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올드보이 ❸

영화 ‘올드보이’에서 15년간 자신이 감금당했던 사설감옥을 찾아간 주인공은 감옥 지배인의 생니 15개를 장도리로 뽑아버리고 좁은 복도에서 조폭들과 조우한다. 마치 장판교長坂橋에서 조조의 대군과 홀로 맞선 장비와 같은 기개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원수’는 끔찍한 악몽이다.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기는 피차일반이다.

사람은 저마다 갈고 닦은 무기가 있지만, 그것을 휘두르기엔 우리 사회가 영화 속 엘리베이터 만큼 좁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은 저마다 갈고 닦은 무기가 있지만, 그것을 휘두르기엔 우리 사회가 영화 속 엘리베이터 만큼 좁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올드보이’에서 가장 끔찍하면서도 인상적인 시퀀스는 뭐니 뭐니 해도 좁은 일자 복도에서 벌이는 주인공과 조폭들의 혈투 장면이다. 자신을 15년간 감금하고 ‘청룡반점’ 군만두만 먹였던 사설감옥을 찾아간 오대수(최민식)는 감옥 지배인(오달수)의 생이빨 15개를 장도리로 못 뽑듯 뽑아버린 후 좁은 복도에서 조폭들과 맞선다.

외국 관객들에게 이 일자 복도의 결투 장면은 신선하고도 끔찍했던 모양이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조금 익숙하다. 우리나라는 전국을 뒤덮은 아파트 대부분이 ‘복도식 아파트’다. 두 사람이 교차하기에도 불편한 좁은 복도식 아파트를 매일 오간다. 커다란 개를 끌거나 짐수레라도 밀고 오는 사람을 만나면 난감하다. 피할 곳이 없다.

오대수는 지배인의 생니를 뽑아 젖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도리를 마치 장비의 장팔사모丈八蛇矛처럼 꼬나 쥔다. 이런 오대수의 서슬에 너절한 조폭들은 압도적인 수적 우세함에도 선뜻 나서지 못한다. 삼국지에서 악명惡名을 떨친 장비의 장팔사모는 말 그대로 뱀처럼 구불구불하고 톱 같은 날을 가진 무기다. 관우의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처럼 일격필살의 무기는 아니지만 닥치는 대로 휘둘러 상대의 살점을 뜯어내 회복 불가의 상처를 입히는 무기다.

상해傷害의 상상은 칼보다 톱이 더 끔찍하다. 어쩌면 관우의 청룡언월도보다 더 무시무시하다. 좁은 복도에서 마주친 오대수의 장도리가 그렇다. 분명 회칼처럼 일격필살의 예리함은 없지만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뾰족한 장도리는 회칼보다 끔찍하다.

오대수는 자신이 갇혔던 사설감옥을 찾아가 조폭들에게 맞서 혈투를 벌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오대수는 자신이 갇혔던 사설감옥을 찾아가 조폭들에게 맞서 혈투를 벌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복도가 조금 넓었거나 갓길이라도 있었다면 장비를 피해간 조조의 대군처럼 뒤로 빠지거나 몸을 피하고 싶었을 듯하나 불행하게도 그만한 공간이 없다. 조폭들은어쩔 수 없이 되는 대로 몽둥이와 쇠파이프를 들고 오대수를 향해 달려든다. 자발적으로 달려든다기보다 뒤에서 떠미는 바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달려들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좁디좁은 복도에서 조폭들이 손에 든 기다란 각목이나 쇠파이프는 무기로 큰 의미가 없다. 몸이 맞붙은 상태에서 마음껏 휘둘러 볼 공간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오대수의 짤막한 장도리는 가장 효율적이다. 짧고 간결하고 정확한 스윙으로 조폭들을 제압한다. 장도리는 ‘그라운드 기술’을 발휘하기에도 적합하다. 오대수는 넘어져서도 조폭들의 무수한 발등을 하나하나 장도리로 찍어 제압한다. 회칼로는 구사하기 어려운 기술이다.

그렇게 ‘일자 복도의 혈투’를 끝내고 피범벅 된 오대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조폭 2진이 빼곡하게 탄 구닥다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오대수는 다시 장도리를 쥐고 출근길 ‘지옥철’에 돌진하듯 엘리베이터 속으로 파고든다. ‘엘리베이터 대첩’도 오대수의 완승으로 끝난다. 엘리베이터 가득 사상자를 남기고 오대수 혼자 등에 장도리가 박힌 채 걸어 나온다. 조폭들도 모두 틈나는 대로 온갖 격투기를 연마했을 것이고, 저마다 필살의 무기도 들었지만 좁디좁은 복도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술이나 무기는 무의미할 뿐이다. 허무하게 굴욕적인 패배를 맛본다.

우리 사회에서의 진학이나 취업의 길 모두 영화 속 ‘일자 복도’처럼 너무나 좁디좁다. 우회할 길도 잠시 피하거나 숨 돌릴 만한 공간도 없다. 정해진 나이에 따라 떠밀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길에 들어선다. 또 영화 속 엘리베이터같이 좁아터진 학교나 회사라는 공간 속에 갇힌다. 저마다 10년 넘게 갈고 닦은 기술과 연장이 있지만 엘리베이터 전투 신의 기다란 각목과 쇠파이프처럼 제대로 한번 휘둘러보지 못한다.

장도리 신의 일자복도처럼 우리 사회의 진학과 취업의 길은 너무나 좁다.[사진=뉴시스]
장도리 신의 일자복도처럼 우리 사회의 진학과 취업의 길은 너무나 좁다.[사진=뉴시스]

각목이나 쇠파이프 모두 넓고 탁 트인 공간에서라면 마음껏 휘둘러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좁아터진 엘리베이터 속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서로가 휘둘러 서로가 다칠 뿐이다. 영화 속에서 수십명의 조폭들이 달려들었지만 아무도 목표했던 오대수를 제압하지 못한다. 아마도 상당수는 자기들끼리의 각목이나 쇠파이프에 맞아 쓰러진 듯하다.

그래서 ‘올드보이’의 ‘장도리 격투신’이 끔찍하다. 각자가 성공으로 가는 통로(avenue)들이 영화 속처럼 ‘좁은 일자 복도’가 아닌 조금은 더 넓은 길이었으면 좋겠고, 우회로도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속한 사회나 조직이 ‘엘리베이터 속의 전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저마다 갈고닦은 기술과 연장을 넓게 열린 곳에서 마음껏 휘둘러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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