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상가 슬픈 경제학] 상인, 지하에서 울다
[지하상가 슬픈 경제학] 상인, 지하에서 울다
  • 이지원 기자
  • 호수 291
  • 승인 2018.06.08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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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임대료 탓에 상인들 애간장
쇼핑공간 메리트 더이상 없어
불황 없다던 지하상가의 민낯

지하상가가 사지死地가 되고 있다. 모바일로도 쇼핑하는 세상에서 굳이 지하에서 쇼핑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지하에 머물지 않는다. 스치는 사람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이는 지하상가 상인들이다. 전문가들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뿐만 아니라 지하에서 소상공인들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때다”고 지적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지하상가의 슬픈 경제학을 풀어봤다. 

지하상가 공실률이 급증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지하상가 공실률이 급증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불황도 비켜가는 지하철상가.” “화장 고치고 살아난 지하철상가.” “지하철역 대전大戰.” 2000년대 초반 지하철상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다. 2004년 화장품 로드숍 브랜드 더페이스샵이 지하철에 매장을 내고 브랜드 인지도를 단숨에 올린 게 시발점이 됐다. 이후 화장품뿐만 아니라 편의점, 베이커리 브랜드 등이 지하철 상가에 입점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2015년에는 미샤(에이블씨엔씨)와 네이처리퍼블릭이 수백억원대 입찰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네이처리퍼블릭이 상가 60여개를 낙찰받기 위해 써낸 금액은 3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지하철 상권은 명성을 잃은 지 오래다. 최근 지하철상가는 고사 직전에 놓여있다. 지하철상가 공실률은 2014년 7.4%에서 지난해 15.9%로 두배 이상 급증했다. 2015년 2055개였던 점포수는 현재 1867개로 쪼그라들었다. 지하철상가를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수익사업을 위해 지하철 점포를 과도하게 늘린 측면이 있다”면서 “환경 개선을 위해 점포를 일부 정리했다”고 말했다.

업체들이 지하철을 떠나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수익성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에이블씨엔씨 관계자는 “2015년 재입찰 당시 임대료가 5년 전보다 2.5배 이상 증가했다”면서 “그 정도 임대료를 내고서는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여서 매장을 철수했다”고 말했다. 에이블씨엔씨는 2016년까지 미샤의 지하철 매장 100여개 중 70여개를 철수했다.

에이블씨엔씨를 제치고 입찰에 성공한 네이처리퍼블릭의 상황은 어떨까.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8개 지하철 매장 운영을 접었다”면서 “비효율적인 매장을 구조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하철 3호선 고속터미널역에 위치한 네이처리퍼블릭 매장의 경우, 28.8㎡(약 8평) 규모에 월 임대료가 3000만원에 달한다. 신촌역 매장은 33㎡(약 10평)에 월 임대료가 4200만원이다.

편의점 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하철상가 편의점은 2015년 195개(법인계약 기준)에서 올해 161개로 감소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한 관계자는 “서울교통공사가 제시하는 입찰금액이 높은 편”이라면서 “상권이 좋은 매장과 좋지 않은 매장을 묶어서 입찰에 부치고 있어, 낙찰 받아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꼬집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유동인구와 입지조건을 고려해 입찰 기초가격(하한선)을 제시하고 있다”면서도 “내부적으로도 임대료가 높다는 지적이 있어, 입찰 기초가격을 낮췄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하철 상인의 목소리는 다르다. “이미 전대가 횡행하고 있어 임대료가 떨어지지 않는다.”

달콤한 임대수익, 결국 부메랑

서울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지하도상가에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서울시설관리공단은 지하철 개찰구 주변 상가(서울교통공사 운영)를 제외한 강남ㆍ영등포ㆍ을지로지하상가 등 대규모 지하도상가 25개(점포수 2800여개)를 운영하고 있다. 이중 20개 상가는 2009년부터 위탁업체에 운영을 맡기고 있다. 민간에 사업을 맡겨 지하상가를 활성화한다는 게 목적이었다.


문제는 위탁업체가 운영을 맡은 후 상인들의 불만이 커졌다는 점이다. 을지로지하상가가 대표적이다. 2011년 서울시설관리공단과 계약을 맺은 위탁업체는 사업계획서대로 2012년 상가 리모델링 공사를 실시했다. 공사비와 관리금은 상인들에게 부과했고, 공사비 회수기간은 2020년까지 10년으로 정했다. 상인들이 공사비를 10년 동안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다. 2012년 상인회가 공정위에 위탁업체를 대상으로 불공정약관심사 청구를 제기한 이유다. 공정위는 “위탁업체가 자진시정했다”고 밝혔지만 상인들은 여전히 분통을 터뜨린다.
 

지하상가에서 30여년째 잡화점을 운영해온 김명자(70ㆍ가명)씨는 “공사비에 관리비까지 더해 임대료가 60만원인데, 오늘 매출이 1만5000원이다”면서 “남은 재고를 정리하려고 자식에게 받은 용돈으로 임대료를 내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효과가 상인들의 수익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거다.

김씨는 “효과 없는 공사에 돈 쓸 바에 임대료를 낮춰달라는 게 상인들의 솔직한 심정이다”면서 “젊은 사람은 못 버티고 위약금을 물고 나가는 경우가 숱하다”고 말했다. 위탁운영 후 위약금 부담도 커졌다는거다. 서울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공단 직영 상가의 경우 퇴거 2개월 전에 고지하면 위약금이 없지만 위탁업체가 상인들과 개별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는 일부 위약금이 있다”고 말했다.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한재범(50ㆍ가명)씨도 급증한 비용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점포를 옮겼다. “그동안 120만원씩 임대료를 내왔는데 공사비가 추가돼 매달 200만원을 훌쩍 넘겼다. 과거보다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는데 공사비까지 감당해야 하나. 겉보기에 번지지르해도 손님이 안 드는데 무슨 소용이겠나.” 실제로 을지로지하상가 공실에 붙어 있는 입찰공고에 따르면 35.57㎡(약 11평) 규모 매장의 월 임대료(이하 부가세 별도) 103만원으로, 보증금은 월 임대료 24개월분이다. 여기에 월 공사비 40만4100원, 관리비, 평당(2만5000원) 관리비, 공과금은 별도였다.


위탁업체도 할 말은 있다. 계약 당시 서울시설관리공단이 ‘공사비를 70억원을 선납하고, 상인들에게 분할 회수하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거다. 업체 관계자는 “공사비 회수는커녕 공실률이 높아 적자만 쌓여가고 있다”면서 “도보를 중심으로 공사했는데, 공단측은 도보는 자기 소관이니, 우리는 상가만 관리하라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서울시설관리공단과 위탁업체의 수익까지 챙겨주느라 상인들의 허리만 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쇼핑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지하상가가 쇼핑공간으로서 메리트를 갖기 어려워졌다.[사진=뉴시스]
쇼핑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지하상가가 쇼핑공간으로서 메리트를 갖기 어려워졌다.[사진=뉴시스]

이렇게 상인들의 곡소리가 커지는 데도 서울시설관리공단은 ‘운영효율화’를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상가관리는 쇼핑몰 운영 경험이 있는 민간에 맡기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면서 “상가 리모델링 시점과 겹치면서, 상인들이 공사비를 부담하게 됐지만 대신 계약기간을 5년 더 연장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장 몇 달도 버티기 어려운 상인들에게 ‘계약기간 5년 연장’이라는 원치 않는 혜택만 던져준 셈이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공익적 목적의 공간인 만큼 서울시설관리공단이 직접 운영해야 한다”면서 “위탁운영을 맡겨야 한다면, 추가적인 부담 등이 상인들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단만 편한  ‘운영효율화’

또 다른 문제는 지하상가가 더 이상 쇼핑 공간으로서의 메리트를 갖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대형쇼핑몰과 아웃렛 등이 급증한 데다 온라인쇼핑 시장이 활성화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하상가가 아니더라도 쇼핑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졌다”면서 “당장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면 굳이 지하상가에서 구입할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고 말했다. 계단이 많아 오르내리기 어렵고, 공기의 질이 나쁘다는 점도 지하상가를 향한 발길이 줄어드는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서울시가 시민의 보행편의 증진을 위해 횡단보도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버스 중앙차로를 확대하고 있어 지하철 상가와 지하상가가 처한 환경이 밝지만은 않다.

 

그 결과 액세서리나 화장품, 의류 판매 매장이 줄고 빵, 분식, 커피 판매점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선릉역에는 최근 1~2년 사이 김밥을 파는 분식점이 3개나 들어섰다. 빵과 커피를 포함한 식품판매 매장이 6개에 달했다. 지하상가 상인은 “지하상가에서 쇼핑하는 사람은 줄고, 바쁜 출퇴근 시간에 요깃거리를 사가는 직장인이 늘었다”면서 “목이 좋은 자리에는 음식파는 가게가 들어서는 추세다”고 말했다.

머무는 공간이 아닌 스치는 공간이 돼버린 지하상가, 쇼핑공간으로서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게 첫걸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제선 연세대(도시공학과) 교수는 “지하상가 개선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보행 편의성이 지상에 비해 뒤처질 수밖에 없다”면서 “시청에서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지하상가의 경우, 곳곳에 쉬어갈 수 있는 매개공간을 마련해 사람들이 머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상인들도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매장을 정리하고, 특화된 제품이나 콘텐트를 개발하지 않으면 상권을 되살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석 서울시립대(도시공학과) 교수는 “공실을 청년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해줘 지하상가의 특성을 살리는 것도 방법이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예술의전당과 연결되는 남부터미널 지하상가를 음악 하는 청년들에게 레슨공간이나 연습공간으로 임대해주면, 사람들이 머물게 되고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하상가에 다시 빛 들까

공기업이 임대수익을 챙기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제선 교수는 “지상에선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관심이 높고, 대안이 마련되고 있지만 지하에서 벌어지는 소상공인의 어려운 처우는 관심 밖에 있다”면서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설관리공단이 임대료 챙기기 바쁜 ‘건물주’는 아닌지 점검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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