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ISD 소송 최종 변론 2016년 6월 마무리
최종 변론 이후 2년 지나도록 아무런 결과 안 나와
한국 정부의 부분 패소 가능성 가능성 높다는 분석
론스타 소송 패소하면 어마어마한 혈세 투입해야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알고 있는가.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국제 중재를 통해 해결하는 제도다. ISD가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된 2011년, 당시 이명박(MB) 정부는 “한국 정부가 피소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2012년 이후 3건의 ISD 소송이 제기됐고, 최근 첫 패소 사례까지 등장했다. 한국 정부의 ISD 대응전략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이 개방된 만큼 ISD 소송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된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골든타임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 정부가 최근 투자자-국가소송(ISD)에 패소하면서 소송 전략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비밀주의 원칙을 고수하는 바람에 ‘승소 골든타임’을 놓친 게 아니냐는 거다. 소송액만 5조여원에 이르는 론스타와의 ISD 소송이 걱정되는 이유다. 론스타 ISD 소송 역시 국민에게 진행 과정이 제대로 전달된 적 없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ISD 소송의 문제점을 취재했다.

한국 정부가 투자자-국가소송(ISD)에서 처음으로 패소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일 “한국 정부가 이란의 가전회사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에 730억원을 지급해야한다는 국제 중재판정부의 판정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다야니는 2010~2011년 무산된 대우일렉트로닉스(현 대우전자) 인수과정에서 한국정부가 한·이란 투자보장협정(BIT)상 원칙(공정·공평 대우)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0년 4월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매각 우선협상자로 이란계 가전회사 엔텍합이 최종 선정됐다. 처음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국 정부와 엔텍합은 그해 11월 5778억원 규모의 매매계약을 체결했고, 엔텍합은 매각대금의 10%에 해당하는 계약금(578억원)을 자산관리공사(캠코)에 지급했다.

그런데 엔텍합이 인수대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2011년 5월 계약이 해지됐다. 엔텍합은 그해 6월 매수인 지위를 인정해 달라는 ‘임시지위보전등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그러자 엔텍합은 2015년 9월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산하 중재판정부에 계약보증금 578억원과 지연이자를 포함한 935억원을 반환해 달라는 ISD 소송을 제기했고, 중재재판 결과 한국 정부가 완패했다.

론스타와의 ISD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5조10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국민의 혈세로 보상해야 한다.[사진=뉴시스]
론스타와의 ISD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5조10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국민의 혈세로 보상해야 한다.[사진=뉴시스]

한국 정부가 ISD 소송에서 패소하자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면서 ISD 분쟁 가능성은 높아졌는데, 정부의 대응전략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게 이유다. 외국인 투자자가 급증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굵직한 ISD 소송이 제기됐다. 2012년 12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2015년 5월 아랍에미리트(UAE) 국영석유투자회사(IPIC)의 자회사인 하노칼, 2015년 9월 다야니 등이다.

최근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건을 두고 ISD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엘리엇는 지난 4월 한국 법무부에 청구금액 7200억원 규모의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ISD를 제기하기 전 한국정부의 협상 의향을 물어보기 위해서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ISD 소송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느냐인데, 이 질문의 답은 쉽게 풀기 어렵다. 한국 정부가 ISD 소송을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이명박 정부든 박근혜 정부든 문재인 정부든 ‘비밀주의’만은 다르지 않다. 이번에 패소한 타야니 ISD 소송의 경우에도 소송시점부터 패소까지 단 4번의 소식을 전하는 데 그쳤다. 내용도 중재인 선정, 중재판정부구성 등으로 부실했다.

 

구체적인 소송내용, 청구금액 등 핵심 내용은 비밀에 부쳐졌다. 정부는 정보공개 요구가 있을때마다 “진행 중인 중재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김종우 민변 변호사는 “국제투자자분쟁해결기구(ICSID) 사이트에도 소송 접수 내용, 접수된 서류, 변론절차, 최종심리 일정까지 공개하고 있는데, 정부는 ISD 소송 과정을 완전히 깜깜이로 진행했다”고 꼬집었다.

ISD 소송서 첫번째 쓴잔

대표적인 사례가 ‘먹튀자본’으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ISD 소송이다. 2012년 이후 6년 동안 소송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드물다. 그러니 의혹만 쌓여갔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엔 정부와 론스타 간 ‘중도 합의설’의 제기됐고, 최근엔 론스타 ISD 소송의 결과를 알리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는 의혹이 새어나왔다.

정부 관계자는 “소송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언제 최종 결정이 날지는 예상하기 힘들다”고 밝혔지만 모든 설說이 그렇듯 근거는 그럴듯하다. 론스타 ISD소송의 최종 변론은 2016년 6월 끝났다. 최종 변론 이후 2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그게 설이든 그렇지 않든 ISD 소송 전문가들은 한국정부의 부분 패소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지난해 미국에 있는 국제통상 전문변호사의 의견을 모아본 결과, 한국 정부의 부분 패소를 점치는 의견이 많았다”며 “소승금액을 1조~2조원을 사이로 전망한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론스타의 승소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건 한국 정부가 가장 확실한 승소 카드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소송 초기였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대주주 적격성이 없는 산업자본이었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포기했다. 이는 중재재판을 맡고 있는 ICSID 판정부가 2015년 12월 내놓은 문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엔 ‘한국과 론스타가 산업자본 등 지위 문제를 다루지 않기로 동의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한국정부가 산업자본 입증 주장을 포기한 건 사실”이라며 “5조원의 혈세가 걸린 소송에서 이길 생각이 있었는지 의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론스타에 특혜를 준 ‘원죄’가 있는 이명박 정부와 모피아 세력이 소송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현재로선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전반적인 전망”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제2의 론스타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비밀주의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종우 변호사는 “미국과 캐나다는 소송과정과 내용을 정부 홈페이지를 통해 상세하게 알리고 있다”면서 비밀주의 탈피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논란만 키운 정부 비밀주의 정책

그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투자분쟁 중재제도가 꼭 있어야 할 제도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브라질은 투자분쟁 중재제도가 없어도 해외투자를 가장 많이 받는 국가 중 하나다. 제도를 없애는 게 어렵다면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ISD 소송을 조장하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투자를 막는 것도 주요한 방법이다.”

론스타 ISD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5조원의 비싼 수업료가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사후 검증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전성인 교수는 “결과가 나오면 국정조사, 감사원 감사, 검찰 조사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며 “정책적 판단으로 국민에게 손해가 발생한다면 진실을 밝히고 책임이 있는 관계자에겐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깜깜이 대응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며 론스타 문제의 청산, 새로운 제도의 설계, 관련자 처벌 등 세가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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