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위기설과 공포

‘4월 위기설’ ‘6월 위기설’ ‘9월 위기설’…. 잊을 만하면 위기설이 터진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 등 그 원인들은 색다르지 않지만 시장은 늘 휘청인다. 이번엔 6월 위기설이다.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출발했다. 페소 가치 하락으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한 게 아르헨티나 경제에 충격을 줬다. 아직까지 한국은 안전지대다. 남미를 제외한 다른 대륙에 ‘위기 인자’가 도착했다는 소식은 없다. 그럼에도 시장은 또 흔들린다. 혹시 모른다는 공포,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 탓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6월 위기설의 실체를 살펴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포와 불확실성 또한 시장을 흔드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6월 신흥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6월 신흥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국경제에 ‘6월 위기설’이 등장했다. 아르헨티나의 금융위기가 한국경제까지 전염시킬 거라는 전망이다. 국제금융전문가들은 “가능성이 희박한 이야기”라고 잘라 말한다. 풍부한 외환보유액, 73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 등 우리나라의 펀더멘털이 탄탄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불안한 시그널도 곳곳에서 울린다. 한국의 경제지표, 괜찮지만 참 찜찜하다.

1994년 멕시코가 페소화 위기를 맞았다. 수입 증가와 수출 부진이 부른 경상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였다. 1990년대 멕시코의 경제 성장을 이끈 시장 개방이 독이 된 것이다. 멕시코 정부는 부랴부랴 통화가치를 절하하는 전략을 택했다. 페소화의 평가절하로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 경상수지 적자를 해소하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전략은 통하지 않았다. 멕시코 경제를 향한 불안 심리는 빠르게 확산됐다. 외국인 투자자는 자금을 회수했고, 위기는 멕시코뿐만 아니라 브라질·아르헨티나 등으로 펴져나갔다. ‘독한 멕시코 테킬라에 이웃나라가 취한 것처럼 휘청거렸다’는 데서 ‘테킬라 효과’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꼭 24년 만에 남미발 위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주요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있어서다. 이번 진원지는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의 통화 ‘페소’의 달러화 대비 가치가 급락세(환율 상승)를 보이고 있다. 4월 2일 달러당 20.15페소였던 페소화 환율은 지난 15일 달러당 24.99페소로 치솟았다.

아르헨티나에 유입된 외국인 자본은 빠르게 이탈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4월 24일 27.25 %였던 기준금리를 지난 4일 40%로 인상했지만 빠져나가는 외국인 자본을 붙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3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문제는 아르헨티나의 위기가 다른 신흥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른바 ‘탱고 발작(Tango Tantrum)’이다. 주요 신흥국의 통화가치는 동반 하락세를 기록 중이다. 4월 이후 러시아의 루블화의 가치(5월 9일 기준)는 10% 하락했고, 브라질 헤알화의 가치도 8.7%나 떨어졌다. 같은 기간 터키(-8.4%), 멕시코(-7.6%), 남아프리카공화국(-6.1%) 등의 통화 가치도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신흥국의 통화가치 하락이 신흥국 경제 위기로 이어지는 ‘6월 위기설’이 제기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6월 위기설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6월 위기설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사진=뉴시스]

신흥국의 범주에 속하는 한국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국 증시에 머물던 외국인 투자자도 국내 증시를 떠났거나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 후유증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올 1월 이후 4개월 연속 순매도세를 이어가고 있다. 2월 1조5611억원을 기록했던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세는 3월(-7409억원), 4월(-1조380억원)을 기록했고 5월 들어서도 9348억원의 순매도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낙관론을 편다. 6월 위기설의 현실화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이유는 숱하게 많다. 무엇보다 외환보유고가 풍부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외환보유고는 3984억 달러(약 430조7500억원)에 이른다. 전년 동월(37 65억 달러) 대비 219억 달러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상수지는 73개월째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수지에 따르면 3월 경상수지는 51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현실화 가능성 낮은 ‘6월 위기설’

양준석 가톨릭대(경제학) 교수는 “한국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쉽게 넘길 정도로 다른 신흥국과의 차별화를 이뤘다”며 “단기적인 충격은 있지만 금융위기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냥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경제의 각종 지표가 경기침체를 가리키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고용시장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실업률은 4.1%를 기록했다. 수치는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3월의 4.5%에 비해 개선됐지만 지표의 질質은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취업자 수 증가폭이 2월 이후 3개월 연속 10만명대에 머물고 있어서다. 취업자 수 증가폭이 10만명대에 머문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10년 이후 8년 만이다. 실업자 수는 116만1000명으로 1월 이후 4개월 연속 100만명대를 넘어섰다. 특히 청년층의 체감실업률은 23.4%로 여전히 20%를 웃돌고 있다.

산업 활동도 위축되고 있다. 3월 전산업생산지수는 전월 대비 1.2% 감소하며 두달 연속 줄었다. 설비투자는 -7.8%를 기록하며 5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조업의 생산능력과 가동률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3월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102.4로 전월 대비 0.9%포인트 감소했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0.3%로 2009년 3월(69.9%)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한국경제를 이끄는 제조업 경기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 착시현상도 문제다. 수출이나 생산에서 반도체를 제외하면 둔화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김동원 고려대(경제학) 교수는 “2012년 대비 2017년 제조업 생산증가율은 4.8%였는데, 반도체와 전자부품을 빼면 -0.4%로 곤두박질친다”고 분석했다. 최배근 건국대(경제학) 교수는 “제조업 환경이 악화하는 건 경제의 체질이 나빠진다는 걸 의미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외부충격이 발생하면 경제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 정부의 경제성과는 지지율만큼 좋지 않다”며 “경제를 재정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15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도 한국경제의 걸림돌이다. 내수를 악화하는 단초로 작용할 수 있다. 최배근 교수는 “경기둔화와 자동차·조선·철강 등 주력 산업의 일자리 문제 등이 지방발 부동산 가격 하락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이런 문제가 확산할 경우 가계부채 위험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예상처럼 아르헨티나의 금융위기가 한국경제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미국 금리 인상과 맞물려 나타날 ‘보이지 않는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성태윤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위기설이 있다고 위기가 오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부 충격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며 “한국 경제가 지금은 괜찮아 보이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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