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돈에 미쳐 돌고 돌고 돌고
[Economovie] 돈에 미쳐 돌고 돌고 돌고
  • 김상회 정치학 박사
  • 호수 288
  • 승인 2018.05.18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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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❹

공동체는 나를 보호해주는 울타리와 같다. 공동체의 삶에는 인간의 당연한 도리라는 것이 있고, 관계의 배려와 정情이 있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은퇴를 앞둔 노 보안관 벨은 마을 공동체 삶에 체화된 인물이다. 그는 ‘그 시절’에는 보안관이 굳이 총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었다며 ‘좋았던’ 지난 시절을 회상한다.

돈에 미쳐가는 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붕괴의 문제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돈에 미쳐가는 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붕괴의 문제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벨은 세상이 귀찮고 못마땅한 듯 심술 가득해 보이는 전형적인 노인의 모습으로 일관한다. 그럴 만도 하다. 벨이 보기에 이 세상은 분명 미쳐 돌아가고 있으며 잘못되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들이 “세상이 ‘빨갱이 세상’이 돼 간다”며 개탄에 여념이 없다면 미국 노인 벨은 세상이 마약과 돈에 미쳐 가는 세상이 되었다고 개탄한다.

벨은 한평생 고향 파출소에 근무한 토박이 보안관이다. 동네 가가호호 숟가락 개수까지 훤히 꿰고, 지나가는 자동차만 봐도 누구네 차인지 안다. 모든 가정의 애환과 역사까지 알고 있다. 유동이 거의 없는 마을 공동체 삶에 체화된 인물이다. 공동체 삶에는 인간의 도리와 관계의 배려, 그리고 정情이 있다. 공동체는 나를 보호해주는 울타리와 같은 것이다. 벨은 보안관이 총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었던 ‘그 시절’을 마치 아득한 요순 시대의 전설처럼 회상한다. 평생을 마을 사람들과 얼굴 맞댄 채 살아온 보안관이 마을 일에 굳이 총까지 들고 설쳐야 할 만큼 험악한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한 지역 특성상 마약상들이 마을에 출몰하고 거액의 마약거래 자금이 돌아다니면서 공동체는 급격하게 무너진다. 평화롭던 마을이 마약과 돈을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는 그야말로 ‘개판’이 돼버린다. 벨로서는 기가 막히고 땅을 칠 일이다. 마약상들이 펼치는 아수라장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듯 사막 한복판에서 총질 끝에 즐비하게 죽어 있는 시체들을 보고도 시큰둥하다.

벨은 한평생 고향 파출소에서 근무한 토박이 보완관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벨은 한평생 고향 파출소에서 근무한 토박이 보완관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옹색하게 살아가는 모스는 얼핏 평범해 보이는 용접공이지만 사실 보통사람은 아니다. 베트남 전쟁에 2번이나 다녀온 베테랑 전사다. 베트남의 자유와 통일을 위해 그곳에 2번이나 다녀온 것 같지는 않다. 베트남 전쟁에 2번 다녀왔다는 것은 대부분 돈벌이를 위해 참전한 ‘용병’ 성격의 인물들이다. 돈을 벌기 위해 전쟁터까지 찾아 들어갔던 모스가 마약상들의 눈먼 돈 200만 불을 보고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그는 살벌한 마약상들과의 일전도 불사한다.

영화는 돈을 들고 튀면서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는 모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스의 생명을 지켜주는 유일한 보호막은 ‘공동체’나 ‘법’이 아닌 ‘돈’이다. 공동체가 사라진 신세대의 모습이다. 모스는 우선 총포상에 들러 주인이 추천하는 성능 좋은 장총을 산다. 돈이 있기에 살 수 있는 장총은 그의 생명을 지켜줄 것이다.

모스를 태우고 모텔 주차장을 돌던 택시기사는 금방이라도 총격전이 벌어질 것 같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는 말썽에 휘말리기 싫으니 그만 내리라고 한다. 모스는 100불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고 “잔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한다. 100불은 택시기사가 총격전의 위험까지 감수하게 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택시기사도 돈이라면 못할 짓이 없다.

국경도시 엘파소에서 2 00만 불 회수를 위해 파견된 해결사 안톤과의 총격전 끝에 피투성이가 된 모스는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도주한다.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국경검문소를 통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100불의 위력이 그를 살린다. 모스는 국경을 넘어오는 몇 명의 젊은이들에게 다짜고짜 100불짜리 지폐를 내밀고 옷을 벗어달라고 한다. 한 젊은이가 돈을 받고 옷을 벗어준다. 취객으로 보이기 위해 다른 젊은이가 들고 있던 맥주병도 달라고 한다. 젊은이는 먹다 남은 그 맥주는 얼마에 사겠냐고 묻는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모스의 안위에는 관심 없다. 그 옛날 ‘선한 사마리안’은 없다.

공동체가 사라진 공간에서는 돈만이 위력을 발휘한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공동체가 사라진 공간에서는 돈만이 위력을 발휘한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천신만고 끝에 국경을 넘은 모스는 새벽 공원 벤치에서 기절한다. 멕시코 국경도시에서의 흔한 미국인 취객쯤으로 생각하고 멕시코 밴드가 그 앞에서 신나는 멕시코 음악을 연주한다. 음악 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모스가 이번에도 피 묻은 100불짜리를 내밀고 병원으로 데려달라며 쓰러진다. 모스가 병원에서 깨어난 것으로 보아 아마 이번에도 100불의 위력이 그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모스의 아내를 살해하고 나오던 안톤은 교차로에서 불의의 어이없는 충돌사고를 당하지만 마치 터미네이터처럼 완파된 차에서 스스로 기어나온다. 강철 골격과 불굴의 정신력이다. 말문이 막힌 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동네 꼬마들에게 돈을 내밀며 옷을 벗어달라고 한다. 꼬마들이 내놓은 옷을 둘둘 말아 건들거리는 팔을 고정하고는 자기를 못본 것으로 해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사라진다. 두 꼬마는 돈의 배분을 놓고 다툰다. 벨이 결국은 안톤을 잡지 못한 것으로 미뤄 보건대 두 꼬마는 돈을 받고 비밀을 지켜준 모양이다.

벨은 세상이 돈에 미쳐 돌아간다고 개탄해마지 않지만 실제 사정이 이러한데도 돈에 미쳐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인 공동체가 없거나 사라진 공간에서는 돈만이 위력을 발휘한다. 돈에 미쳐가는 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붕괴의 문제일 뿐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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