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강한 아내를 위한 변명
[윤영걸의 有口有言] 강한 아내를 위한 변명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289
  • 승인 2018.05.21 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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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부부관계는 ‘우정’
금슬 좋은 부부는 남녀간 사랑을 넘어 상대방의 단점까지 포용하면서 산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금슬 좋은 부부는 남녀간 사랑을 넘어 상대방의 단점까지 포용하면서 산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위인들 중에는 부부 사이가 원만치 못한 사람이 적지 않다. 인간애와 평화를 강조했지만 정작 자신의 가정에선 실천하지 못한 위인들이 많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평생 인仁과 예禮를 강조했던 공자는 아내가 제사상에 번육(구운 고기)을 올리지 않았다는 구차한 이유로 갈라섰다. 공자의 아들 공리와 손자인 공급도 별다른 이유 없이 아내를 쫓아내고 3대가 홀아비로 살았다고 하니 괴팍한 기질 역시 유전적인 요소가 아닐까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강태공은 72세에 비로소 주나라의 재상으로 발탁됐다. 생활고에 지쳐 집을 나갔다가 소식을 듣고 찾아온 아내에게 강태공은 물을 땅에 쏟고는 다시 주어 담으라(覆水不返盆)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천하를 통일하고 제나라의 시조가 된 강태공의 말치고 뒤끝이 작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계 4대 성인으로 꼽히는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악처로 유명하다. 누군가 아내에 대해 묻자 그는 “말을 잘 타려면 거친 말을 타고 배우는 걸세. 그 여자를 견뎌낼 수 있게 되면 천하에 어떤 사람이든 견뎌내지 못할 사람이 없겠지”라고 대답했다.

공자와 강태공, 소크라테스의 어록과 활약상은 감동을 남기지만, 아내들은 묵묵부답이다. 아내로서는 허풍선처럼 말만 번지르르할 뿐 가정을 건사할 만한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건달 남편이었을지 모른다. 또 이들은 아내 험담을 입에 달고 다녀 역사에 악처라는 오명을 남게 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공자와 강태공,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역사 속에 남게 한 일등공신은 그의 아내들일지 모른다.

세상의 아내들이 억척스러운 이유는 원래 사람됨이 모질어서가 아니다. 가정을 가진 백수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니 남편 얼굴만 바라보고 화초처럼 살 수 없는 시대다. 여성이 팔을 걷어붙이고 생업 전선에 나가야 하고, 자식교육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말아야 하는 세상이다. 같은 시기에 입사한 동료라도 아내가 돈줄을 쥐고 흔드는 집안의 살림형편이 대체로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훨씬 낫다. 남편의 수입 못지않게 아내의 재테크 성적이 중요하다. 그래서 처복妻福이 곧 재복財福이라는 말도 있다.

아내가 억척스러운 이유

홀아비보다는 아내 있는 남편의 수명이 훨씬 길다. 아내의 보살핌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아내의 존재가 남편을 늘 긴장하게 만들어서가 아닐까. 수족관의 메기가 다른 물고기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듯 아내의 가시 돋친 잔소리는 삶의 정글에서 길을 잃은 남편에게 등불 같은 존재다. 언젠가 남편 혼자 남겨진다면 ‘강한’ 아내에게 미리 혹독한 훈련을 거친 남편이 훨씬 생존력이 있을 게다.

부부는 핏줄이 섞이지 않은 타인이라는 한계와 남녀라는 유전적인 차이 때문에 이해의 폭을 좁히기 어렵다. 자식을 떠나보내고 나면 둥지에 부부 두 사람만 남아 짧게는 20~30년, 길게는 40년 이상의 긴 세월을 함께 살아가게 된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는 결혼생활 60~70년은 흔한 일이 될 것이다. 황혼 이혼이 늘어나는 것은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노년의 부부가 겪는 불화와 갈등은 젊었을 때보다 회복하기 어렵다. 배우자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고, 상대방의 심리를 이해하고 홀로서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금슬 좋은 부부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에게 맞춰가며 산다. 하지만 주체적이지 않으면 독립적인 인간이 아니다. 부부가 해로하려면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서서 상대방의 단점까지 포용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배우자의 아픔에 대한 감수성(sensitivity)이 부부 사이의 주고받음의 창조를 이끌어준다.

최고의 부부관계는 우정友情이 아닐까싶다. 사랑은 언제 식을지 모르는 ‘날아가는 새’와 같다. 우정은 서로에게 실망할 것이 있다고 증오하지 않고, 우정이 사라졌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부부일심동체’라는 말에 너무 현혹되지 말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얘기다.

원래 나쁜 배우자는 없다. 100만 부부에게는 100만 가지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올해 ‘부부의 날(5월 21일)’은 미래에 어떤 부부로 살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날이 됐으면 한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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