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실험인가, 창피한 모방인가

한국인의 일본 여행 필수 코스 중 하나로 꼽히는 ‘돈키호테’. 1989년 덤핑상품을 판매하는 소매점으로 시작해 일본 유통시장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최근 이마트가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해 ‘삐에로쑈핑’을 오픈했다. 상품 구성부터 매장 동선까지 돈키호테와 똑 닮았다. 대중의 반응은 엇갈렸다. “신기하다”부터 “베끼기다”까지. 삐에로쑈핑은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삐에로쑈핑를 직접 다녀왔다.  

이마트가 6월 28일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삐에로쑈핑’을 오픈했다.[사진=뉴시스]
이마트가 6월 28일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삐에로쑈핑’을 오픈했다.[사진=뉴시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야심작이 공개됐다. 지난 6월 28일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이마트가 운영하는 ‘삐에로쑈핑’이 문을 열었다. 일본 잡화점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만물상 콘셉트의 할인 매장이다. 이마트는 삐에로쑈핑을 “B급 감성의 보물창고”라고 소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1층  893㎡(약 270평), 지하2층 1620㎡(약 490평) 총 2513㎡(약 760평) 규모에 4만여가지 상품을 빼곡이 진열했다. 이른바 ‘압축진열(바닥부터 천장까지 물건을 꽉 채우는 형태)’이다.

신선식품부터 가공식품, 주류, 화장품, 컬러렌즈, 문구류, 철물류, 가전제품, 패션명품, 성인용품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일반 대형마트 수준의 상품 품목을 4분의 1 규모의 매장에 옮겨 놓은 셈이다. 통로 폭도 90㎝ 안팎으로 일반 대형마트(250㎝)의 절반에 못 미친다. 미로 같은 매장에서 길을 잃고 구경하다 눈에 띄는 아이템을 발견하는 재미를 주는 ‘FUN&CRAZY’라는 매장 콘셉트에 따른 거다.

정 부회장은 삐에로쑈핑 오픈 전부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 3월 신세계 채용박람회에서 삐에로쑈핑을 언급했다 “1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오픈 첫날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없는 게 없는 신기한 공간이다” “길 잃고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는 반응과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게 베끼는 것이냐” “돈키호테와 똑같아서 외국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럽다”는 박한 평가도 적지 않았다. 

이마트는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해 매장을 오픈하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밝혀왔다. 온라인 쇼핑 활성화로 한계에 직면한 오프라인 사업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돈키호테는 일본 오프라인 유통점의 강자로 꼽힌다. 일본 경제가 불황을 지나는 20년 동안 돈키호테는 나홀로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8300억엔(약 8조원)으로, 매장수는 370여개에 달한다. 돈키호테는 2020년까지 매출액 1조엔(약 10조원), 매장수 500개를 목표로 내세웠다. 1998년 창립 이래 한번도 실적이 역신장하지 않았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이마트가 돈키호테의 비즈니스 모델을 한국에 들여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돈키호테의 전략은 ‘CV+D+A(Convenience+ Discount+Amusementㆍ편의성+가격+즐거움)’이다. 점포의 평균 영업시간은 17시간으로, 관광객 밀집 지역 매장의 경우 심야영업을 실시한다. 또 제품수가 4만~6만여개에 달해 한곳에서 모든 것을 쇼핑할 수 있다. 가격 경쟁력은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힌다. 전체 상품의 60%는 본사가 조달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나머지 40%는 각 지점별로 제조사의 재고상품을 자율적으로 들여와 판매한다.

지점에 권한을 위임한 만큼 인센티브도 톡톡히 제공한다. 점장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생에게도 매대를 맡겨 판매 수익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또 압축진열로 매장을 미로처럼 만들어 ‘보물찾기’를 하는 듯한 재미를 준다. 매장에서 체류하는 시간을 길게 해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삐에로쑈핑은 돈키호테의 영업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을 차용했다. 삐에로쑈핑 1호점의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10시로, 심야영업 계획은 없다. 매장 구성이나 운영 방식은 거의 비슷하다. 유진철 이마트 BM(브랜드매니저)은 “본사는 매장 오픈까지만 관여하고 점장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할 계획이다”면서 “전체 제품의 60%를 이마트가 소싱하고 나머지는 매장에서 상권에 맞는 상품을 소싱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불황 먹고 자란 돈키호테

초저가 실현을 위해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이나 재고상품, 부도상품도 도입했다. 삐에로쑈핑은 ‘급소가격(가격 경쟁력이 있는 특가상품)’ ‘갑오브값(카테고리 내에서 가격 경쟁력이 우수한 상품)’ ‘광대가격(삐에로쑈핑 단독 및 PL상품)’이라는 가격 정책을 내놨다. 전문가들도 삐에로쑈핑의 성패는 ‘상품’과 ‘가격’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주영훈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돈키호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상품 구성 능력이 좋고 회전율이 좋았기 때문이다”면서 “호기심에 삐에로쑈핑을 방문한 고객이 지속적으로 찾게 하려면 꾸준히 상품을 교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마트는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해 의도적인 B급 콘셉트 매장을 꾸몄다.[사진=뉴시스]
이마트는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해 의도적인 B급 콘셉트 매장을 꾸몄다.[사진=뉴시스]

이정희 중앙대(경영학) 교수는 “돈키호테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다”면서 “삐에로쑈핑의 성패는 메리트 있는 상품 구성과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돈키호테의 껍데기가 아니라 속까지 닮고 싶다면 점포별 독자적인 운영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거다.

삐에로쇼핑의 또 다른 관건은 출점 확대다. 이마트는 올해 삐에로쑈핑 3호점까지 오픈한다고 밝혔다. 2호점은 동대문 두타몰(1401㎡ㆍ약 425평), 3호점은 강남구 논현동 자사건물(661㎡ㆍ약 200평)이 될 전망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1호점을 이제 오픈한 상태라서 추후 출점은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지역ㆍ상권ㆍ업태ㆍ규모에 관계없이 오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격적인 출점 가능성을 내비친 셈이다.

하지만 삐에로쑈핑이 도심지로 본격 출점할 경우 반발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상품 품목 면에서 일반슈퍼ㆍ편의점ㆍ화장품 전문점ㆍ철물점ㆍ문구점 등 여러 골목상권과 접점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삐에로쑈핑과 가장 비슷한 업태로 구분되는 다이소의 경우, 지역 상권과 마찰이 심해 출점이 가로막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삐에로쑈핑이 이마트가 장악하고 있는 상권 위주로 출점할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정희 교수는 “기존 이마트 계열의 오프라인 점포를 전환하는 정도라면 반발이 덜 할 수 있지만, 신규 출점은 기존 상권에서 거부감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주영훈 애널리스트는 “코엑스몰이나 동대문 두타 등에 출점하는 것은 기존 상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었다”면서 “아직까지는 이마트의 상권 내에 출점해 트래픽을 강화하는 정도의 시너지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주변 상권과 겹치는 품목의 판매를 줄이고, 중소기업 상품을 입점하는 등 상생안을 강구하고 있다”면서 “지역으로 진출 등은 1호점 성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불황을 먹고 자란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삐에로쑈핑. 불황의 터널을 지나는 한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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