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 5人의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 노봉래 이풀약초협동조합 이사장

“직장생활을 할 땐 하기 싫으면 슬쩍 빠지면 됐는데, 사업을 해보니 숨을 데가 없더라고요. 좋으나 싫으나 내가 해야 하니까요.” 사업을 시작한 이후 순간순간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는 노봉래(56) 이풀약초협동조합 이사장. 하지만 그걸 극복하며 한걸음씩 더 나아가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사명감을 느끼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인생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그의 여름으로 들어가 봤다. 더스쿠프(The SCOOP) 창업가 4계, 노봉래 이사장의 여름편이다. 
 

노봉래 이사장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행복한 시장을 꿈꾼다.[사진=천막사진관]
노봉래 이사장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행복한 시장을 꿈꾼다.[사진=천막사진관]

잘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둔 건 학교 선배의 권유였다. “한국생약협회에서 일 해보지 않겠느냐.” 처음엔 그저 한약재를 하나의 수입 아이템으로 알아놔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었다. 하지만 ‘1~2년만 해보지 뭐’라는 생각은 전국의 약초 재배농가들을 만나면서 달라졌다. 그들의 처한 어려움과 마주하게 된 거다.

“아무리 재배를 잘한다 해도 판로를 개척하는 건 농가들에게 어려운 문제죠. 한약재 유통시장 구조 역시 농민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어요.” 교육 사업을 하고, GAP(우수농산물관리제도) 인증사업을 하면서 농가를 계도하는 것보다 실제 시장에서 그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분들이 땀 흘려 재배한 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해주는 채널만 잘  확보해주면 정부에서 추진하는 인증사업보다 더 강력한 결과를 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노봉래 이풀약초협동조합(이하 이풀) 이사장은 약초와의 동행을 시작했다. 

사회적기업인 이풀은 약초를 섞어 차茶를 만든다. 농가(조합원)에서 재배한 약초를 보내주면 이풀에서 선별 작업을 거쳐 공장으로 보내 이풀 차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다. 아직은 거래처가 많지 않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여기저기서 이풀 차를 찾는다. 최근엔 한 소셜커머스에도 입점했다.

✚ 창업 5년차 소회가 궁금합니다.
“매일이 새롭고, 매일이 힘듭니다. 한해 한해가 변화무쌍해요. 처음 시작할 땐 3년 이면 어느 정도 기업의 모습은 갖추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 현실은 어땠나요?
“큰돈을 벌진 않더라도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생약협회에서 함께 일하던 문정희 이사, 그때 인연을 맺게 된 17개 약초 재배농가들과 의기투합해 ‘약초협동조합’이란 걸 만들고 ‘이로운 풀’이라는 의미로 ‘이풀’이란 이름도 지었죠. 하지만 막상 사업을 하려니 모두 돈이더라고요.”

 

✚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힌 거네요.
“3년 동안은 그런 대로 잘 버텼어요. ‘약초’라는 아이템이 독특해서인지, 약초 재배농가를 돕겠다는 우리의 진정성이 통해서인지 지원하는 스타트업 공모 사업에 연이어 선정됐죠. 사무공간이 필요해서 지원한 건데 사업비까지 지원해주니 신이 나서 했죠. 이후에도 여러 사업에 선정됐어요. 덕분에 마음껏 교육 사업도 해보고, 패키지 디자인도 만들었죠. 지금 사용하는 이풀 로고와 패키지가 그때 탄생한 겁니다.”

✚ 그런데 뭐가 힘들었나요?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지원사업 힘으로 이어왔죠. 그런 것들이 종료된 2016년부터는 진짜 우리의 민낯과 마주하게 됐어요.”

✚ 민낯이라면…
“3년 동안은 우리 제품을 시장에 출시해 수익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아니었죠. 그저 운 좋게 여기저기서 지원을 받아 그 힘으로 버틴 거죠. 그게 끝나고 나니까 당장 우리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고민이 무겁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순풍에 돛 단 듯 수월하게 흘러왔는데 과연 우리가 앞으로도 이 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이 확 밀려들었어요. 허허벌판에 홀로 놓인 느낌이었죠.”

✚ 힘드셨군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전문적으로 멘토링을 받으면서 사업을 재점검했습니다. 이풀의 콘셉트를 정하고, 사용할 약초를 정하고, 제품을 개발했죠. 그 전까지는 차를 만들어도 막연했어요. 시장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요.”

 

원료로 쓰이는 약초들.[사진=천막사진관]
원료로 쓰이는 약초들.[사진=천막사진관]

✚ 효과가 있었나요?
“멘토링을 받으면서 상품 만들고 타깃 설정하는 방법 등을 배워 ‘시트러스필’ ‘페릴라민트’ 제품을 만들었어요. 매출에서도 지원금 비중이 크게 줄고 상품 판매 비중이 늘기 시작했죠.”

✚ 매출은 많이 늘었나요?
“지난해 매출이 1억원을 넘었어요. 이풀에 ‘매출 1억원’은 숙제 같은 거였어요. 주위에서 ‘매출 1억원은 언제 달성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거든요. 이제 간신히 턱걸이에 성공한 기분이랄까요. 그래도 ‘시장에서 우리 제품이 인정을 받는구나’ ‘하면 된다’는 자심감이 생겼죠.”

✚ 올해는 어떤가요?
“좀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지난 5월엔 해외박람회에도 참가했어요.”

✚ 해외박람회는 처음이었나요? 
“‘베트남 카페쇼’라고 해마다 열리는 국제행사인데, 올해 처음으로 참가했어요. 현지 업체가 가장 많지만 외국 기업, 바이어들도 많이 왔더라고요. 한국 상품에 관심이 기본적으로 많긴 한데, 약초를 원료로 한다고 하니 더 많은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 비즈니스로 연결이 됐나요?
“실제 거래로 이어지진 않았어요. 그래도 앞으로 우리가 해외 진출을 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조합원들과 노봉래 이사장.[사진=이풀약초협동조합 제공]
조합원들과 노봉래 이사장.[사진=이풀약초협동조합 제공]

✚ 어떤 준비가 필요하던가요?
“이풀 차 가격대가 저렴한 편이 아니에요. 그래서 가격 걱정을 좀 했는데, 오히려 그건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거기에도 프리미엄 카페가 많으니까 그건 타깃층만 잘 잡으면 될 거 같아요.”

✚ 그렇다면 뭐가 문제죠?
“물류죠. 국내에서야 택배로 보내면 되지만, 해외 주문은 그렇게 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잖아요. 현지에 원료 창고를 만들든지 현지 파트너를 만들든지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건 또 물건만 파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생각할 게 많아지는 거죠. 그래도 지속적으로 참가를 하고,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머잖아 좋은 결과가 있을 거 같아요. 방법은 고민 중이지만 해외 진출을 위한 한걸음을 뗐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 이풀의 식구가 늘었다. 지난 5월부터 3명의 발달장애인이 이풀에서 직무훈련을 받고 있다. 목표는 이풀 고용이다. 오후 2시가 되면 그들은 이풀랩(Lab)에 가방을 내려놓고 약초를 심고, 물을 주고, 택배 포장을 한다. 매주 금요일엔 아트워크숍도 한다. 그들이 그린 약초 그림, 꾹꾹 눌러 쓴 글자를 활용해 패키지나 고객에게 보내는 감사카드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수업이다.

우리가 다시 만날 가을에 그들 중 누군가는 이풀에 정식 취업해 있을까. 이풀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을까. “아직 서툴긴 하지만 서로 교감이 생기면 몇개월 후 고용으로 이어질 수 있겠죠? 이번 여름과 가을은 저 친구들하고 지낼 거 같아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이풀의 가을이 기대된다. 
글=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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