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non-causa pro causa-이유 같지 않은 이유
[Economovie] non-causa pro causa-이유 같지 않은 이유
  • 김상회 정치학 박사
  • 호수 296
  • 승인 2018.07.12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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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올드보이 ❺

‘올드보이’의 주인공은 영문도 모른 채 납치돼 15년간 수감생활을 견뎌낸다. 그는 풀려난 즉시 15년간 품어왔던 ‘왜?’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 행동에 나선다. 수감 생활 동안 매일 꾸역꾸역 먹던 군만두에서 나온 ‘청룡반점’이라는 종이 쪼가리 하나를 단서 삼아 서울 바닥의 온갖 청룡반점을 순회하며 시식한다.

인간관계에서는 모두가 수긍하는 정립된 ‘인과관계의 법칙’이 존재하기 어렵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인간관계에서는 모두가 수긍하는 정립된 ‘인과관계의 법칙’이 존재하기 어렵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에서 관객들에게 대단히 고통스러운 ‘먹방’을 보여준다.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수감 생활을 끝내고 풀려난 오대수(최민식)는 사설감옥에서 15년간 매일 먹던 군만두에서 나온 ‘청룡반점’이라는 종잇조각을 단서 삼아 서울의 모든 청룡반점을 순회한다. 그는 15년간의 군만두형刑을 스스로 연장하는 형극의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의 검찰과 경찰이 오대수 정도의 끈기와 집념을 발휘한다면 어떠한 미제未濟 사건도 없을 듯하다. 박찬욱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제목처럼 ‘복수는 나의 힘’인 것이다. 인간은 보은報恩을 위해 목숨을 걸진 않지만 보복報復을 위해서는 기꺼이 목숨을 거는 대단히 신기하고 위험한 동물이다. 신에게 ‘15년 군만두형’을 내린 악마의 추적 과정에서 그 악마에 대한 오대수의 원한은 더욱 처절해진다. 오대수를 돕던 그의 유일한 친구까지 악마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오대수는 “너를 지구 끝까지라도 찾을 것이다. 너의 시체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갈기갈기 찢어 먹을 테니까”라고 절규한다.

오대수의 눈물겹도록 처절한 1인 수사극은 마침내 그 결실을 거둬 자신을 15년간 가둔 원흉 이우진(유지태)과 대면한다. 이우진은 오대수가 자신을 가둔 ‘이유’를 알기 전에는 자신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오대수는 이우진을 그 자리에서 장도리로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지만 일단 살의를 억누르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자신을 가둔 ‘이유’를 묻는다. 모든 인간들은 그렇게 ‘이유’에 목을 맨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어도 마치 그 ‘이유’를 알려주면 순순히 인정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기라도 할 것처럼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나 알고 죽자’고 하소연한다. 사람을 죽여놓고도 온갖 구구절절한 ‘이유’를 대며 자신을 합리화하기 일쑤기도 하다.

주인공 오대수는 영문도 모른 채 납치돼 15년간 수감생활을 견뎌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주인공 오대수는 영문도 모른 채 납치돼 15년간 수감생활을 견뎌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자신을 15년간 가두고 군만두만 먹인 ‘이유’를 알고 싶어 이를 가는 오대수에게 이우진은 판결문을 낭독하듯 그 이유를 말한다. 고등학교 시절 빈 교실에서 벌였던 자신과 누이의 근친상간 행위를 엿보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 누이를 자살하게 한 죗값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대수는 미처 몰랐던 자신의 죄를 비로소 깨닫고 이우진에게 사과하면서도 복수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영화 ‘올드보이’는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지만 예상대로 오대수는 ‘나는 몰랐다’고 한다. ‘기억조차 없다’고 한다. 청문회장의 단골 레퍼토리다. 또한 설사 그랬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을 15년간 가둘 만한 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유’를 알아도 여전히 억울하고 기가 막힌다. ‘죽더라도 이유나 알고 죽자’던 오대수는 ‘이유’를 알고도 이우진의 고급 펜트하우스에서 사생결단 난장판을 벌인다. ‘이유’를 알건 모르건 대개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자연과학(natural science)은 ‘인과관계 법칙(causational law)’이 그나마 지배하지만, 인간과학(human science)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관계에서는 모두가 수긍하는 정립된 ‘인과관계의 법칙’이 존재하기 어렵다. 서로가 상대방이 제시하는 ‘이유’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non-causa pro causa)’일 뿐이다. 오대수의 ‘몰랐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이유’는 오대수에게는 충분히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이우진에게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오대수의 천박한 엿보기와 남의 치부를 소문낸 행위가 이우진에게는 ‘15년 감금’의 충분한 이유가 되지만 오대수에게는 절대 그렇지 못하다.

많은 정치인들이 지방선거가 내린 ‘사형선고’에도 정계 은퇴를 거부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많은 정치인들이 지방선거가 내린 ‘사형선고’에도 정계 은퇴를 거부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판결문’을 낭독했다. 많은 정치인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퇴진 압박 속에서도 ‘죽어도 이유나 알고 죽자’고 버티던 많은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이 지방선거라는 심판을 통해 그 사형선고의 ‘이유’를 알려줬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그 ‘이유’라는 것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대법원보다 더 높은 ‘국민법원’ 격인 선거가 내린 ‘사형선고’조차 거부하고 정계 은퇴를 거부한다. 이들이 사형선고를 거부하고 들이대는 ‘이유’ 역시 많은 국민들이 보기에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일 뿐이다.

대통령이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유서도 ‘이유같지 않은 이유’라고 콧방귀를 뀌는 세상이니 새삼 놀라울 일도 아니긴 하다. 서로가 서로의 ‘이유’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남는 것은 오대수와 이우진의 난장판 개싸움밖에는 없다. 오대수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욕망을 접고 물러났다면 더 이상의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사형선고서에 적시한 판결 이유를 해당 정치인들이 받아들이고 물러난다면 그나마 더 이상의 비극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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