자금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조건부 LOC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한국GM 실사를 주관한 산업은행은 “최종 실사 결과에 따르면 그동안 제기됐던 고금리 대출, 불공정한 이전가격과 기술사용료 등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GM측이 제시한 신차배정, 투자계획, 고정비 감축 등 정상화 방안이 진행되면 경영회생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도 “이번 최종 합의를 통해 한국GM은 정상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월 한국GM 철수설이 떠오른 이후 가장 뜨거운 이슈로 자리 잡았던 한국GM 사태가 이렇게 일단락됐다. 그렇다고 한국GM 사태가 낳은 문제가 모두 해결된 건 아니다. 한국GM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지만 폐쇄된 군산공장의 협력업체들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에 신음하고 있다.

한국GM 군산공장의 협력업체는 약 150개에 이른다. 이중 현재 공장을 돌리는 업체는 일부에 불과하다. 군산공장 협력업체 중 한곳의 관계자는 “다른 곳에서 일부 물량을 소화하는 몇몇 업체만이 일주일에 하루이틀 정도 나오고, 나머지 대다수 업체들은 주중 근무시간대임에도 출근하는 사람이 없다”면서 “문을 닫은 건지 임시 휴업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상으로 돌아가는 곳보다 그렇지 않은 곳이 훨씬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 입장에선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판단하지만 군산공장에만 거래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GM이 철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지적했다.

돈보다는 일거리가 시급

정부가 군산공장 협력업체 문제를 두고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4월 12일 은행장 간담회를 개최해 한국GM 협력업체들의 금융애로를 점검ㆍ지원할 것을 당부했다. 시중은행들도 이런 요구에 맞춰 협력업체 지원 방안을 내놨다.

 

가령, 신한은행은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여신을 무내입 연장하고, 분할상환금 유예, 산출금리 최고 1% 감면, 20억원 규모의 특례보증대출을 지원한다. 기업은행은 원금상환 없이 일시상환대출 기간 연장, 할부금 납입기일 연장,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지원 등의 대책을 내놨다. 그밖에 다른 은행들도 여신 만기 연장, 분할상환 유예, 특례 대출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지원 방안이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데 있다. 현재 군산공장 협력업체들에 가장 필요한 건 ‘돈’보다는 ‘일거리’기 때문이다. 신현태 군산자동차부품협의회 회장(대성정밀 대표)은 “정부는 거창하게 ‘고용위기지역이다 산업위기지역이다’하면서 엄청난 지원을 해줄 것처럼 떠벌렸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없다”면서 “융자를 얼마 더 해준다고 해도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이후에 다시 빚만 늘어나는 임기응변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요한 건 앞으로 2~3년 후에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냐는 것”이라면서 “단순히 돈을 지원해달라는 게 아니라 먹거리 사업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감안한 건지 제16차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선 산업적인 부분을 고려한 지원 방안도 나왔다. 협력업체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연구ㆍ개발(R&D)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지역 산업 환경여건을 고려해 대체ㆍ보완산업을 육성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가령, 자율주행 R&Dㆍ시험ㆍ실증 등 기능을 집적한 전기차 자율주행 전진기지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군산지역의 ‘자동차 부품기업 위기극복 지원’에 편성된 추경예산은 37억원에 불과하다. 한국GM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8100억원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게다가 R&D를 통해 경쟁력을 높인다고 해도 납품할 곳이 없으면 큰 의미가 없다. 한 업체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들이 ‘이런 제품을 개발하면 우리가 쓰겠다’거나 ‘이런 부품을 수입해서 쓰고 있는데 이를 국산화해주면 거래하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얘기가 없으면 건설적인 투자를 진행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한계는 행정당국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군산시 관계자는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특수 업종에 속하기 때문에 다른 산업으로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업체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아이템을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아파트 공사 등 일반적인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어려움이 많다. 자동차 공장이 새로 들어오거나, 업종을 전환하지 않는 이상 부평이나 창원 공장, 현대차ㆍ기아차 등의 공장을 뚫어야 하는데, 이쪽 업체들을 받아달라고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른 방안을 모색 중인데, 쉽지가 않다.”

군산공장 협력업체들로선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는 얘기다. 당장 특수 업종에 속하는 군산조선소 협력업체들도 지난 7월 조선소가 폐쇄된 이후 아직까지도 대책이 묘연하기 때문이다. 신현태 회장이 “정부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주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이행될지 안 될지, 이행된다고 해도 언제쯤 될지는 모를 얘기다”고 토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10일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한국GM 경영 회생 방안이 최종 확정됐다.[사진=뉴시스]
지난 10일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한국GM 경영 회생 방안이 최종 확정됐다.[사진=뉴시스]

지난 2월 불거진 한국GM 사태의 발단은 군산공장 철수 논란이었다. 그로부터 3개월여, 군산공장은 폐쇄됐고 협력업체들은 도산 위기에 놓여있다. 한국GM 사태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지만 군산공장 협력업체들에 한국GM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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