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인간의 모험」 1평 칸막이 속 사무인간 연대기

자기 인생을 누군가 대체하기 전에 방편을 마련하는 것은 사무인간의 필수가 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기 인생을 누군가 대체하기 전에 방편을 마련하는 것은 사무인간의 필수가 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내가 누군가를 대체했듯 또 누군가는 나를 대체하겠지….” 사무인간의 숙명은 갈수록 고달파지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누군가 대체하기 전에 방편을 마련하는 것은 이제 사무인간의 필수가 됐다. 직장 생활에서의 불안감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래 할수록 더 커질 뿐이다. 사무직을 선택해 그토록 바라던 조직에 들어가 칸막이 속 책상 앞에 앉지만 안도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사람들은 사무인간이 되길 바랄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무인간은 기회도, 자리도 부족해 보이는데 말이다.

「사무인간의 모험」의 출발점은 “사무인간은 언제 시작된 걸까”라는 질문이다. 이 책은 고대의 필경사로부터 ‘육체노동에 무임승차한다’는 비아냥을 견뎌야 했던 산업화 초기의 화이트칼라를 거쳐,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지나 과학기술에 몰리다 이젠 인공지능과 경쟁하는 사무인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챕터마다 ‘이사무’라는 가상인물이 등장해 역사·경제·사회와 관련한 과거 여행을 떠난다. 이사무는 직장인들이라면 한번쯤 해봤을 궁금증과 고민들을 대신한다. 그는 아무 준비 없이 퇴사한 김 부장의 푸념을 들으며 생존을 위해 운명을 개척해야 했던 고대 노예의 모습을 떠올린다. 노예제와 그들의 노동 의미를 고찰해 오늘날 직장인의 상황을 설명하는 식이다. 우리의 입장과 다르지 않은 사무인간 이사무의 연대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은 노동의 의미, 업무 환경, 사무기기 등 사무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을 역사 속 사건들과 유기적으로 그려낸다. 저자는 인문학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역사적 근거를 더해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사무인간을 둘러싼 좌충우돌 세계사라 할 수 있다. 역사·경제·사회·기술의 변화에 따라 사무 노동의 의미와 입지는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기원전엔 파피루스에 글을 쓰던 사람이, 고대와 중세에는 필경사들이, 이후 산업화를 거치면서는 타자기로 전보를 써부치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호황과 불황을 감내하며 경제공황에 몰리기도 했다. 급변하는 과학기술에 자리를 내주기도 하고 간신히 보조를 맞추기도 하면서 오늘날 키보드 앞에 앉아 있는 회사원으로 바뀌었다.

‘지금’을 해석하는 일이 어려울 때마다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보며 앞으로 갈 길을 찾는다고 한다. 저자는 책에 등장하는 100년 전 사무원의 모습이 지금과 다르듯, 우리의 모습이 또 다른 100년 후에는 기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역사의 한편에서 묵묵히 하루를 기록해온 과거의 동지들과 마주하다 보면, 당신이 ‘갇힌’ 그 자리에서도 소박한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전하는 사무인간의 역사는, 오늘날 업무에 치여 문득 “여긴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라면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세 가지 스토리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내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김현아 지음 | 포레스트북스 펴냄

어떤 모임이든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다. 단지 말재주가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저자는 “대화를 이끄는 사람들은 ‘맞장구’를 치는 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한다. 별 것 아닌 얘기라도 맞장구를 쳐주면 상대방은 자신의 말에 힘이 실린다는 걸 느끼고 덩달아 경청의 자세를 유지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부나 호들갑을 떨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 책은 ‘제대로 맞장구치는 법’을 자세히 다룬다.

「연동하는 동아시아를 보는 눈」
박경석 지음 | 창비 펴냄

최근 동아시아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격동의 한때를 보내고 있다. 남북의 평화무드에 이어 북한의 비핵화 문제도 본격화하면서 동아시아 정세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저자는 동아시아론을 다시 한 번 점검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그는 책을 통해 ‘이중적 주변의 눈’ ‘복합국가론’ ‘핵심현장’ 등 다양한 동아시아론 키워드를 소개하며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서밍 업」
서머싯 몸 지음 | 위즈덤하우스 펴냄

「달과 6펜스」로 유명한 저자의 대표적인 에세이다. 문학·예술·여행·글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오는 주제들을 저자 특유의 명료한 문장과 예리한 시선으로 책에 담아냈다. 그는 서두에서 “모든 인생의 질문에 시원하게 답해주는 책을 찾는다”고 말한다. 그런 책을 직접 써보고 싶다는 뜻일 거다. 그의 바람대로 이 책에는 20세기 초에 쓴 글임에도 오늘날까지 인용될 만큼의 깊은 통찰력이 담겨 있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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