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석의 Branding | 글로시에 SNS 전략

화장품 업계만큼 경쟁이 치열한 시장은 많지 않다. 제품이 다양한 데다 유행도 순식간에 지나가서다. 시장에 유명 브랜드가 많다는 점도 치열한 경쟁을 부추긴다. 이런 시장에 당당히 출사표를 던지고 입지를 다진 브랜드가 있다. 스타트업 ‘글로시에’다. 글로시에가 작은 덩치에도 유명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독특한 SNS 전략이었다.

스타트업 코스메틱 브랜드 글로시에는 독특한 SNS 전략을 활용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타트업 코스메틱 브랜드 글로시에는 독특한 SNS 전략을 활용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여성 코스메틱 시장은 브랜딩 업계에서 난이도가 높다. 제품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다. 아침에 반드시 발라야 하는 화장품만 대여섯 단계를 넘어갈 정도다. 기초 스킨케어만 해도 스킨~로션~크림을 기본으로 에센스 1~2종과 자외선 차단제가 추가된다. 기능성 화장품인 에센스도 종류가 세분화한 지 오래다.

필자는 최근 이 분야의 브랜딩을 맡았다. 스킨케어 제품을 다루는 건 익숙했지만, 여성들이 볼에 바르는 연지인 ‘블러셔’는 낯설게 느껴졌다. 미팅을 끝내고 나서야 ‘맥(MAC)’ ‘바비브라운(Bobby Brown)’ ‘나스코스메틱’ ‘샤넬’ 등의 브랜드가 이 시장에서 입지가 공고하다는 걸 알았다. 

이들 브랜드는 시장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갖추고 있다. 화장품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터다. 뛰어난 제품과 다양한 라인업으로 전 세계 여성들의 사랑을 돈독히 받고 있다. 하지만 시장조사를 하던 필자의 눈길을 끈 건 스타 브랜드가 아닌 한 스타트업 브랜드인 ‘글로시에’였다. 

2014년 출시한 이 브랜드는 업력이 4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뉴욕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로 꼽히고 있다. 유력 벤처캐피탈의 투자 약속도 받아냈다. 국내에서도 일부 트렌드세터를 중심으로 ‘직구’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글로시에의 성장 비결은 ‘SNS’를 통한 진정성 있는 소통이다. 사실 코스메틱 업계에서 SNS 마케팅 전략은 유별난 게 아니다. 국내 화장품 기업들이 1020세대 소비자를 겨냥해 ‘뷰티 유튜버(뷰튜버)’를 통한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건 SNS 마케팅의 대표적 예다. 인기 뷰튜버의 경우, 사용 제품이 금세 입소문을 타고 ‘완판’ 사례를 이어가는 등 연예인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SNS 마케팅에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화려한 콘텐트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긴 하지만 실제로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아서다. 클릭 몇번 한다고 소비자들이 덥석 구매 버튼을 누르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홍보용 SNS가 되레 소비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우려도 있다. 

이런 점에서 글로시에의 SNS 전략은 남달랐다. 먼저 글로시에의 탄생 스토리부터 살펴보자. 유명 패션 매거진의 스타일링 어시스트로 일하던 글로시에 창업자 에밀리 와이스는 2010년 ‘인투더글로스’라는 블로그를 개설했다. 그는 경력을 살려 패션업계 거물들과 나눈 인터뷰를 이 블로그에 차곡차곡 올렸다. 유명 모델인 킴 카사디안, 칼리 크로스뿐만 아니라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바비 브라운, 디자이너 제나 라이온스도 에밀리 와이스의 인터뷰이가 됐다.

다윗 글로시에의 승리

인터뷰 내용은 그들의 뻔한 성공스토리를 담지 않았다. 대신 소비자들이 진짜 궁금해 하는 걸 담았다. 바로 ‘뭘 사용해서 어떻게 예뻐졌는지’였다. 에밀리 와이스는 인터뷰이의 현관문을 열고,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낱낱이 공개했다. 선반엔 어떤 제품이 진열돼 있는지, 이 제품들을 어떻게 쓰고 있는 지를 자세히 물었다.

독특한 접근 방식의 인터뷰는 금세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단순히 신제품을 공개하거나 세일 정보가 게재되는 기존 SNS 생태계에 지친 수많은 여성들의 입소문을 탔다. 100개가 넘는 인터뷰 콘텐트가 쌓인 블로그 인투더글로스는 100만개의 조회수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블로그를 통해 끊임없이 독자들과 소통을 하며 코스메틱 시장의 남다른 식견을 쌓았다. 그러다 2013년에 스타트업 캐피털 펀딩을 유치했고, 2014년엔 블로그 인투더글로스의 정체성을 녹여낸 코스메틱 브랜드 ‘글로시에’를 론칭했다. 출시 전부터 글로벌 팬덤을 확보한 덕에 치열한 화장품 시장에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필자는 글로시에를 보면서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다윗과 골리앗」이 떠올랐다. 기존 법칙을 거부하고 창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룰이 보인다는 내용의 책이다. 실제로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의 시장 지위는 절대적이다. 거대자본으로 제조에서부터 유통까지 막강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어서다.

‘다윗’ 글로시에는 ‘골리앗’인 이들을 민첩한 전략으로 넘어섰다. 글로벌 브랜드들의 치명적인 약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에밀리 와이스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을 들어보자. “많은 기업들이 고객을 통해 변화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다. 어떻게 하면 고객을 회사 일부로 만들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정안석 인그라프 대표 joel@ingraff.com | 더스쿠프 브랜드 전문기자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