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제품 ‘15도 기준’ 외면하는 이유들

정유사는 원유를 수입할 때 ‘15도 기준’으로 물량을 측정해 세금을 낸다. 기름의 특성상 온도에 따라 부피가 달라져서다. 그런데 국민은 ‘15도’를 기준으로 휘발유나 경유를 살 수 없다. 법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액화석유가스(LPG) 유통엔 ‘15도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석유제품 15도 기준이 비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를 취재했다. 

LPG충전소에서는 ‘15도 기준’을 적용해 LPG를 판매한다.[사진=뉴시스]
LPG충전소에서는 ‘15도 기준’을 적용해 LPG를 판매한다.[사진=뉴시스]

산업통상자원부는 2008년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의 수입ㆍ판매부과금의 징수, 징수유예 및 환급에 관한 고시’를 개정해 석유제품의 물량 기준을 ‘섭씨 15도로 환산한 리터(L)’로 정했다. 정유사를 비롯한 석유사업자들이 정확한 물량에 따라 세금(수입부과금)을 내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모든 석유제품에는 수입부과금이 포함돼 있다.

당연히 국민이 돈을 주고 사는 휘발유 등 석유제품의 기준도 ‘섭씨 15도로 환산한 리터(L)’여야 한다. 세금을 간접적으로 부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현행법상 휘발유나 경유를 15도 기준으로 판매하라는 규정은 없다. 

산자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이렇게 반론했다. “휘발유나 경유를 소비자에게 공급할 때 15도 기준을 적용하면 주유소들은 온도측정기기를 설치해야 한다. 그러면 ‘별도의 비용’이 발생해 소비자들에게 비용이 전가될 수 있다. 더구나 주유소들이 ‘섭씨 15도로 환산한 리터(L)’를 적용해 거래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휘발유나 경유의 공급온도를 공개할 필요성도 부족하다.”

정부가 나서 정유업계와 주유소업계에 “석유제품의 공급 온도를 15도에 맞추라”고 지적해도 모자랄 판에 기기 설치 등 엉뚱한 논리만 펴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온도보정기기의 설치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해도 괜찮은지에 대한 엄중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액화석유가스(LPG)의 경우, 소비자 유통단계에서 15도 환산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가스제품은 무게를 기준으로 판매한다. 일반 마트에서 판매하는 부탄가스 용량이 무게로 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LPG 역시 무게로 판매해야 하지만, 자동차 내에 있는 저장탱크를 떼어내 무게를 달 수 없어 L로 환산해서 판매한다. 

이는 예외적인 상황이고, LPG 정량검사 기준은 무게다. 산자부 가스산업과 관계자에 따르면 정량검사 방법은 이렇다. LPG 20L를 정해진 용기에 담아 무게를 달고, 이 무게가 15도를 기준으로 했을 때 정량인지를 보는 거다. 충전소가 LPG를 15도 기준으로 공급하지 않으면 정량이 나올 수 없다. 

산자부 가스산업과 관계자는 “충전소 주유기는 일반 주유소의 충전기와 달리 15도에 맞춰서 공급하도록 설계돼 있다”면서 “충전소 주유기는 15도 기준으로 LPG를 공급해야 하고, 압력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일반 주유소 주유기보다 가격도 비싸다”고 설명했다. 

 

시중의 부탄가스는 무게로 정량을 매겨 판매한다.[사진=뉴시스]
시중의 부탄가스는 무게로 정량을 매겨 판매한다.[사진=뉴시스]

LPG의 정량 측정 기준이 15도이기 때문에 LPG 충전소엔 ‘온도보정 주유기’가 있다. 일반 주유소에선 비용 때문에 설치할 수 없다는 기기가 LPG 충전소엔 버젓이 있다는 얘기다. 휘발유나 경유의 정량 측정을 신뢰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서울의 한 충전소 관계자는 “정량을 검사할 때 15도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니 충전소에서도 온도보정이 되는 주유기를 사용하는 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LPG가 15도 기준으로 유통된다면 휘발유나 경유도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가스산업과 관계자는 “LPG의 온도 상승에 따른 부피 변화는 휘발유나 경유보다 크기 때문에 온도보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LPG는 1도가 오르면 부피가 0.2~0.3%(동일한 압력일 때) 늘어난다. 1L당 0.002~0.003L의 오차가 생긴다는 거다.

하지만 이 사실이 휘발유나 경유에 ‘15도 기준’을 적용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근거가 될 순 없다. 휘발유 역시 1도가 오를 때 1L당 약 0.001L의 오차가 생기기 때문이다. 더구나 2018년 4월 기준 국내 전체 차량 대비(등록 기준) 휘발유 차량과 경유 차량의 비중은 각각 47.1%와 43.6%로, 합치면 90.7%에 이른다. LPG 차량의 비중은 9.3%에 불과하다. 휘발유와 경유 유통에 15도 기준을 적용하는 문제를 “실효성이 없다”면서 외면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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