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울교통공사 개선안 왜 안 먹히나

지하철 상권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온다. 높은 임대료, 저조한 매출, 권리금 등 이유는 다양하다. 지하철ㆍ지하도상가를 운영 중인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가 개선안을 꺼내들었지만 상인들의 울분은 여전하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엉뚱한 방향의 개선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지하철 상권의 고질적 문제를 취재했다.
 

지하철상가 상인들에겐 저리 융자보다 임대료 및 위약금 개선, 상권 활성화 문제가 더 시급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하철상가 상인들에겐 저리 융자보다 임대료 및 위약금 개선, 상권 활성화 문제가 더 시급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손님은 줄고, 임대료는 오르고, 문 닫으려니 위약금 물어야하고, 삼중고가 따로 없었다.” 지하철상가 위주로 매장을 운영 중인 한 의류업체의 얘기다. 이 업체는 최근 몇년 새 가파르게 줄어든 매출과 훌쩍 오른 임대료 탓에 운영 중이던 매장 몇곳을 반환했다. 모바일을 이용한 온라인 쇼핑이 활발해지면서 지하철상가엔 발길이 뚝 끊겨서다. 대기업들이 입찰 경쟁에 끼어들면서 임대료를 크게 올려놓은 것도 부담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매장을 내놓는 것도 좋지 않은 일인데, 반환 과정까지 순탄치 않았다. 계약기간이 남아있으니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위약금 때문에 적지 않은 손해를 봤지만 우리는 나름 작지 않은 회사여서 사정이 나쁘지 않다”면서 “하지만 위약금 내는 게 버거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업자들은 그곳에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지하도상가도 문제가 적지 않다. 지하도상가는 지하철상가에 비해 임대료는 낮은 편이지만 권리금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2억~3억원은 기본에 일부 목이 좋은 곳은 십수억원에 달한다. 전대轉貸와 전대의 전대가 얽히고설키면서 권리금이 천정부지로 솟은 결과다. 임대료가 낮고 유동인구가 많아 소상공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지하철 상가가 골칫거리 신세로 전락한 이유다. 

그렇다고 대책이 논의되지 않은 건 아니다. 지하철상가의 운영주체인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상가에 입점해 있는 소상공인들의 고충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금융지원책을 꺼내들었다. 지난 5월 29일에는 우리은행과 ‘서울 지하철 역사 입점 소상공인 금융지원 업무 협약식’도 체결했다. 서울교통공사와 우리은행은 “1개 업체당 최대 1억원을 5년간 연 2% 안팎의 금리로 대출해주겠다”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10월에도 국민은행, 서울신용보증재단 등과 함께 지하철상가에 입점한 소상공인들에게 저리융자를 지원한 바 있다.

 

하지만 지하철상가 상인들은 “이런 지원방안은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데서 나온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면서 콧방귀를 뀌고 있다. 한 상인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지하철상가 활성화 대책과 임대료 및 위약금 문제의 개선책이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지하철 상가의 임대료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33㎡(약 10평) 규모 매장의 월 임대료가 수천만원대에 달하니 임대료만 따져보면 강남 한복판의 상가보다 10배 가까이 높다.[※참고 :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강남역 인근 상가의 평균 임대료는 33㎡당 129만원이었다.]

서울교통공사 지원에 상인들 콧방귀

이런 문제 탓에 일부에선 서울교통공사가 임대수익을 벌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액세서리 매장을 운영 중인 한 상인은 “상권은 죽어가고 임대료는 치솟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지 않은 채 융자만 지원해주겠다는 건 빚져서 돈 가져다 바치라는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는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입점 업체에 필요 없는 상가의 임대를 강요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중고서점을 운영하는 알라딘커뮤니케이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알라딘커뮤니케이션은 지난 2016년 잠실역에 매장을 들이기 위해 서울교통공사와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당시 서울교통공사는 업체가 원치 않는데도 11개 상가를 전부 임대하는 조건을 내세웠고, 알라딘커뮤니케이션은 부득이하게 계약을 체결해 현재 11개의 상가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가 권리금 문제를 해소하겠다면서 지난해 6월 발의한 ‘서울특별시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안(2017년 6월 서울시 발의)’도 논란이 많다. 이 개정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지하도상가 임차권의 양도ㆍ양수를 허용하는 현행 조례가 사회적 형평성에 어긋나는 불법권리금을 유발하고 있어, 임차권 양도ㆍ양수를 금지한다.” 쉽게 말해, 현재 만연해 있는 전대를 막고 지하도상가 운영주체인 시설관리공단이 경쟁입찰을 통해 상가를 임대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이 개정안에 찬성하는 상인들은 많지 않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자 단 보름 만에 570건에 이르는 반대의견이 달렸을 정도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수억원의 권리금을 주고 애써 입점했는데 임차권 양도가 막히면 권리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는 2015년 5월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조항이 신설됐지만 해당 상가건물이 국ㆍ공유 재산일 경우엔 인정되지 않는다. 서울시가 소유하고 시설관리공단이 관리하는 국ㆍ공유재산인 지하도상가가 이 예외조항에 해당한다. 

임차인 자살 이끈 권리금 문제

문제는 조례개정안이 법적으로 오류가 없다는 점이다. 서울시의회(9대) 임기가 끝나는 오는 6월 안에 개정안이 통과하면 상인들로선 하소연할 공간마저 막히는 셈이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대표는 “지하도상가 상인들의 권리금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임차인 간에 오가는 붕 떠 있는 돈”이라면서 “임차인들의 사정은 딱하지만 법적으로 보장을 해줄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한 지하도상가 상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까지 있었을 정도로 권리금 문제는 심각하다”면서 “향후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빨리 방지책을 만들어 놓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지하철ㆍ지하도상가의 문제점은 해소될 수 있을까. 서울교통공사는 상인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중도해지 위약금 규정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희망을 말하기 어렵다. 운영주체의 대책과 상인의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다. 진짜 상생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