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데이터 경쟁의 그림자

기본 데이터를 다 쓰면 속도가 느려진다. 평소처럼 인터넷을 즐기기엔 꽤나 느린 속도다. 그런데, 이 요금제에는 ‘무제한 데이터’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소비자들은 분노한다. 1GB·10GB·100GB·무제한…. 이동통신사에서 제공하는 데이터양이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그 속엔 숱한 꼼수와 상술이 숨어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데이터 시대의 그림자를 취재했다.

모바일 데이터 제공량을 놓고 이통3사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사진=뉴시스]
모바일 데이터 제공량을 놓고 이통3사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사진=뉴시스]

국내 이동통신사의 요금제 경쟁에 불이 붙었다. 신호탄을 쏜 건 LG유플러스였다. 지난 2월 23일 LG유플러스는 8만원대의 무제한 요금제를 출시했다. 데이터를 다 쓰면 속도제한이 걸리는 기존의 무제한 요금제와 달리 이 요금제는 데이터·속도 제한이 없다. LG유플러스는 ‘완전 무제한 요금제’로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KT도 새로운 요금제로 반격에 나섰다. 5월 30일 LG유플러스와 마찬가지로 완전 무제한 요금제를 출시했다. 여기에 데이터 제공량이 100GB인 6만원대 요금제와 3만원대(1GB)의 요금제도 선보였다. 눈길을 끈 건 4만원대 요금제다. 해당 가격대 요금제로는 최초로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제공한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KT는 새 요금제를 출시한 지 일주일 만에 16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KT 관계자는 “이번 요금제는 고가요금제만 무제한 데이터를 쓸 수 있다는 기존의 틀을 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특히 4만원대 요금제부터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는 전략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눈은 자연스럽게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으로 쏠렸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준비를 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게 없다”고 말을 아꼈다. 업계에선 SK텔레콤도 데이터 제공량을 대폭 늘린 요금제를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들이 쓰는 데이터량이 해마다 늘고 있어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개편의 초점이 맞춰질 거란 예상에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3월 LTE 요금제 가입자의 1인당 데이터 사용량은 7242MB로 2년 전(3418MB)보다 2배가량 늘었다.

하지만 이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데이터 사용량이 요금제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다. 무제한 요금제 이용자의 1인당 데이터 사용량은 2015년 3월 1만4087MB에서 1만9310MB(2018년 3월)로 37%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일반 요금제의 데이터 사용량은 1942MB에서 1880MB로 되레 줄었다. 두 요금제의 데이터 사용량은 10배가량 차이가 난다. 사실상 무제한 요금제 이용자가 전체 데이터 사용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렇다고 무제한 요금제 이용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3월 기준 무제한 요금제 이용자수는 약 1460만명으로, 전체 LTE 요금제 이용자의 30.7%다. 분기마다 이용자수가 늘고 있지만, 아직 ‘대세’는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 이통사들이 데이터 혜택을 늘리고 있는 건 대부분 고가의 무제한 요금제다. 이통사가 고가요금제를 쓰는 30%만을 위한 요금제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다. [※참고: 과기부의 통계엔 요금제 가입자수가 표기돼 있지 않다. 하지만 전체 데이터 사용량과 1인당 데이터 사용량이 있어 이를 거꾸로 계산해 가입자수를 유추할 수 있다.]

30% 만을 위한 요금제

혹자는 “KT가 4만원대의 무제한 요금제를 내놨으니 중저가 요금제를 쓰는 이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하지만 이 요금제는 기본 데이터를 모두 소진하면 최대 1Mbps로 속도 제한이 걸린다. 1Mbps는 대략 1초에 0.1MB의 데이터를 다운할 수 있는 속도다. 바로 윗 단계인 6만원대 요금제의 제한속도는 5Mbps로 속도 차이가 상당하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다. KT 관계자는 “1Mbps로 메신저나 웹서핑 정도는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서 “동영상도 표준화질(SD급·480p) 수준으로 시청하면 큰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반응은 180도 다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무제한이란 말에 해당 요금제로 바꿨다가 속도가 너무 느려져 실망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최대 1Mbps란 얘기는 실제 환경에선 이보다 더 느려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유튜브의 경우 표준화질의 최저 권장 속도가 500Kbps(약 0.5Mbps)여서 1Mbps 이하로 떨어지면 표준화질의 동영상 시청도 불편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 요금제는 다른 기기에 데이터를 나눠주는 ‘데이터 셰어링’에 있어선 무제한이 아니다. 기본 데이터 3GB를 다 썼다면 셰어링을 할 때마다 돈을 내야 한다(1MB당 22.5원). KT는 자동으로 셰어링을 차단해주는 부가서비스를 이 요금제에 지원하지 않는다. 무제한이란 말에 데이터를 나눠줬다간 요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4만원대 무제한 요금제가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KT는 요금제 구간별로 무제한 데이터 전송속도에 제한을 둔 요금제를 출시했다.[사진=KT 제공]
KT는 요금제 구간별로 무제한 데이터 전송속도에 제한을 둔 요금제를 출시했다.[사진=KT 제공]

1Mbps는 ‘생색내기용’

한국 소비자들은 속도에 민감하다. 권남훈 건국대(경제학) 교수는 “이통사가 요금제 구간별로 데이터양뿐만 아니라 전송 속도까지 차이를 둔다면 빠른 속도를 제공하는 고가 요금제로 가입자가 몰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특정 요금에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해 가입자를 유도하는 건 하나의 판매 전략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통신비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버거워하는 가계지출 중 하나다. 휴대전화 이용자의 75.3%가 통신비에 부담을 느낀다는 조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녹색소비자연대·2017년 2월 기준). 정부가 2만원대에 1GB를 제공하는 보편요금제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데이터가 많이 필요한 소비자들은 알아서 고가 요금제를 쓰게 돼 있다”면서 “문제는 필요에 의해 싼 요금제를 쓰는 나머지 소비자들이다. 이통사의 새 요금제엔 이들을 위한 배려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불 붙은 이통사들의 경쟁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bellkic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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