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와 기름값의 문제

더스쿠프(The SCOOP)는 올해 1월(통권 273호) ‘휘발유 온도 기준이 15도인 걸 아시나요?’라는 기사를 냈다. 기사가 나온 후 일부에선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지만, 정유업계와 주유소업계 관계자들은 “주유기 오차범위를 줄이는 게 더 나은데 왜 굳이 실효성도 없는 온도 타령이냐”며 반박했다. 

하지만 15도 기준은 단순히 온도변화에 따라 소비자가 기름을 덜 받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가 내는 세금과도 연관성이 있다. 우리가 유류세의 비밀을 다시 한번 짚어본 이유다.

 

기름의 온도기준은 소비자가 내는 세금과도 연관성이 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름의 온도기준은 소비자가 내는 세금과도 연관성이 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류세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유가가 확 뛰어오르면서 나오는 얘기다. 하지만 단지 유류세만 낮춘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각종 유류세는 1리터(L)를 기준으로 매긴다. 섭씨 15도를 기준으로 원유를 수입하니, 석유제품 판매기준도 같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통단계엔 15도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 않아서다. 산자부는 이를 알면서도 “별 문제가 아니다”고 말한다. 대체 뭘까. 

15도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석유제품의 정량을 올바로 측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사진=뉴시스]
15도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석유제품의 정량을 올바로 측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사진=뉴시스]

기름값이 치솟고 있다.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5월 5주차 전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L당 1605원이었다. 같은달 1주차 가격(1557.3원)보다 47.7원 올랐다. 같은 기간 경유는 50원이 올랐다. 국제유가가 급등한 탓이다. 

이럴 때 등장하는 단골 뉴스가 있다. 바로 기름값 논쟁이다. 국제유가와 국내유가가 연동되지 않는다는 주장과 반론이 대표적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국제유가가 요동치자 화살은 정유사와 주유소로 날아갔다. 그들의 반론은 한결같았다. “국제유가가 국내유가에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종종 떨어질 때 국내유가가 단 한번도 떨어지지 않고 오름세를 기록한 건 한두번이 아니다. 정유사나 주유소가 이를 해명한 적도 없다. 게다가 오를 때는 팍팍 오르고, 내릴 때는 찔끔찔끔 내리는 국내유가 앞에서 그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정유사들은 정부로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석유제품에 매겨진 고정적인 세금 때문에 국제유가가 확 떨어져도 국내유가는 크게 내리지 않는다.” 국내유가가 국제유가와 연동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세금으로 논란을 돌린 셈이다. 그럼에도 이 주장은 꽤 그럴듯하게 들린다. 석유제품의 소매가격에서 절반 가까이가 세금이기 때문이다. 

그럼 석유제품에 붙는 세금만 조금씩 줄이면 이 지긋지긋한 기름값 논쟁도 마무리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기름에 세금을 매기는 구조 자체에 커다란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정부와 정유사들의 교묘한 꼼수도 숨어 있다. 

 

석유제품에 붙는 세금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부터 보자. 휘발유를 기준으로 보면 휘발유 1L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L당 529원), 주행세(교통세의 26%ㆍ137.54원), 교육세(교통세의 15%ㆍ79.35원), 부가세(세전판매가격+제세금의 10%), 관세(석유수입가격의 3%), 수입부과금(L당 16원) 등의 세금이 붙는다. 등유나 액화석유가스(LPG) 등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 대신 개별소비세가 붙고, LPG에는 판매부과금이 붙기도 한다. 

중요한 건 여기서 관세를 제외하면 모든 세금의 기준점이 단 하나라는 점이다. 바로 ‘1L’다. 따라서 ‘휘발유 1L’는 언제나 측정량이 같아야 하고, 달라지면 곤란하다. 변수는 온도다. 모든 액체는 온도에 따라 부피가 달라져서다. 휘발유나 경유, 등유, 액화석유가스 등 석유제품은 온도에 따른 부피변화가 물보다 더 크다. 석유제품 1L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기준 온도를 두는 이유다.  

석유제품 ‘1L’는 세금 책정의 기준

1L를 측정할 때 기준 온도는 ‘15도’다. 이 온도에서 석유제품의 부피 변화가 가장 적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미국재료시험협회(ASTM)의 온도에 따른 석유제품 부피 환산표도 15도가 기준점이다. ASTM 환산표에는 온도가 0.5도 변화할 때마다 부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표기돼 있다. 국내 정유사들 역시 석유제품을 수출할 때 이 환산표를 기준으로 삼는다.

국내의 다양한 제도적 틀 안에서 15도 기준은 심심찮게 등장한다. 석유관리원의 경유 품질기준표 항목엔 ‘자동차용 경유가 15도일 때를 기준점으로 삼아 밀도가 815 이상 835 이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정유사들의 시험성적서에도 역시 밀도 항목이 있는데, 온도측정 기준은 15도다. 

 

‘계량에 관한 법률(계량법)’ 시행령의 ‘정량표시상품의 정량 표시방법’에는 액체 상품의 종류에 따른 기준온도가 적혀 있다. 여기에도 ‘주류 또는 석유상품’의 정량 표시 기준은 15도라고 명시돼 있다. ‘맥주 및 냉장보관 식품’은 4도, ‘비냉장 식품’은 20도다. 

석유제품의 정량을 측정하는 계량기 역시 석유제품을 15도 기준으로 삼아 품질검사를 한다. 기술표준원의 ‘액체용 계량기(주유기ㆍLPG미터ㆍ오일미터) 기술기준(2010년 개정)’에도 “측정된 액체의 체적을 환산하기 위한 기준조건은 15도”라고 적혀 있다. 

이런 규정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온도에 따라 변하는 석유제품의 정량을 정확히 표시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석유제품에 매기는 세금도 정확해지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08년 12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의 수입ㆍ판매부과금의 징수, 징수유예 및 환급에 관한 고시’를 개정, “물량단위가 부피단위인 경우 섭씨 15도에서의 물량을 기준으로 한다”는 규정을 삽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참고 : 공교롭게도 고시가 개정된 건 이명박 대통령 당선 1년 후인 2008년 12월 28일이다.] 

정유사 수입부과금 감소 이유

원유의 저장탱크 온도가 높으면 원유 부피가 팽창해 더 많은 수입부과금을 내곤 했던 정유사들은 새 규정 덕을 톡톡히 봤다. ‘15도로 환산한 L’ 기준을 적용하면서 수입부과금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2008년 8억6500만 배럴이던 원유수입량은 2015년 10억2600만 배럴로 1억6100만 배럴(18.6%)이 늘었지만, 같은 기간 석유수입부과금은 9330억원에서 8484억원으로 846억원(-9.1%)으로 오히려 줄었다. 같은 기간 판매부담금 역시 2845억원에서 2404억원으로 15.5% 줄었다. 

현재 ‘15도로 환산한 L’ 기준은 석유제품의 정량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일부 정유사들은 ‘주유소의 요청’이 있을 경우, 석유제품을 15도로 환산해서 공급하기도 한다. 

문제는 석유제품의 정량을 측정하는 15도 기준이 소비자가 구매하는 최종 유통단계에만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첫째, 소비자는 자신이 지불한 돈만큼 정량을 공급받는지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일례로 휘발유는 온도가 1도 상승하면 부피가 0.0011L(1.1mL) 달라진다. 안약 몇 방울의 양에 불과하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소비자가 보는 손실액은 엄청나다. 2017년 기준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126억5098만L, 연평균 가격은 L당 1491원이었다. 이때 휘발유 온도가 1도만 상승해도 약 207억원어치의 휘발유를 소비자가 못 받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휘발유만 따졌을 때의 얘기다. 같은 기준과 계산법을 적용해서 온도 1도 상승 시 경유(0.0009L 변동)에서 약 309억원, 등유(0.001L 변동)에서 약 25억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한다. 석유제품의 온도가 1도만 상승해도 소비자들은 매년 541억원의 손실을 보는 셈이다. 


둘째, 석유제품의 온도가 달라지면 소비자는 제품을 제값만큼 공급받지 못하는 대신, 세금은 정량대로 부담하게 된다. 정유사가 생산한 석유제품보다 더 많은 양이 시중에 팔릴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세금은 늘어나지만, 정부는 많은 세수를 거둘 수 있으니 이득이다. 정부가 합법적으로 벌이는 탈세나 다름없다. 정유사도 더 많은 석유제품을 팔 수 있어 이득이다. 
 

셋째, 정유사들이 불공정한 거래를 할 가능성도 있다. 현행법상 정유사는 주유소에도 석유제품을 15도로 환산해서 공급할 의무는 없다. 정유사 관계자들은 “15도를 기준으로 석유제품을 환산해서 공급해 달라고 요구하는 주유소의 경우엔 그런 방식으로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주유소의 자율에 맡긴다는 건데, 일반적으로 정유사가 갑, 주유소가 을이라는 걸 감안하면 대부분의 주유소가 온도환산을 하지 않고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더스쿠프(The SCOOP)가 입수한 정유사들의 과거 매출 전표를 보면 정유사간 교환거래(특정 정유사가 다른 브랜드 폴주유소에 석유제품을 공급해주는 것)에서 온도표시란을 비워둔 경우는 없었다. 정유사끼리는 15도 기준에 맞춰 정확한 물량을 주고받은 셈이다. 반면 주유소 대상 매출전표의 온도표시란엔 빈칸이 수두룩했다. 

정유사 관계자나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이런 주장도 펼친다. “여름에는 기온이 높아서 온도를 환산해서 공급하지만, 겨울에는 기온이 낮아서 환산할 필요가 없어 환산하지 않는다. 사계절이 우리나라는 계절이 다양해서 자체 보정되기 때문에 온도를 환산할 필요가 없다.”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부 정유사의 판매전표를 보면 1월인데도 탱크로리 내 석유제품 온도는 30도가 넘는 경우도 흔하다. 

넷째, 15도 기준을 적용하지 않아 석유제품 온도가 올라가면 정유사는 수입부과금의 과금 구조를 악용할 수도 있다. 석유제품에 붙는 세금 중 정유사가 직접 부담하는 건 수입부과금이다. 수입부과금은 정유사가 원유를 수입할 때 정부에 미리 내고, 석유제품을 판매해서 소비자로부터 되받는다. 따라서 석유제품 온도가 올라갈수록 수입한 원유에서 생산할 수 있는 석유제품보다 더 많은 석유제품을 판매할 수 있고, 수입부과금도 더 많이 남길 수 있다. 현행법상 정유사가 수입부과금을 더 거뒀다고 해서 소비자에게 돌려줄 의무도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진 산자부 고시는 정유사들의 배만 불렸다.[사진=뉴시스]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진 산자부 고시는 정유사들의 배만 불렸다.[사진=뉴시스]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의 우지훈 변호사는 “정부가 정유사의 폭리를 합법적으로 돕고 있는 셈”이라면서 “이런 유형의 간접세는 국민이 청구인 권리를 인정받기 힘들기 때문에 세금에 불만이 있더라도 민형사상으로 다투기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정유사들은 이득을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만 손해를 보는 구조인 셈이다. 

“세금 정확히 거둘 의무 있다”

다행스러운 건 정유사든 주유소든 해당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시스템으로는 석유제품이 정량대로 공급되지 않을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거다. 정부가 시스템을 바꾸면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입장도 밝혔다. 정부가 의지만 갖고 있다면 바뀔 수 있다는 거다. 

문제는 주유소 저장탱크의 온도보정은 커녕 온도공개조차 실효성이 없다면서 끝끝내 고집을 피우는 산자부다. 특히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공공기관 등이 석유제품을 대량 구매할 때는 15도 기준을 적용해서 온도보정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내놓는다. 

우지훈 변호사는 “석유제품에 15도 기준을 적용하는 게 단순히 공정거래 차원에서 논의되는 거라면 몰라도 국민 세금과 직접적으로 연동돼 있는 문제라면 산자부가 실효성을 운운하는 건 곤란하다”면서 “산자부는 국민 세금을 객관적인 근거에 따라 거둬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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