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제는 양자관계 아닌 다자관계의 문제

북한 문제는 다자관계의 문제로 변했다. 이런 상황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사진=뉴시스]
북한 문제는 다자관계의 문제로 변했다. 이런 상황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사진=뉴시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을 보면 새벽 안개 속에 길을 잃은 느낌이 든다. 여주인공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 중 만난 부시맨들이 사용하는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를 얘기한다. 각자 다른 길을 가는 청춘의 두 얼굴을 그리는 메타포가 아닐지 싶다. ‘리틀 헝거’는 육체적인 굶주림에 직면한 말 그대로 먹을 것이 필요한 사람을 지칭한다. ‘그레이트 헝거’는 음식만으로 허기를 달래는 차원을 넘어 ‘삶의 의미’라는 정신적인 차원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배우 유아인이 연기하는 종수는 해체된 가정과 비인격적인 사업장에 종속된 ‘리틀 헝거’ 대신 사랑을 찾아 나서는 ‘그레이트 헝거’가 된다.

북한 핵 문제는 한반도의 운명과 동북아의 미래를 건 ‘그레이트 게임’이다. 미국 대통령은 공교롭게 이름이 포커카드인 ‘트럼프’다. 일찍이 「거래의 기술」이란 책까지 펴낸 게임의 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에서 흥행 대박을 노린다. 노벨평화상은 물론 중간선거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는 김정은과 포커를 치면서 언제든지 패를 던질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를 단행한 날 회담 취소를 선언한 트럼프와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상대국을 거세게 비난하는 북한을 보면 판돈의 크기를 실감케 한다. 불신이 크다보니 외상 거래 대신 현금 거래나 선불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할아버지부터 3대에 걸쳐 준비한 북한 핵을 벼르고 별러 시장에 내놨으니 절대로 헐값에 팔지 않을 것이다. 재고(핵)를 값비싸게 처분하면서도 미국과 동등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북한의 약점은 그동안 너무 자주 약속을 어겨 이미 ‘늑대소년’으로 낙인 찍혔다는 거다. 2005년 6자회담은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를 규정한 9ㆍ19 공동성명에 합의했지만 북한은 이후 사찰ㆍ검증에 반발하며 합의를 깼다.

북한이 핵폭탄(핵물질)을 몇개나 어디에 갖고 있는지는 김정은만 알고 있다. 미국은 20~100개 정도로 추정만 할 뿐이다. 핵물질 1개는 야구공만 하고 북한에는 땅굴이 1만개에 달한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6자회담 대표는 “북미정상회담 성공에 맥주 1잔 값도 걸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북한은 핵 포기를 할 의사가 별로 없고, 미국은 단계적인 보상 준비가 소홀하다는 이유다. 비핵화는 북한을 핵무장 국가로 인정하느냐 않느냐의 문제여서 중간 단계에서 접점을 찾기 어렵다.

당사자이면서도 중재자인 한국은 자칫 판이 깨지면 온통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 협상이 잘 끝난다고 해도 엄청난 규모의 고지서는 남한 몫이 대부분이다. 일본ㆍ중국ㆍ러시아는 도와주기는커녕 여차하면 판을 깰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늑대의 소굴에 혼자서 들어가지 마라!”는 노름판 격언이 있다. 북한 문제는 남북 양자관계가 아니라 다자관계의 문제로 변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답이 나온다.

순진하면 당한다. 도박은 원래 속임수를 한 자락 깔고 시작한다. 배신에 울고 웃는 게 인생이고, 국제관계다. 첫번째 당하는 배신은 상대방 탓이지만, 같은 사람에게 두번째로 당하면 피해자 책임이다. 북한 김정은의 관심사는 체제 유지에 어느 쪽이 도움 되느냐가 절대적이다. 그런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바뀌기란 쉽지 않다.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요란한 팡파르와 함께 장밋빛 희망이 우리를 설레게 할 것이다. 세계가 들떠도 우리는 철저히 의심하고 검증해야 한다. 수세에 몰리면 한국의 손을 잡았다가 이내 얼굴을 돌리는 게 북한이다. 자칫 미국으로부터 불신을 사고, 북한의 배반으로 최악의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는 점을 대비해야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국민은 반드시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고대 북아프리카 강대국 카르타고가 역사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평화에 대한 환상 때문이었다. 로마와 평화협상을 한다며 주전파를 처형하고 병장기를 모두 내려놨지만 결과는 처참한 살육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비관하고 냉소하는 것도 답은 아니다. 당분간이라도 북한이 도발을 하지 못하고, 북한에 국제자본이 들어가게 되면 우리에게 엄청난 기회다. 이 때 한반도 평화의 실마리를 낚아채야 한다. 운명의 신은 언제 한반도에 평화의 미소를 지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노름판에 좋은 놈, 나쁜 놈은 없다. 잃은 놈과 딴 놈이 있을 뿐.” 오래 전 영화 ‘타짜’에 나오는 말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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