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투입기업 특혜론 괜찮나

“공적자금이 투입된 공기업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려서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김영춘 해수부 장관이 현대상선 특혜 논란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일부 기업의 회생을 위해 시장질서와 공정성을 해쳐도 된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김 장관의 말을 곧이곧대로 풀어보면, 대우조선해양에도 일감을 몰아줘야 한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이 역설적으로 또다른 혜택을 받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부실기업에 쏟아지는 역설적 혜택을 취재했다. 
 

현대상선의 발주가 대우조선해양에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사진=뉴시스]
현대상선의 발주가 대우조선해양에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사진=뉴시스]

“해운재건을 통해 ‘공생적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겠다.” 해양수산부와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는 지난 4월 5일 열린 제15차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의 골자를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2018년부터 오는 2022년까지 5년간 안정적인 화물 확보와 선박 확충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 해운업계의 경영안정성을 제고한다.”

구체적인 목표치도 잡았다. 2022년까지 해운업계의 매출을 51조원으로 늘리고, 지배선대(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모든 선박 규모)와 원양 컨테이너 선복량을 각각 1억40만 DWT(화물 적재량), 113만 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참고 : 2016년 기준 해운업계 매출은 28조8000억원, 지배선대 8586만 DWT, 원양 컨테이너 선복량 46만 TEU이다.]

김영춘 해수부 장관은 “이번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통해 조선업 경기 회복과 수출입 물류경쟁력 확보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연관 산업 간 시너지를 내겠다는 야심찬 포부도 드러냈다. 하지만 업계의 시선은 달갑지 않다. 시작부터 특혜 우려가 불거진 탓이다. 국내 해운업계 1위 원양선사인 현대상선에 정부 지원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운재건 계획 목표 중 2020년까지 원양 컨테이너 선복량을 113만 TEU까지 끌어올린다는 건 현대상선에 특화된 목표”라면서 “(국내 두 원양선사 중 하나인) SM상선이 적취율이나 브랜드 인지도 문제 등으로 신규노선을 개설하거나 신조 발주를 넣기 어려운 상황에서 원양 선복량을 키울 수 있는 건 현대상선 뿐인데, 드러내놓고 현대상선을 지원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로 해운재건 계획이 발표되기 무섭게 현대상선은 본격적인 재건 작업을 시작했다. 최근 현대상선이 3조원 규모의 컨테이너선 발주를 진행한 건 재건 작업의 일환이다. 현대상선은 4월 10일 2만 TEU급 컨테이너선 12척과 1만4000 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발주했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 발주는 해운재건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 논의된 사항이다. 2만 TEU급 선박은 구주 노선, 1만4000 TEU급 선박은 미주 동안 노선 운영을 위해 쓰일 계획이다. 오는 2020년 환경규제가 시행되고, 2M(머스크라인ㆍMSC)과의 협력관계가 종료되는 것을 감안한 전략적 선박 발주다. 건조금액 3조원(추정치) 중 10%는 현대상선이 부담하고 나머지 90%는 해운재건 계획에 따라 오는 7월 출범하는 한국해양진흥공사에서 지원받을 예정이다. 

공적자금 투입 기업의 또다른 혜택

이런 특혜 논란에 김영춘 장관은 “미주ㆍ구주 중심의 원양선사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현대상선 중심의 원양선대 회복을 정책 목표의 하나로 세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대상선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공기업”이라면서 “어떻게든 회생시켜서 (투입된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장관의 이런 해명은 또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혈세를 투입해 시장 불균형을 조장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신세돈 숙명여대(경제학) 교수의 지적을 들어보자. “해운산업의 장기발전계획을 제시하고, 모든 업체가 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두루 지원해야 할 해수부가 일부 업체, 특히 현대상선에 집중 지원하겠다는 건 편파적이고 다분히 정치적인 결정이다. 더구나 현대상선을 얼마나 지원하고, 어떻게 살려야 할지는 산업은행이 결정할 일이지 정부부처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신 교수는 현대상선을 공기업으로 봐야한다는 말도 꼬집었다. “산업은행이 대주주라고 해서 모두 공기업인 건 아니다. 공기업으로 봐야 할지 말지는 법적 기준에 따라야 하는데, 현대상선은 공기업이라고 볼 수 없다.”

문제는 김 장관의 논리가 또다른 불균형을 낳고 시장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상선의 3조원대 신조 발주를 같은 산업은행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에 몰아주는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현재 현대상선의 신조 발주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등 4개 조선사가 입찰했다.

하지만 “공적자금을 투입한 공기업을 우선 살려야 한다”는 김 장관의 논리대로라면 산업은행이 관리 중인 대우조선해양에 일감을 몰아줘야 한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없지 않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4월에도 최대 10척 규모의 초대형유조선(VLCC) 발주를 대우조선해양에 몰아줘 “산업은행 자회사끼리 짬짜미 계약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산 바 있다.[※참고 : 현대상선과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는 산업은행이다. 산업은행은 현대상선 지분 13.13%,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보유하고 있다.]

김영춘 해수부 장관은 “공기업에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해당 기업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사진=뉴시스]
김영춘 해수부 장관은 “공기업에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해당 기업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사진=뉴시스]

현대상선 관계자는 “과거 대우조선해양과의 거래가 전무했다면 그런 의심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현대상선은 현대그룹에 있을 때도 대우조선해양과 많은 거래를 했다”면서 “구체적인 기준을 밝힐 순 없지만 가격, 건조능력, 인도시기 등을 따져 공정하게 선정할 것”이라고 일부의 우려를 일축했다. 그럼에도 업계의 우려는 쉽게 떨쳐지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비슷한 조건이라면 팔이 안으로 굽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대우조선해양이 유리한 건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대상선은 이르면 5월 안에 건조를 맡을 조선사를 선정할 예정이다. 한 조선사에 일감이 몰릴 수도, 여러 조선사에 발주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그럼에도 3조원대의 수주액은 한 조선사 1년 수주목표량의 절반에 해당할 만큼 큰 규모다. 국내 조선사들이 이번 수주를 따내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다. 어설픈 논리를 들이밀며 시장을 어지럽혀선 안 된다는 얘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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