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은 기술, 北은 자원 및 노동력 낡은 패러다임
북측이 어떤 정책 추구하느냐에 따라 결과 달라져
북한이 우리 기업의 공장지대가 될 지도 미지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경협시대 열어야

“통일만 되면 저성장, 실업, 부동산 거품 등 우리 경제의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다.” 한반도에 부는 평화바람에 ‘경협 만능론’이 싹트고 있다. 우리 기업의 기술과 북한의 값싼 노동력ㆍ빈약한 인프라가 만나 엄청난 경제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거란 기대다. 하지만 이 전망이 맞아떨어지려면 북한이 순순히 우리 경제의 성장발판이 돼줘야 한다. 가능한 일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남측 기술력+북측 노동력=대박’이라는 불편한 공식을 풀어봤다. 

남북경협을 두고 지나친 기대감보다는 냉철한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사진=뉴시스]
남북경협을 두고 지나친 기대감보다는 냉철한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사진=뉴시스]

“한반도 단일경제권에 더해 간도, 연해주 지역은 물론 동중국해 연안지역을 연결하는 거대 경제권이 형성되면 3%대로 떨어진 잠재성장률을 5%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2015년 8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 ‘한반도 신新경제지도’를 꺼냈다. 동해권과 서해권에 에너지ㆍ자원ㆍ산업ㆍ물류ㆍ교통벨트를 구축해 동서를 잇는 ‘H경제벨트’를 만드는 게 골자다. 당시엔 북한의 잇단 도발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분위기 때문에 부각되지 못했다. 2016년 2월엔 개성공단의 불마저 꺼지면서 신경제지도는 망상으로 머무는 듯 했다.

3년이 흐른 지금은 다르다. 판문점 선언과 드라마틱한 도보다리 회동으로 남북 경제협력 기대가 한껏 달아올랐다. 문 대통령의 비밀병기 신경제지도 역시 USB에 담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달됐다. 남북 평화무드에 걸림돌이 됐던 미국은 북한과 정상회담을 통해 공동합의문에 서명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의 악연을 끊었다는 역사적 의미도 컸지만, 경제적 기대감이 대단했다.

얼어붙은 경협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주식시장을 들뜨게 했다. 한국거래소가 경협주 종목의 주가를 지수화해 분석한 결과, 경협주 지수는 연초 100에서 5월 15일 207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전체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을 합친 지수가 100에서 101로 제자리걸음을 한 와중에 거둔 성과다. 현대건설우, 부산산업, 대아티아이 등 인프라 관련 업종은 등락률이 심해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됐다. ‘남북경협=한국경제 큰 이익’이란 전제가 깔려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한반도 신경제지도의 경제효과로 2020년부터 국내총생산(GDP)이 매년 0.81%포인트 오를 것이라 전망했다. 또한 5년간 12만8500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생산유발액은 42조3000억원, 부가가치유발액은 10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 의견도 다르지 않다. 과거 통일연구원은 ‘2007 남북정상선언’의 합의사항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우리나라가 얻는 경제적 효과는 최대 55조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한마디로 ‘경협은 대박’인 셈이다.

신경제지도의 밑그림

이 청사진에 근거가 되는 요소가 있다. 바로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 ‘풍부한 지하자원’ ‘빈약한 인프라’다. 우리 기업들이 북한에 들어가 공장을 세우고, 자원을 개발하고,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인프라를 깔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나라 경협 관련 기업 200곳에 ‘북한에 다시 투자하고 싶은 이유’를 물은 결과, ‘도로ㆍ철도 등 인프라개발(33.3%)’이 1위로 꼽혔다. ‘저렴한 노동력 활용(15.2%)’ ‘광물 등 지하자원 개발(6.1%)’ 등도 순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 주장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유승경 부소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남한은 기술-북한은 자원과 노동력’은 ‘북한이 어떤 경제정책을 추구하느냐’를 전혀 고민하지 않은 패러다임이다. 개성공단과 같은 단순한 협력단계에선 문제될 게 없지만, 본격적인 경협으로 발전하면 꼬인다. 우리 기업이 북한의 싼 임금을 이용해 제품의 경쟁력을 올리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아서다. 북한이 순순히 한국 경제성장의 발판이 될 리도 없다. 북한을 우리 기업의 공장지대로 육성하겠다고 경협을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실제로 개성공단의 경쟁력 중 가장 강조됐던 건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이었다. 개성공단 폐쇄 직전 북한 노동자의 임금은 국내 임금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매년 ‘5% 인상’으로 상한선을 뒀다. 남북경협의 최종목적이 ‘통일경제’라고 할 때,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외치는 정부의 목소리와 어울릴 수 없는 일이다. 문 대통령의 신경제지도도 사실 철도ㆍ가스관을 잇는 등 ‘인프라 개발’에 치중한 정책이다. 인프라가 깔린 이후 북한과 어떻게 협력해 나가겠다는 전략은 없다. 그만큼 남북경협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남북경협을 주도할 컨트롤타워가 마땅히 있는 건 아니다. 청와대는 5월 일부 언론에서 경협 컨트롤타워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오자 “아직 논의도 하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할 수 있다는 게 유효한 기류”라고 덧붙였다. 이는 얼마 전 청와대의 ‘김동연 부총리 건너뛰기(패싱)’ 논란이 불거졌을 때와 비슷한 흐름이다. 경협의 정책주도권을 두고 청와대와 내각이 또다시 엇박자를 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컨트롤타워 논의도 안했다”

경협에 조심스러운 청와대와 달리 많은 정부 부서와 공공기관이 물밑에서 경협을 준비하고 있다. 남북철도 연결 사업을 준비 중인 코레일이 대표적이다. 코레일은 최근 ‘남북대륙사업처’를 신설했다. 한국수력원자력도 대북사업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 관계자는 “북핵 문제 해결이 먼저고 경협은 그다음이라는 게 청와대의 기조”라면서 “청와대가 각 기관들에게 경협 관련 액션을 최대한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벌써부터 경협을 두고 관가가 혼란에 빠졌다는 얘기다.

남북경협은 단박에 시작할 수 없다. 국제제재를 푸는 것도, 글로벌 사회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것도, 대규모 사업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것도 금세 이뤄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도 없다. 당장 우리에게 북한 경제는 ‘깜깜이’다. 북한이 보안을 이유로 자원이나 산업 관련 데이터를 국제기구에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런 연구도, 전략도 없이 경협을 맞닥뜨리고도 신경제지도가 구현될 리 없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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