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삼바 판단’ 달라진 이유

오늘 받는 재판과 내일 받는 재판의 결과가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뀐다면 법원 판결을 존중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판결이 객관적이고 신중해야 하며, 모순이 없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국민도 신뢰할 수 있다. 시장의 사법기관이라 할 수 있는 금융감독원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금감원은 자신의 판단을 너무도 쉽게 뒤집는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삼성바이오 논란을 취재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5월 2일 기자설명회 자료를 냈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 공정가치 근거를 제대로 해명하지는 못했다.[사진=뉴시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5월 2일 기자설명회 자료를 냈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 공정가치 근거를 제대로 해명하지는 못했다.[사진=뉴시스]

“회계처리에 위반이 있었다.” 지난 1년간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를 특별감리한 다음 금감원이 내린 잠정 결론이다. 특히 금감원은 삼바의 회계처리 위반에 ‘고의성’도 있다고 봤다. 삼바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본 거다. 참여연대가 2016년 말 삼바의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고, 2017년 2월 금감원에 특별감리를 요청한 이후 1년반 만에 나온 결과다. 

금감원은 1일 삼바를 비롯해 삼바의 감사인인 삼정ㆍ안진회계법인 등에 조치사전통지서를 보냈다. 이는 금감원이 감리 결과에 따라 특정한 조치를 취하고자 할 때 금융위원회와 증권선물위원회에 감리 안건을 상정하기에 앞서 해당 기업에 무엇을 위반했고, 어떤 조치를 취할지 알려주는 사전 안내서다. 금융위는 기업 측의 소명 절차를 거친 후 감리위원회와 증선위를 열어 회계처리 기준 위반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그런데 이번 잠정결론이 나오자 금감원의 신뢰성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기업의 불법행위를 잡아내 시정하겠다는 금감원에 박수를 쳐줘도 모자랄 판에 무슨 일일까.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지난해 1월 똑같은 사안을 받은 금감원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당시 삼바의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한 참여연대가 금감원의 입장을 요청하자 “회계기준 위반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놨다. 정권이 바뀌자 판단을 달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삼바 분식회계는 문제가 있었던 걸까, 공연한 의혹이었을까. 시계추를 2012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삼바는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해 자회사 에피스를 설립했다. 2013년 말 공시자료에 따르면 지분율은 삼바와 바이오젠이 각각 85%와 15%였다. 하지만 바이오젠은 언제든 일정량의 주식을 살 수 있는 콜옵션(주식을 미리 합의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을 갖고 있었기에 실제 지분율은 50.1%와 49.9%였다.[※ 참고 : 바이오젠은 애초부터 콜옵션을 공시했지만, 삼바는 2014년에야 공시했다.]

어찌 됐든 삼바의 지분이 더 많았고, 바이오젠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상황. 당연히 에피스는 삼바의 종속기업이 됐다. 그런데 2015년 갑자기 삼바는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면서 에피스를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바꿨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감사보고서)”는 게 이유였다. 여전히 삼바는 에피스의 최대주주였지만,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삼바와 바이오젠의 이사회 구성원이 동수가 되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거였다.[※참고 : 이 주장에 따르면 지분율을 왜 굳이 50.1%와 49.9%로 나눴는지 설명할 수 없다.]

 

삼바 측은 최근 기자설명회 자료를 통해 “2015년 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개발성과가 가시화되면서 지분가치가 행사가격보다 올랐고, 이에 따라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도 높아졌다”면서 “실제로 2015년 7월 바이오젠으로부터 콜옵션을 행사하겠다는 ‘letter’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적자기업 가격이 4조5000억원이라니

에피스가 삼바의 관계기업으로 바뀌면서 회계기준도 달라졌다. 종속기업은 연결재무 대상으로 분류돼 해당 기업의 이익이 그대로 모기업에 반영된다. 반면 관계기업은 지분법의 적용 대상으로 분류된다. 관계기업의 지분이 투자주식으로 바뀌고, 해당 주식은 공정가치(시장가치)로 계산해 모기업의 ‘회계상 이익’으로 편입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삼바가 에피스를 관계기업으로 변경하면서 에피스의 공정가치를 약 4조5000억원으로 책정했다는 점이다. 참여연대가 주목한 건 바로 이 부분이다. 에피스가 설립 이후 계속 적자를 냈다는 걸 고려하면 납득할 수 없는 수치다. 

미래 성장성을 희망적으로 볼 이유도 없었다. 에피스의 경영진은 2015년 감사보고서에서 향후 10년간 고작 수천억의 세무상 결손금을 상쇄할 이익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에피스 경영진은 에피스의 미래를 어둡게 본 반면, 모기업인 삼바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거다.

실제로도 에피스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약 8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15년이나 지금이나 에피스의 공정가치 판단 기준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 참고 : 일부에선 에피스의 공정가치를 높여야 할 이유를 이렇게 분석한다. 2015년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기 전 삼바는 제일모직의 자회사였다. 에피스의 공정가치가 높게 책정돼 삼바는 그해 1조905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삼바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제일모직의 가치도 상승했고, 이로써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의 주식 합병 비율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거다.]

 

2016년 11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할 때 금감원은 삼바의 회계를 검증할 기회가 있었다.[사진=뉴시스]
2016년 11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할 때 금감원은 삼바의 회계를 검증할 기회가 있었다.[사진=뉴시스]

참여연대는 이처럼 모든 걸 공시자료로 분석했고, 이를 토대로 2017년 2월 ‘납득할 수 없다’고 결론과 함께 금감원의 입장을 물었다. 그럼에도 당시 금감원은 삼바의 회계처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더구나 “2015년은 삼바가 상장하기 이전이므로 감리실시 여부 등 판단은 한국공인회계사회 소관”이라며 발뺌까지 했다. 공인회계사회를 감시ㆍ감독하는 게 금감원의 의무라는 걸 감안하면 직무를 유기한 셈이다. 

제 역할 안 하니 주주들만 피해

이런 금감원의 태도는 삼바에도 좋은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삼바 관계자는 “다수 회계법인의 의견에 따라 지분법으로 회계처리를 변경했고, 감리 과정에서 소명도 충분히 했다”면서 “더구나 금감원은 이미 참여연대에 삼바의 회계처리가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금감원 관계자는 “당시 답변은 공시자료와 해당 기업이 임의 제출한 자료 등을 토대로 사실관계를 파악했고, 이를 근거로 개최한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질의회신연석회의’ 결과에 따라 회신한 것”이라면서 “금감원 감리에 따라 나온 결론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오락가락한 게 아니라 감사를 하고 낸 결론이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라는 거다.

금감원의 이런 해명은 구차하기 짝이 없다. K-IFRS 질의회신연석회의에는 금감원, 한국회계기준원, 한국공인회계사회, 회계법인, 삼바 회계담당자, 교수 2명이 참석했다.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금감원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금감원은 참여연대의 요청에 따른 특별감리가 아니더라도 삼바를 검증할 기회가 있었다. 2016년 11월 삼바가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할 때 제대로 검증 절차를 거쳤다면 이제 와서 분식회계 얘기를 꺼낼 필요도 없다. 당연히 이번 삼바 분식회계 논란으로 애먼 주주들이 피해를 볼 일도 없다.

금감원의 설립 이유는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 확립, 예금자와 투자자 등 금융 수요자 보호, 이를 통한 국민경제 발전 이바지’다. 금감원은 과연 이를 실천하고 있는가, 아님 권력을 무작정 쫓고 있는가.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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