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에 대응하는 방식

채동욱 변호사와 최태원 회장은 혼외자 문제로 속앓이를 했다. 하지만 대응 방식은 전혀 달랐다.[사진=뉴시스]
채동욱 변호사와 최태원 회장은 혼외자 문제로 속앓이를 했다. 하지만 대응 방식은 달랐다.[사진=뉴시스]

채동욱(59) 변호사와 최태원(58) SK그룹 회장은 공통점이 많다. 1살 차이로 동년배인 데다가 50대 중반 인생의 절정기에 사생활 문제로 나란히 큰 시련기를 맞았다. 좌절을 딛고 재기하는 모습도 비슷하다.

2013년 채동욱 검찰총장(당시)은 ‘혼외자 사건’이 터지자 끝까지 부인으로 일관하다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검찰의 과거 정권 수사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와 국정원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 댓글 수사에서 채 총장이 원칙을 고집하자 이를 괘씸하게 여긴 정권 실세들이 은밀히 그의 사생활을 조사해 터뜨렸다는 혐의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요즘 그의 변호사 사무실은 재벌들의 굵직한 송사가 몰리고 있다고 한다. 그가 검찰 실세와 가깝다는 소문이 나면서다. 그의 성씨인 ‘채’를 넣어서 ‘만사채통’이라는 말까지 흘러다닌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지는 것은 논란이 됐던 혼외자의 존재 여부다. 채 변호사는 아이가 성인이 되면 DNA 검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그건 너무 훗날 이야기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아이가 아직 미성년자여서 보호해야 하고, 과거 권력자들의 혼외자 존재는 흔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혼외자 논란을 제쳐둔 채 과거 정권이 뒷조사한 사실만을 밝혀낸다면 뭔가 허전하고 찜찜하다. 자칫하면 후배 검사들이 선배인 채 변호사의 한풀이와 명예회복을 대신 해준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채 변호사는 지금이라도 자신의 입으로 혼외자 여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좋겠다. 아들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홍길동’처럼 된다면 불행한 일 아니겠는가. 국민들은 ‘혼외자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한때 전도유망했던 채 변호사의 진정성을 더 보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2015년 12월 말 최태원 회장은 한 언론사에 장문의 편지를 보낸다. 처인 노소영과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여성과 살고 있으며 6살짜리 딸을 두고 있다는 충격적인 고백이었다.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지 불과 몇개월 만에 불륜사실을 공개했으니 재벌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도 인터넷포털에서 ‘최태원’ 이름을 치면 맨 먼저 ‘최태원 불륜’이 뜰 정도로 그는 곤욕을 치렀다.

그가 커밍아웃을 결심한 배경은 사이비언론에 더 이상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알려졌다. 그의 집 주변에는 늘 파파라치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사생활을 폭로한다는 협박에 시달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공교롭게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수행기사와 비서에게 폭언을 한 ‘갑질’ 폭로가 나오면서 현재 진행 중인 그의 이혼소송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내성적인 성격의 최 회장과 다소 직설적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은 정반대의 성향인 듯하다.

그의 이중생활을 변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돌발 고백’이라는 용기 있는 선택은 ‘신의 한 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요즘 초등학생 딸의 학부모 모임에도 ‘당당히’ 참석한다고 한다. 그룹경영 역시 그의 결단으로 인수한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호황 바람을 타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위증과 거짓말에 관대하다. 일단 오리발을 내밀고 세월과 함께 잊히길 바란다. 법정에서 증인선서를 하고도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이 지난해에만 1516명이다.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 수사기관에서의 허위진술이 얼마나 될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진영논리에 빠진 사회는 진실을 꼼꼼하게 규명하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유불리로 상황을 판단하고 파워게임으로 몰아간다.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털어놓고 용서를 구한다면 한국 사회가 한단계 발전할텐데 딱 잡아떼거나 남 탓으로 돌린다.

지도층 인사부터 한국사회를 휘감고 있는 거대한 거짓말 수렁에서 솔선수범했으면 한다. 영화배우와 스캔들 논란이 있었던 이재명 경기지사는 대권을 꿈꾼다면 먼저 나서 “지사직을 걸고라도 꼭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하는 게 옳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려던 정봉주 전 의원 또한 후보 철회에 그치지 말고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한다. 폭로가 사실이라면 위선적인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백배사죄하고, 거짓 폭로라면 끝까지 진실을 밝혀야 한다.

거짓은 거짓을 낳고, 위선은 또 다른 위선을 부른다. 끝까지 사실관계를 규명하려는 노력과 함께 거짓말에 관대한 우리 문화를 바꿔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참회하는 사람을 돕는 법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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