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공백 100일, 롯데는…] 창사 51년 만의 변화, 오너 없인 못하나

창사 51년 만에 그룹의 총수 신동빈 회장이 구속됐고, ‘공식적인 총수’ 이름도 신격호에서 신동빈으로 바뀌었다. 최근 3개월 사이 롯데그룹에 일어난 일이다. 그가 불가피하게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러니하게도 공정위는 롯데그룹의 총수를 그로 변경했다. 총수 공백 100여일. 롯데그룹엔 크고 작은 변화가 일고 있다. 이 와중에도 형(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반격은 멈추지 않고 있다. 참, 어지럽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총수 공백 100일 롯데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신동빈 회장의 항소심 선고기일은 9월말이나 10월께가 될 것으로 보인다.[사진=뉴시스]
신동빈 회장의 항소심 선고기일은 9월말이나 10월께가 될 것으로 보인다.[사진=뉴시스]

“참담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구속된 직후 롯데그룹 관계자의 입에서 터져 나온 첫마디다. 2월 13일 신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추징금 70억원을 선고 받고 전격 구속됐다. 무죄를 확신하던 롯데그룹은 창사 이래 최악의 상황에 처하자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룹 관계자들 사이에선 “참담함 그 자체” “무죄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안타깝다” “처참하다”는 말이 쏟아졌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롯데그룹은 즉각 부회장단을 주축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황각규 부회장(롯데지주 대표이사)을 중심으로 비상경영위원회를 가동했고, 민형기 컴플라이언스위원장, 이원준 유통BU장, 이재혁 식품BU장, 허수영 화학BU장, 송용덕 호텔&서비스BU장 등 4개 BU 부회장 등으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어떻게든 창사 이후 첫 ‘총수 부재’ 사태의 혼란을 줄여보겠다는 롯데그룹의 전략이었다.

롯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식시장은 심하게 요동쳤다. 신 회장 선고 당일인 2월 13일 6만6400원이던 롯데지주의 주가는 선고 다음날인 2월 14일 6만2400원으로 하루만에 6%가 빠졌다. 롯데쇼핑의 주가도 같은 기간 21만9000원에서 21만4000원으로 떨어졌다. 한때(3월 7일)는 20만원선이 붕괴(19만9000원)되기도 했다.

 

다른 계열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롯데푸드(60만3000원→57만5000원), 롯데케미칼(6만6400원→6만2400원), 롯데칠성(156만7000원→151만6000원) 모두 하루 만에 주가가 3~6% 하락했다.

그로부터 100여일, 롯데의 비상경영체제는 잘 돌아가고 있을까. 그룹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비상경영위원회가 운영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시급한 현안들은 비상경영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신규사업이나 해외사업, 인수ㆍ합병(M&A)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은 아무래도 더디거나 진행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 때문인지 지금의 롯데는 ‘내부관리’에 더 힘을 쓰는 모양새다. 비상경영위원회를 끌고 있는 황 부회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그렇다. 황 부회장은 지난 4월 18일 ‘롯데 HR 포럼’에 참석했고, 5월 16일엔 롯데하이마트 신입사원 공개채용 면접 현장을 방문해 지원자들을 격려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10대 그룹 간 정책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그룹 회의나 행사, 공식적인 대외행사 일정이 주를 이룬다.

일단은 ‘내부 관리’에 치중

반면 황 부회장의 해외사업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덜하다. 지난 3월 베트남으로 날아가 응웬 쑤언 푹 베트남 총리를 만나 현지 사업 투자 확대 및 협력방안 등을 논의했다. 최근엔 일본에서 열린 ‘제6차 한ㆍ중ㆍ일 비즈니스 서밋’에 롯데그룹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하지만 이 정도 선이다. 새로운 해외사업을 추진하거나 해외 기업을 M&A하는 ‘글로벌 비즈니스’는 사실상 스톱 상태다. 

 

현재 롯데는 황각규 부회장이 이끄는 비상경영위원회 체제로 움직이고 있다.[사진=뉴시스]
현재 롯데는 황각규 부회장이 이끄는 비상경영위원회 체제로 움직이고 있다.[사진=뉴시스]

한편에선 이를 ‘오너 부재 리스크’라고 말한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글로벌 비즈니스는 해당 국가의 재계 총수나 정부 관계자들과 긴밀하게 협의할 부분이 있는데, 그동안은 신 회장이 그 역할을 주도적으로 진행해왔다”면서 “현재로선 신규 사업 추진보다는 임직원들을 다독이고 현지 실적이나 사업 진행 상황을 챙기는 수준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펼칠 때 오너의 영향력이 상당한 건 사실이다. 신뢰도 측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글로벌 기업의 오너들이 모든 해외 비즈니스를 전담하고 처리하는 것도 아니다. 오너는 밑그림을 그리고, 해외 프로젝트는 역량 있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곳도 많다. 쉽게 말해 롯데그룹의 권력이 지나치게 ‘오너’에 집중된 게 부메랑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롯데그룹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재벌의 비틀어진 자화상自畵像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가 비상 상황인 건 맞지만 평소에 전문경영인들에게 권한을 많이 위임했더라면 총수가 부재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업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부회장단으로 구성된 비상경영위원회 중심으로 총수 공백 사태를 메운다는 게 기본 방침이지만 시급한 현안은 하루 10분 주어지는 신 회장과의 면회시간을 활용해 처리한다”면서 “외부와 통제된 오너가 어떻게 10분 만에 모든 결정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총수 없는 100여일을 다소 혼란스럽게 만든 변인은 또 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반격이다. 신 전 부회장은 4월 27일엔 자신이 운영하는 ‘롯데 경영권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 홈페이지에 신 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이사직을 해임하고 자신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로 선임하는 주주 제안 안건을 제출했다. 2015년 이후 4번의 주총에서 모두 패배한 신 전 부회장이 여전히 동생을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는 거다.

하루 10분, 신 회장과 소통

그룹 관계자는 “일본 법원의 판결에서도 ‘윤리의식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던 신 전 부회장이다”면서 “6월 예정인 주총의 결과도 앞선 4번의 결과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신 전 부회장의 경영복귀를 점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반격을 무시할 수 없는 건 ‘형제의 난’의 짐을 신 회장이 혼자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어쨌거나 신 회장 공백기 100여 일간 롯데는 그동안 소홀했을지도 모를 내부 관리에 치중하며 경영 전반을 살피고 있다. 혹자는 가족경영, 오너경영의 그늘에 가려졌던 전문경영인들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도 말한다. 신 회장의 항소심 선고가 이뤄지는 9월 이후 롯데는 또 어떤 모습을 마주하게 될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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