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곳이 천국

노후에 지금 살던 곳을 떠나 낯선 시설물에 들어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사진=뉴시스]
노후에 지금 살던 곳을 떠나 낯선 시설물에 들어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사진=뉴시스]

어느 미국 교포신문에 실린 시니어타운에 관한 기사가 관심을 끈다. 100세 시대의 낙원으로 여겨지는 시니어타운이 파라다이스에서 음산한 유령의 마을로 바뀌고 있다는 내용이다. 시니어타운은 골프장ㆍ테니스장ㆍ수영장ㆍ산책로 등이 있고, 취미클럽 활동이 많아 비교적 여유 있는 계층의 로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꿈과 같은 시간은 길지 않다. 부부 중 한명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홀로 남겨진 싱글은 흔히 말하는 돌싱(돌아온 싱글)이 아니라 85세 이상 된 노쇠한 독거노인이다. 특히 아내를 먼저 보낸 남자 어르신은 아예 청소를 하지 않아 쓰레기가 쌓이고 이웃과 교류를 끊고 살기도 한다. 치매노인이 늘어 가출신고가 빈번한가 하면 이웃이 사망해도 모른 채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85세 이상인 노인들에게는 넓은 주차시설이나 헬스클럽 같은 훌륭한 시설조차 아무 의미가 없어져 점차 황량한 마을로 변해 간다.

지난해 11월 뉴욕타임스는 일본 시니어타운에서 35년을 살아온 ‘이토 할머니’의 일기를 입수해 보도했다. 자식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직 이웃만이 도움을 주고받는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70대부터 미리미리 사귀어야지 85세가 넘으면 친구를 새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이토 할머니는 고독이 가장 힘든 문제라고 토로한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 머지않아 우리에게 벌어질 일이다. 요즘 일본에는 넉넉한 형편의 노인들이 일부러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친다고 한다. 감옥에 가면 젊은 사람들이 북적거려 외롭지 않고 건강까지 나라에서 챙겨주니 교도소가 노인들의 피신처로 최고라는 것이다.

신神은 정말 심술궂다. 전체 가구의 30%(서울시 2016년 1인 가구 비중 30.1%) 가까이를 독신 세대주로 만들어 놓고 행복은 혼자서는 느낄 수 없도록 교묘하게 설계해놓았으니 말이다. 시니어타운과 같은 단순한 시설물은 절대 답이 될 수 없다. 

해답은 두가지로 귀결된다. 첫째,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이를 고독력孤獨力이라고 부른다. 시인 황동규는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라는 뜻으로 ‘홀로움’이라는 말을 새롭게 만들었다. 

외로움(loneliness)이 고립과 단절을 의미한다면, 고독(solitude)은 독립과 재생의 의미에 가깝다.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홀로됨을 즐길 때 삶은 풍요로워지고 은퇴도 두렵지 않게 된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고독예찬론자다. 젊어서부터 고독만이 참된 행복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독을 사랑하며 고독을 감당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느 프랑스 철학자는 “인간의 모든 고뇌는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장수시대에는 인간관계보다 혼자 살아가는 힘이 더 중요하다. 은퇴 후 40~5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가 은퇴하고 이렇게 오래 생존한 적이 없다는 사실, 그리하여 어떤 세대도 경험하지 못한 긴 외로움에 직면해야 한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홀로움’을 키우려면 배우자가 있더라도 미리 연습해야 한다. 요리하는 즐거움을 배우고,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운동을 통해 노화를 늦추고 홀로 여행하고, 자신에게 몰두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다.

두번째, 이웃과 더불어 사는 마을 공동체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수도권 소도시에 사는 필자가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시니어아카데미’ 과정에 참여했을 때 얘기다. 의아하게도 싱글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스스럼없이 어울리는데, 수강생 중 싱글 남성은 아예 한명도 없었다. 그 많은 홀로된 남성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흔히 여성들의 노후가 걱정이라고 한다. 대부분 여성이 4~5년 더 오래 사니 금전적 측면에서 보면 일리가 있다. 실제로는 노년 남성들이 훨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기업 임원이나 잘나가는 공직자 출신일수록 퇴직 후 힘들어 하는 이유는 이웃과 함께 어울릴 생각을 아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처럼 두문불출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 

노후에는 살던 곳을 떠나 낯선 시설물에 들어가는 것보다 현 거주지를 시니어타운으로 생각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게 좋다. 마을 화단을 가꾸고 함께 텃밭도 일구며 이웃 공동체의 삶을 미리미리 연습하라는 얘기다. 천국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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