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에 숨은 비애

북한 최고 권력자가 어렵게 공수해온 음식. 위쪽 사람들에게 냉면은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다. 그 냉면을 영접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끝에 서서 10분이고 20분이고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그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니다. 1만원을 훌쩍 넘기는 가격 탓에 지갑 열기가 부담스러워서다. 안 그래도 팍팍한 삶, 아래쪽 사람들에게 냉면은 고물가의 상징이다.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등장한 평양냉면이 인기다.[사진=뉴시스]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등장한 평양냉면이 인기다.[사진=뉴시스]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지고 왔습니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저녁만찬 메뉴를 소개하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그 순간부터 평양냉면이 연일 화제다. 1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 정도는 상관없다는 듯 유명 냉면집은 연일 문전성시다. 하지만 아는가. 그 냉면 한 그릇에는 남과 북이 주고받은 평화의 메시지뿐 아니라 치솟는 현실물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평소 ‘냉면 마니아’라고 자부하는 최진석(가명)씨. 그는 계절과 상관없이 일주일에 한두끼 정도는 냉면을 먹는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명 맛집부터 분식집 냉면까지…. 냉면이라면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최씨는 지갑 열기가 머뭇거려지고 있다. 1000원, 2000원씩 오르는 냉면가격 때문이다. 

“사람마다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지 않나. 나에게 냉면가격 마지노선은 1만원이었다. 그런데 그 마지노선을 넘기는 냉면집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분식집 냉면도 5000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냉면이 소울푸드라 아직까진 그럭저럭 스스로 용인하고 있지만 지금보다 가격이 더 오르면 예전만큼 냉면을 즐길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한반도의 평화 무드에 동참하려는 듯 사람들이 저마다 평양냉면집 탐방에 나서고 있다.[사진=뉴시스]
한반도의 평화 무드에 동참하려는 듯 사람들이 저마다 평양냉면집 탐방에 나서고 있다.[사진=뉴시스]

계절이 채 여름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계절메뉴’의 대표주자인 냉면이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11년 만에 성사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만찬 식탁에 당당하게 주연으로 오른 덕분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공수해온 냉면이 자랑스럽다는 듯 문재인 대통령에게 소개한 그 순간부터다.

계절메뉴에서 한순간 한반도의 평화를 상징하는 대표음식으로 대접받으며 존재감을 과시한 평양냉면. 한반도의 평화 무드에 동참하려는 듯 사람들도 저마다 평양냉면집 탐방에 나서고 있다.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소위 ‘평양냉면 인증샷’ 열풍이 불고 있다. 더불어 간편식 냉면도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한 그릇에 8000원~1만3000원 하는 냉면이 그리 만만한 음식이 아니다. 높은 인기에 힘입어 몸값이 더 치솟을 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농산물 물가도 냉면 가격 인상 가능성에 한몫하고 있다.

냉면은 외식물가 중에서도 지속적으로 오르는 품목 중 하나다.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동향을 살펴보자. 외식비는 재료비 상승에 따라 구내식당식사비, 생선회, 갈비탕, 냉면 등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전년 동월 대비 평균 2.7% 올랐다. 그중에서도 냉면은 4.2% 상승하며 평균을 상회했다. 냉면 한그릇 평균 가격은 2015년에 8000원대를 넘어선 이후 10일 현재 8433원을 기록하고 있다.
 

안 오른 게 없다

이름깨나 있는 집은 한 그릇에 1만원을 훌쩍 넘긴 지 오래다. 냉면 맛집으로 소문난 서울 중구 한 냉면집의 평양냉면 가격은 1만3000원이다. 그렇다면 냉면은 왜 이렇게 비싸진 걸까.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냉면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들, 이를테면 원재료 가격이 올라서다. 면을 뽑는데 사용하는 메밀, 감자, 고구마 등은 물론 고명으로 올리는 무 가격도 크게 올랐다. 

지난 4월 채소류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8.4% 상승했다. 특히 감자(76.9%)와 무(41.9%) 가격이 많이 올랐다. 감자는 지난겨울 한파의 영향으로 작황이 부진해 출고량이 크게 줄었다. 그러다보니 가격이 치솟은 상태. 지난 9일 감자 20㎏(상품)의 도매가격은 8만2800원이었다. 10년 전인 2008년에 3만8000원을 기록했던 비교하면 가격이 117.9% 올랐다. 재배면적이 증가해 가격이 2만600원으로 뚝 떨어졌던 5년 전(2013년)과 비교하면 무려 301.9% 오른 셈이다. 

면에 들어가는 또다른 재료인 메밀과 고구마는 어떨까. 10년 전과 비교해보자. 메밀은 2008년 5월 9일에 1㎏ 가격이 1630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9일엔 2820원으로 73% 올랐다. 고구마(밤ㆍ상품)는 10㎏에 2만5200원이던 것이 4만2600원으로 가격이 69% 올랐다.

최근엔 냉면에 고명으로 얹는 무 가격이 무섭게 오르고 있다. 지난 9일 무 18㎏(상품)의 가격은 2만5200원. 10년 전 가격인 6660원보다 278.4% 뛰었다. 오이(가시ㆍ상품ㆍ10㎏) 도매가격도 1만1000원에서 1만5500원으로 올랐다. 그나마 공급량 증가로 달걀 가격이 평년 가격 대비 하락세라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이렇듯 원재료 가격이 연일 상승하고 있으니 냉면가격도 점점 오르는 거다. 문제는 고공행진하는 농산물 가격이 냉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농산물은 우리의 식탁 물가, 장바구니 물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때문에 잡히지 않는 농산물 가격은 서민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고공 행진하는 농산물 물가

그래서일까. 정부가 물가 잡기에 발 벗고 나섰다. 농식품부는 지난 9일 “감자, 무 등이 평년 대비 높은 시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특히 감자는 노지 봄 감자가 출하되는 시점 이전에 수입량을 늘리고, 농협을 통해 조기 출하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등 공급 부족을 풀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장량이 평년보다 줄어 공급량이 부족한 데다 평양냉면이 인기를 끌면서 수요가 늘어 가격이 급등한 무는 이달 중순부터 재배면적이 늘어난 시설에서 출하량이 많아질 예정이라 평년 수준의 가격을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곧 본격적인 냉면의 계절인 여름이 다가오고, 그전엔 선거가 치러진다. 언제 또 어느 순간 가격이 오를지 모를 일이라는 얘기다. 냉면 한 그릇조차 시원하게 먹지 못하는 서민들의 지갑만 더 가벼워지게 생겼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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