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만든 히트제품

‘썬칩’ ‘까르보불닭볶음면’ ‘얼려먹는 야쿠르트’. 최근 식품업계 히트 제품들이다. 흥미롭게도 이들 제품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제품을 개발한 이가 브랜드 컨설턴트나 유명 마케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기업이 제품화한 거다. 소비자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빠르게 캐치하는 기업이 앞서갈 수 있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소비자가 만든 히트제품을 취재했다. 

저성장시대를 지나는 기업들에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저성장시대를 지나는 기업들에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소비자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히트상품이 나오는 시대’가 됐다. 기업들이 소비자의 의견을 제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추세가 강해진 이유다. 소비자의 요구에 단종됐던 제품을 재출시하는 건 다반사다.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따라 마시는 제품을 얼려 먹는 제품으로 출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업체 중 하나가 오리온이다. 이 회사는 단종됐던 ‘썬칩’을 지난 4월 재출시했다. 1992년 출시된 썬칩은 2016년 이천공장이 화재로 전소되면서 생산이 중단됐다. 이후 오리온 홈페이지에 “썬칩을 재출시해 달라”는 글이 100건 이상 올라오는 등 소비자 요청이 잇따랐다.

오리온 관계자는 “생산라인을 다시 증설하는 비용 대비 재출시 효과를 가늠하기 어려워 잠정적으로 썬칩의 생산을 중단했다”면서 “고객 수요가 있다고 판단해 제품을 다시 출시했다”고 말했다. 제출시된 썬칩(태양의 맛 썬)은 한달 만에 20억원가량 판매됐고, 판매량이 과거 대비 20% 이상 증가했다. 소비자 ‘말’ 잘들은 덕에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크라운해태도 빙과제품 ‘토마토마’를 12년 만에 다시 내놨다. 2005년 첫 출시 당시에는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던 제품이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토마토마가 자주 회자된 게 재출시 계기가 됐다. 크라운해태 관계자는 “토마토마 관련 인터넷 게시글의 조회수가 9만건에 달했다”면서 “건강을 중시하는 최근 트렌드와 맞아 떨어져, 출시 한달만에 77만개가 팔렸다”고 말했다.

불닭볶음면을 판매하는 삼양식품은 소비자 레시피를 제품에 적용했다. 유튜브 등에서 불닭볶음면을 기존 조리법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리해 먹는 동영상이 인기를 끌자 이를 제품화한거다. 한정판매로 출시된 까르보불닭볶음면은 하루만에 1200만개가 판매됐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불닭볶음면이 매워서 잘먹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덜 맵게 먹는 응용 레시피를 인터넷상에 공유해 화제가 됐다”면서 “당초 3개월간 한정판매할 계획이었지만 반응이 좋아 5월 정식출시했다”고 밝혔다. 

소비자가 제품을 소비하는 방식을 활용한 사례는 또 있다. 한국야쿠르트의 ‘얼려먹는 야쿠르트’가 주인공이다. 어릴적 야쿠르트를 얼려서 거꾸로 먹었던 추억을 떠올리는 소비자가 많다는 데 착안한 제품이다. 한국야쿠르트는 얼려먹기 좋게 기존 제품보다 용량을 늘리고 패키지를 거꾸로 뒤집어 생산했다. 회사 관계자는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한 제품이다”면서 “기존 고객에게는 옛 추억을 떠올리는 재미를, 어린 아이들에게는 야쿠르트는 얼려먹는 신선함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고 말했다.

누구나 한번쯤 떠올렸던 아이디어

‘라면 소스만 따로 팔아 달라’는 소비자의 요구를 받아들인 기업도 있다. 식품업체 팔도는 팔도비빔면에 들어가는 비빔장을 ‘팔도만능비빔장’이라는 이름으로 개별 출시했다. 비빔장을 다른 요리에 활용하고자 하는 소비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팔도 관계자는 “만우절 이벤트로 비빔장 제품을 내놨는데, ‘계속 판매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많아 정식 출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품을 개발할 때 인터넷 카페·블로그·SNS 등을 통해 소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다.

쌍용차는 국내 자동차 업계 최초로 주문제작 콘셉트의 티볼리 아머를 출시했다.[사진=뉴시스]
쌍용차는 국내 자동차 업계 최초로 주문제작 콘셉트의 티볼리 아머를 출시했다.[사진=뉴시스]

이렇게 최근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제품을 출시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 기업의 입장에서는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보다 리스크가 적기 때문이다. 미리 수요를 예측하고 충성고객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없는 제품이 없을 만큼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면서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고, 출시한다고 해도 소비자는 익숙한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성공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의 의견을 수렴해서 기존 제품을 리뉴얼해 출시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라고 덧붙였다.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소비시장이 위축되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의 배짱도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면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히 하고, 고객의 숨은 니즈를 찾아내는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다양해진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기업이 만들어주는 대로 소비자가 제품을 소비하는 시대가 지났기 때문이다. 김시월 건국대(소비자정보학) 교수는 “10인1색의 시대에서 1인다多색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요즘 젊은 소비층은 기호가 다양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면서 “기업이 여기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식품 업계뿐만 아니라 자동차 업계까지 소비자의 선택권을 다양화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쌍용자동차는 지난 5월 국내 최초로 주문제작형 콘셉트의 ‘나만의 티볼리’ 기어 에디션2를 출시했다. 고객이 아웃사이드 미러, 블랙휠, 루프컬러 등 내외장재 디자인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이다. 국내 자동차 브랜드 경우 일부 고가 차종을 제외하고는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관계자는 “수만가지 조합이 가능해 소비자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면서 “티볼리의 주요 타깃층인 20~30대가 개성이 강하고, 이를 자동차를 통해 표출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부각시킨 제품이다”고 말했다.

천편일률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던 자동차 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얘기다. 고객과 쌍방향 소통을 하려는 기업들의 노력은 저성장시대를 맞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서용구 교수는 “제품 홍수의 시대다. 겉으로 드러나는 소비자의 기본적 니즈는 모두 충족됐다. 이제 기업들은 ‘unmet(충족되지 않은) 니즈’를 찾기 위해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늘려갈 것이다”고 말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