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사례 살펴보니…] 머리와 몸 따로 노니, 잡음 안 새리오
[해외사례 살펴보니…] 머리와 몸 따로 노니, 잡음 안 새리오
  • 임종찬 기자
  • 호수 288
  • 승인 2018.05.17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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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금융감독체계 분석

한국의 금융감독체계는 독특하다. 수평구조가 아니라 수직구조로 편성돼 있다. 서로 같은 업무영역을 관장하다 보니 ‘머리(금융위원회)’와 ‘몸(금융감독원)’ 사이에선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다른 나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해외 사례를 살펴봤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금융행정혁신위에 참석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사진=뉴시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금융행정혁신위에 참석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사진=뉴시스]

금융감독원(금감원)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기준을 위반했다고 발표하면서다. 1년 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에 문제가 없다”고 내렸던 자신들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금감원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원인을 구조적인 측면에서 찾는다. 한국의 금융감독체계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금융감독기관은 정책을 심의·결정하는 금융위원회(금융위)와 현장에서 금융기관을 관리·감독하는 금감원이 있다. 금융감독체계를 의결기구와 집행기구로 나눈 것이다. 신체에 비유하면 금융위가 두뇌고 금감원이 몸인 셈이다.

그런데 이 ‘머리’와 ‘몸’은 유독 마찰이 잦다. 두 기관이 같은 업무 분야(금융감독)를 다루면서 역할이 중복되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은 업무 특성상 정책업무와 집행업무를 분리하기 어렵다. 금감원이 종종 금융위로부터 “의결기구인 우리가 할 일을 왜 집행기구가 하려고 드느냐”고 지적을 받는 이유다.

역할이 중복되다보니 혼선을 빚는 사례도 자주 일어난다. 2015년 4월 은행의 비대면 계좌 개설 문제를 두고 금융위는 “비대면 거래 기준을 낮춰 금융소비자들의 편의성을 늘릴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같은날 금감원은 “대포통장 등의 악용을 막기 위해 장기 미사용 중인 계좌의 비대면 거래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비대면 거래 기준을 낮추면 그만큼 대포통장이 활개를 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양 기관이 상충하는 정책을 동시에 내놓은 것이다. 이 모순을 해결할 방안이 마련돼 있던 것도 아니었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얘기다. 법학전문대학원의 한 교수는 “금융감독체계가 의결기구와 집행기구로 나뉜 건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렵다”면서 “이런 수직 구조는 필연적인 업무 중복을 낳으므로 비효율적이다”고 말했다.

기관 간의 업무경계가 흐리다보니 책임소재도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금융감독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올 때마다 기관들은 서로 책임을 넘기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책임이 사라지면 기관 운영이 방만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금융업계에서 “한국의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해외에선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을까. 미국의 경우 2008년까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 증권거래위원회 등 연방차원에서만 17곳에 달하는 감독기관이 활동하고 있었다. 1930년 이후 복잡해진 감독체계를 그대로 방치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업무 중복과 사각지대가 점점 늘어났고 방만한 운영으로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뒤 미국은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편안을 마련했다. 핵심은 감독기구 간의 업무 중첩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가 설치됐다. 다수의 감독기관이 FSOC에 참여해 협의로 업무를 풀어나갔다. 감독기관이 많은 은행분야에선 기관수를 줄이기 위해 ‘저축은행감독청’을 폐지했다. 금융소비자보호원(BCFP)을 세워 각종 기관에 분산됐던 소비자 보호기능을 합치기도 했다.

아예 바꾼 나라도 있다. 통합형에서 쌍봉형(twin peaks)으로 전환한 영국이 대표적이다. 기존 통합감독기구(FSA)의 조직체계가 비대해져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워지자 영국은 해당 기관을 건전성감독청(PRA)과 금융행위감독청(FCA)으로 분리했다. PRA는 은행·보험·투자은행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역할을, FCA는 나머지 금융기관의 감독과 소비자보호를 맡았다. 이는 양 기관의 업무 경계를 명확히 하려는 조치였다. 이밖에 호주·뉴질랜드·프랑스 등이 쌍봉형 감독체계를 갖추고 있다.

일본은 통합형 금융감독체계를 유지 중이다. 2000년 7월부터 금융청이 단일기관으로서 모든 금융감독 업무를 수행해 왔다. 그런 일본도 올해 7월까지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끝마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통합형 금융감독체계는 그대로 두되 금융청 내부를 손보기로 한 것이다.

먼저 검사국이 폐지된다. 이 기관의 주요 업무는 금융기관 현장실사인데, 금융시스템 전체를 감독하는 감독국과 권한이 겹친다는 판단에서다. 금융 관련 제도를 만드는 총무기획국은 종합정책국과 기획시장국으로 분리된다. 이중 종합정책국은 검사국과 감독국이 협력해 처리하던 과제들을 맡기 위해 신설될 예정이다. 중첩돼 있던 역할을 통폐합하는 게 이번 금융청 개편의 골자인 셈이다.

이제 복잡한 사례들을 정리해 보자. 앞서 설명한 각국의 개편안들은 저마다 내용이 다르지만 한가지 뚜렷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개편안들이 기관 간의 업무 중첩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교통정리’였다는 것이다. 그래야 기관들이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각자의 역할에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정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금융감독체계는 어떤가. 국내 금융업계에선 매년 꾸준하게 현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문재인 정부도 대선 당시 공약집을 통해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 정부가 가계부채·기업 구조조정 등 현안에 집중하면서 개편 시점도 점점 늦춰지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미묘한 신경전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8일 새로 취임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대학교수 시절 금융위를 해체하고 금감원이 금융기관 감독을 일임하는 방식의 개편안을 주장한 바 있다. 윤 원장은 취임식에서도 금감원의 독립성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소비자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내부 조직 개편을 추진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금융소비자보호는 금감원의 주요 업무영역 중 하나다. “업무가 겹치는 영역이 또 하나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bellkic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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