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독대가 뭔 문제인가
[윤영걸의 有口有言] 독대가 뭔 문제인가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290
  • 승인 2018.05.2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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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대는 가장 중요한 소통수단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재벌들과 독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대를 하지 않은 게 무슨 자랑거리인가 싶다.[사진=뉴시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재벌들과 독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대를 하지 않은 게 무슨 자랑거리인가 싶다.[사진=뉴시스]

노무현 대통령 취임 1년 남짓 지났을 때 일이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청와대로부터 점심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 윤 회장은 대통령에게 경제상황과 기업경영여건을 기탄 없이 말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백과사전 영업사원에서 출발해 그룹을 일군 윤 회장은 정말 신랄하게 참여정부의 각종 개혁정책을 비판했다고 한다.

배석한 김우식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제 경제보좌관(현 주미대사)은 듣기만 하고 대화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얼굴빛이 일그러지기는커녕 진지하게 경청하느라 예정시간을 30~40분 넘겼다. 윤 회장이 말한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실제 정책에 반영됐다고 한다. 윤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매력이 남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데서 나온 것 같다고 회고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독대를 즐겨하지 않는다. 재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직 시 재벌총수와 독대하며 재벌의 현안 해결과 뇌물을 맞교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기업인은 자신의 재임 5년 동안 단 한 사람도 청와대에 온 일이 없다”고 강변했다. 물론 혐의사실을 부인하기 위한 ‘강조 어법’이기는 하지만 독대를 하지 않은 것이 자랑이라도 되나 싶다.

경제를 살리려면 기업이 우선 잘 돌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의 시급한 현안이 무엇인지를 국가 CEO인 대통령이 알아야 한다. 기업인들을 청와대로 불러 수십명을 단체로 만나면 별 의미가 없다. 단체모임에서는 기업인도 대통령도 사전에 준비된 말만 한다. 서로 덕담이 오갈 뿐이다. 

정말로 기업의 절실한 이야기를 들으려면 대통령과 기업인이 1대1로 만나는 독대부터 해야 옳다. “기업이 정말로 힘들어하는 부문은 무엇인가?” “한국경제를 살리려면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2가지 질문만 해도 답이 나온다. 독대를 비리와 연결하면 한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독대를 통해 기업의 요구사항을 100% 들어주라는 뜻은 아니다.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고, 청와대 참모와 내각의 보고를 종합하면 대통령이 더욱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마련이다.

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경쟁력 강화’ 얘기는 아예 없고, 노동개혁은 말도 못 꺼내는 분위기이다. 중국은 제조업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제조 2025’ 계획을 세워 국가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한국 제조업은 중국에 다 먹히는 때가 올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자본주의 불공정 잡으려다가 제조업의 경쟁력을 되레 약화시키고, 강남 아파트 값을 잡으려다 지방부동산의 거래마저 끊기게 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무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정책은 오히려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 실업문제가 저절로 해소될 텐데 기업을 옥죄기만 하니 기업이 자꾸 떠나려 한다. 해외로 나간 기업들만 돌아와도 일거에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외국으로 떠난 기업이 돌아오게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주는 창조적인 혁신이 시급하다.

한국의 대통령은 자칫 오만해지기 쉬운 자리다. 할 수 있는 일은 여대야소의 국회 벽에 갇혀 별로 없는데 인사권은 거의 무한대로 허용된다. 그러니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오판하기 십상이다. 오만은 소통으로 넘어야 한다. 지금 청와대의 홍보는 지지층의 여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접근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홍보가 전면에 나서고 토론이 배제되면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주변이 적극적 지지자로 채워지면 대통령은 소외되고, 비판적 지지자들은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나와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은 ‘틀리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르다’고 생각해야 답이 나온다.

청와대의 홍보 능력은 얘기를 꺼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보와 소통은 다르다. 홍보는 자신의 치적을 알리는 데 방점을 둔다면, 소통은 반대편의 주장을 듣는 데 무게중심이 있다. 독대는 가장 중요한 소통수단의 하나다.

우리 국민의 수준이나 문 대통령의 청렴한 이미지로 볼 때 청와대에서 재벌총수와 독대를 했다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설사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면 어떤가. 지도자의 책무는 아무리 오해를 사더라도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고 우직하게 추진하는 데 있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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