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에 부닥친 소득주도성장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상승세를 타는데, 고용지표는 최악이다. 건설 및 설비투자는 증가했지만 업계 활력은 떨어졌다. 당연히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극단이다. 한편에선 소득주도성장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에선 단기성과에 집착하면 더 큰 실수를 할 수 있다고 꼬집는다. 대체 지금은 어떤 상황일까.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장벽에 부닥친 소득주도성장론의 갈길을 내다봤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을 향한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을 향한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3%대 성장 회복, 올해 1분기도 1.1% 성장률을 기록해 3%대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경제적인 삶이 좋아지고 있다고 체감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 5월 31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밝힌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다. 개선되고 있지만 미흡한 부분이 많다는 표현처럼 한국경제는 지금 ‘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에서 보면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보면 경기침체의 문 앞에 서있는 듯하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당연히 낙관론을 펼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5월 금통위원회의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제 여건에 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며 “국내경제가 비교적 견실한 성장세를 지속해왔기 때문에 3% 성장 전망을 수정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5월 발표한 ‘최근 경기동향(그린북)’ 자료에서 처음엔 넣지 않았던 ‘전반적으로 회복 흐름이 이어지는 모습’이라는 문구를 추가하면서까지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주장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국민소득 잠정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분기 GDP 성장률은 1.0%를 기록했다. 전망치인 1.1%에 0.1%포인트 하락했지만 지난해 4분기 -0.2%에서 다시 플러스로 돌아선 건 긍정적이다. 지출항목별로 살펴보면, 건설투자는 지난해 4분기 -2.3%에서 1.8%로 반등하는 데 성공했다. 설비투자는 전망치에 비해 1.8%포인트 떨어진 3.4%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2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찍었다. 

제조업과 건설업은 각각 1.6%, 2.1%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특히 서비스업은 1.1% 증가하며 2013년 2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내구재 소비 증가로 민간소비도 증가세를 유지했다. 올해 1분기 가구(2인 이상)당 평균 소득은 476만3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 늘었다. 2014년 1분기 이후 최대 증가율이다. 실질소득도 2014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은 2.4% 증가했다. 성장률도 증가하고 소득도 늘었으니 정부의 발표대로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경기침체를 경고하는 지표들도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게 실업률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2만3000명을 증가하며 2월 이후 3개월째 10만명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제조업과 도·소매업의 취업자 수가 전월 대비 각각 6만8000명(1.5%), 6만1000명(1.6%) 감소했다. 체감실업률은 11.5%, 청년체감실업률은 23.4%를 기록하며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고용시장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견조한 GDP 성장률


국내 산업의 활력도 떨어지고 있다. 통계청의 4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전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1.5% 증가했지만 이는 반도체 덕이었다. 광공업생산을 이끈 건 9.9%의 증가율을 기록한 반도체였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생산은 같은 기간 제자리걸음을 걸었지만 주식거래대금 증가, 보험영업 증가에 힘입은 금융·보험업이 2.1% 증가했기 때문이다. 도·소매업은 2.1%나 감소했다.

소매판매도 마찬가지다. 4월 소매판매(-1%·전월 대비)는 4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4월 전문소매점(-1.6%), 대형마트(-2.2%), 백화점(-1.1%), 슈퍼마켓(-0.7%) 등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돌아온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덕분에 면세점 판매가 전년 동월 대비 61.4%나 늘어지 않았다면 소매판매 지수는 끔찍할 뻔했다. 나쁜 경제지표가 속출하자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을 수정해야 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소득양극화가 되레 심화했기 때문이다. 올 1분기 기준 1분위 가구(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128만6700원으로 전년 대비 8%나 감소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의 소득은 1015만1700원으로 9.3%나 증가했다. 그 결과, 1분위와 5분위의 격차를 나타내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95배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최저임금 인상의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4일 발표한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KDI는 정부의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2019년과 2020년 15%씩 인상될 경우 각각 9만6000명, 14만4000명의 고용이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의 큰 인상폭이 유지될 경우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엇갈리는 경제지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최배근 건국대(경제학) 교수는 “반도체 효과, 추경 등을 제외하면 국내 경기가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말하긴 쉽지 않다”며 “이는 경기를 가장 잘 반영하는 고용지표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착시효과’ 걷어내야

김공회 경상대(경제학) 교수도 “고용지표는 여전히 악화하고 있다”며 “최저임금인상이 고용지표 악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는 게 해법은 아니라면서 고용주가 최저임금을 올려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영세자영업자, 중소기업 등 임금 지급 능력이 높지 않은 사람이 임금을 올려줘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의 주체인 대기업은 비켜나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대형프랜차이즈 기업이 하청업체와 가맹점이 임금인상에 나설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줘야 한다. 공정위 등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홍석철 서울대(경제학) 교수는 시장의 비판을 이기지 못하고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 더 큰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 교수는 “소득주도 성장론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한 분기의 수치만 두고 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건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득주도 성장은 큰 의미에서 복지정책에 가까워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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