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바이오 시대 열릴까 

과기부는 2018년을 바이오원년으로 삼았다. 올해를 글로벌 바이오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해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바이오원년을 선언한 게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황우석 박사가 열풍을 일으켰던 2004년에도, 한미약품이 기술수출계약을 잇따라 성사시킨 2015년에도 ‘바이오원년’이라는 슬로건이 나부꼈다. 하지만 이 슬로건은 ‘말의 성찬盛饌’에 그쳤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바이오원년의 허술한 자화상을 살펴봤다. 

1990년대 말 이후로 끊임없이 바이오 붐이 일었다. 하지만 진짜 바이오원년이라고 부를 만한 때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90년대 말 이후로 끊임없이 바이오 붐이 일었다. 하지만 진짜 바이오원년이라고 부를 만한 때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18년을 바이오경제 혁신의 원년으로 삼아 향후 글로벌 바이오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진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이 올 1월 밝힌 포부다. 그는 구체적인 계획도 발표했다. 이른바 ‘바이오분야 원천기술개발사업’인데, 여기엔 과기부가 내놓은 ‘바이오경제 혁신전략 2025’를 실행할 수 있는 중점과제가 담겨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020년까지 바이오ㆍ첨단의료기반기술 분야의 핵심원천기술을 확보ㆍ실용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글로벌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사업 추진체계를 구축하자.” 

하지만 바이오원년 계획이 알찬 성과로 이어질지를 두곤 의문이 잇따랐다. ‘바이오원년’을 내걸며 글로벌 바이오 강국으로의 도약을 선언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닷컴 열풍과 함께 불어닥친 바이오 붐은 숱한 바이오원년을 만들어냈다. 멀게는 2004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가 한국사회를 뜨겁게 만들었고, 2005년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10년까지 8개의 바이오신약과 20개의 개량신약을 만들겠다”면서 바이오원년으로 삼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5년 한미약품이 총 7조5000억여원 규모의 신약 기술수출계약을 잇따라 체결하고, 2016년 바이오산업에 투자금이 몰리면서 신규 창업한 바이오벤처 수가 사상 최대 수준인 443곳에 달했을 때에도 ‘바이오원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숱하게 많았던 바이오원년은 기대에 부응할 만한 실적을 남기지 못했다. 현재까지 세계시장에서 시판 허가를 받은 국내 의약품은 총 21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약 9개, 유럽의약청(EMA)이 인정한 약 12개를 합친 수다. 이 가운데 미국ㆍ유럽에서 동시에 허가를 받은 중복 의약품 4개를 제외하고, 특허 문제로 차질을 빚고 있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의약품 2종을 빼면 세계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의약품은 15개로 줄어든다.

 

게다가 이중에서 국내 기술로 개발한 신약은 팩티브(LG생명과학 항생제), 시벡스트로(동아에스티 항생제), 앱스틸라(SK케미칼 혈우병치료제), 피라맥스(신풍제약 말라리아치료제) 등 4개에 불과하다. 이중 SK케미칼의 앱스틸라만이 바이오신약이다. 나머지 11개 제품은 기존 의약품의 복제약인 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로, 엄밀히 따져 신약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고 기대만큼의 실적을 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2003년 국내 의약품 중 최초로 미 FDA의 허가를 받은 LG생명과학의 신약 팩티브는 세계시장 매출이 연 150억원가량에 그쳐 사실상 고배를 마셨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3년 출시된 한미약품의 개량신약 ‘에소메졸’은 100억원 미만(국내 매출 200억원대)의 매출만 줄곧 기록하다가 지난해 판권을 다른 의약품 마케팅 전문업체(R2파마)에 넘겨버렸다.

실체 없이 기대감으로 뜬 주가 

바이오신약 앱스틸라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판매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아직까지 실적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셀트리온의 자가면역질환치료제 ‘램시마’가 올 1분기 1046억원(해당 약품 글로벌 시장 규모 약 9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게 위안거리다.

지난해 파란을 일으켰던 신라젠, 바이로메드, 코오롱티슈진 등 바이오 업체들의 실적도 마찬가지다. 신라젠은 지난해 11월 석달여만에 주가가 5배가량 뛰어오르며 장중 최고가 15만2300원을 찍었지만 지난 9일 6만4000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주가하락의 원인은 역시 신통치 않은 실적이다. 지난해 신라젠은 전년 대비 40억원이 늘어난 50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신라젠의 대표 신약 후보물질 ‘펙사벡’은 “가능성은 있지만 시판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냉정한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로메드 주가는 30만3800원에서 지난 8일 18만6700원으로 내려앉았다. 실적도 저조했다. 지난해 6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상장하기 무섭게 가파른 상승세를 탔던 코오롱티슈진도 기세가 꺾였다. 7만510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올 5월 3만4100원으로 반토막 났다. 15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적자로 돌아선 게 영향을 미친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초기 바이오업체의 거품은 저조한 실적과 함께 대부분 빠졌다”면서 “내세울 수 있는 실적이 바이로메드가 개발 중인 의약품이 미 FDA로부터 ‘첨단 재생의약 치료제(RMAT)’로 지정됐다는 것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바이오붐을 일으켰던 이슈들이 지속가능한 성장발판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2015년 업계를 뜨겁게 달군 한미약품의 신약기술 수출계약이 잇따른 계약파기와 임상중단으로 신뢰를 잃은 건 대표적 사례다.


이제 첫 이슈로 다시 돌아가 보자. 과기부가 선전포고한 대로 올해는 바이오원년이 될 수 있을까. 일부에선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흘러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정책이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을 통한 글로벌 강국으로의 도약’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꼬집는다. 올해가 바이오원년이 되려면 2~3년 안에는 매출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짧은 기간에 경쟁력 있는 신약을 개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단기성과를 낼 수 있는 바이오시밀러에 힘을 쏟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시장에 시판된 의약품 중 그나마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건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 제품이다.[사진=뉴시스]
글로벌 시장에 시판된 의약품 중 그나마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건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 제품이다.[사진=뉴시스]

업계 한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바이오시밀러는 설비를 기반으로 한 사실상 장치산업이다. 이미 있는 약이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높고, 시장이 활성화돼 있어 별도의 마케팅이 크게 필요 없다. 반면 혁신 신약은 대규모 생산이 어렵고, 기술집약적이다. 시판되더라도 마케팅, 약물 사용에 따른 연구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현재 신약 성공가능성이 가시권에 있는 업체도 드문 데다, 이런 장벽을 딛고 2~3년 안에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곳은 더욱 많지 않다. 정부 지원이 일부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위한 용도로 변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 사람들은 툭하면 바이오원년을 내뱉었다. 이 말에 시장은 꿈틀댔고, 바이오업체들의 주가는 출렁였다. 하지만 원년이 될 만한 환경이 조성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2018년도 어쩌면 그렇다. 바이오산업을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할 때다. 지나치게 앞서나가면 버블만 낀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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