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문화재단의 금호타이어 주식과 문체부의 묘한 전결

박삼구 회장은 2015년 7월 문체부 산하 민간협력 공공기관인 ‘한국방문위원회’ 위원장에 올랐다. [사진=뉴시스]
박삼구 회장은 2015년 7월 문체부 산하 민간협력 공공기관인 ‘한국방문위원회’ 위원장에 올랐다. [사진=뉴시스]

2015년 가을, 공익법인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하 금호문화재단)은 금호산업 인수를 위해 설립된 SPC 금호기업에 400억원을 출자했다. 금호문화재단은 보유재산(금호타이어 주식)을 매각한 금액에 현금을 보태 이 출자금을 마련했다. 논란이 일었다. “공익법인 금호문화재단의 재산을 금호아시아나그룹 재건을 위해 쓰는 게 맞느냐”는 거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문체부의 승인을 거쳐 (금호문화재단의) 재산을 매각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문체부의 승인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단독취재했다. 

# 승자의 저주와 박삼구 

대우건설(2006년)에 이어 대한통운(2008년)까지 집어삼켰다(인수합병ㆍM&A). 포식자로 돌변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의 밑바닥에 ‘승자의 저주’가 깔렸지만 박삼구 회장은 개의치 않았다. 예상대로 M&A의 뒤끝은 깔끔하지 않았다. 회사채ㆍ풋백옵션 등을 통해 조달한 10조원에 이르는 빚이 문제였다. 2008년 초여름, 시장 안팎에 ‘금호의 유동성에 탈이 났다’는 말이 나돌았다. 금호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그룹 합동 IR(2008년 7월)’을 열었지만 뒷말은 더 독해졌다. 위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 그룹 붕괴와 대주주 

2010년, 마침내 금호가 무너졌다. 무리하게 몸을 키운 게 화근이었다. 그룹은 뿔뿔이 흩어졌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에 돌입했고,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을 맺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그해 8월 박 회장도 대주주 지위를 상실했다. ‘승자의 저주’가 그룹은 물론 박 회장에게도 날카로운 부메랑을 날린 셈이었다.[※ 참고: 박 회장은 대주주 지위를 상실한 지 3개월 만인 11월 금호 명예회장에 은근슬쩍 올랐다.] 

# 잔치의 시작과 탐욕 

‘무너진 금호’에 제비가 찾아온 건 4년여가 흐른 2014년이었다. 금호산업은 ‘조건부 워크아웃 졸업’이 결정됐고,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 졸업 요건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경영성과를 인정 받은 아시아나항공도 ‘자율협약 꼬리표’를 뗐다. 박 회장은 ‘만찬晩餐’을 준비했다. “2015년은 새롭게 시작하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원년이 될 것이다(2015년 신년사).”

그의 만찬에 초대장을 받은 첫 계열사는 당연히 금호산업이었다. 금호산업을 품에 안아야 아시아나항공ㆍ금호터미널 등 핵심 계열사를 줄줄이 엮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인수전과 종잣돈    

2015년 초, 금호산업 인수전의 막이 올랐다. 채권단과 박 회장의 팽팽한 기싸움 끝에 최종 인수가격은 7228억원으로 결정됐다. 돌이켜보면,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금호산업의 인수가격은 채권단 요구액(1조원 이상)보다 떨어지긴 했지만 박 회장이 원한 금액(6503억원)도 아니었다. 

박 회장이 애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하 금호문화재단)에 출자(400억원)를 요구한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었다. 박 회장으로선 인수가격이 예상액보다 700억여원 늘면서 또다른 ‘돈줄’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박 회장이 금호문화재단을 활용하는 건 난제難題였다. “공익법인(금호문화재단)의 자금을 사익私益(박삼구와 오너 일가)을 위해 사용하는 게 맞느냐”는 이유에서였다. 

난제는 또 있었다. 금호문화재단이 자금을 만들기 위해선(보유재산 매각) 문체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한 공익법인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공익법인은 명칭 그대로 공익公益을 위한 단체다. 이 때문에 세금 감면도 받는다. 공익법인이 재산을 매각 또는 취득하려 할 때 주무부처가 그 사유를 꼼꼼히 봐야 하는 이유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국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공익법인이지만, 박 회장을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 [사진=뉴시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국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공익법인이지만, 박 회장을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박 회장과 금호 앞에서 문체부는 ‘자동문’이나 다름없었다. 문체부는 ‘금호그룹을 재건하기 위해 금호문화재단이 보유한 재산(금호타이어 주식ㆍ447만9562주)을 팔겠다’는 금호 측의 요청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금호문화재단은 금호타이어 주식 매각 금액 325억여원에 기존 보유현금 75억여원을 보태 400억원을 금호기업에 출자했다. 박 회장은 그렇게 만든 자금으로 금호를 재건해 나갔다. 박 회장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 참고: 경제개혁연대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꼬집으면서 2016년 1월 박 회장을 비롯한 금호문화재단 이사진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금호문화재단 등 공익법인이 금호산업의 주식을 사들일 이유가 없다. 이는 박삼구 회장의 사익에 따른 고가 매입일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그해 말 불기소처분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문체부의 금호문화재단 보유재산 매각 승인 과정이 밝혀졌는지는 의문이다.] 


# 순식간에 전결 처리 

그렇다면 금호문화재단의 보유재산이 박 회장 측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더스쿠프가 유은혜 의원실(민주당)을 통해 단독입수한 금호문화재단과 문체부의 내부문건(2015년 10월)에 따르면 금호문화재단이 보유하고 있던 금호타이어 주식의 매각 승인 절차는 단 10여일(주말 제외) 만에 마무리됐고, 모든 최종 결재는 문체부 A과장(당시)이 전결專決했다. 예민하고 중대한 이슈를 A과장 혼자 처리했다는 거다. 문체부 산하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A과장은 “지금은 담당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언급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문체부 관계자는 “원래 법인의 재산처분 승인은 과장에게 전결 권한이 있다”고 해명했다. 

익명을 원한 공익법인 관계자는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반론을 강하게 폈다. “공익법인 내부의 대규모 자금이 사기업으로 흘러갈 땐 주무부처가 면밀하게 볼 수밖에 없다. 공익법인들이 연말마다 공시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금호문화재단의 출자는 그룹 지배구조와 얽힌 일이었다. 10여일 만에 전결할 사안이 아닌 듯하다.” 

#6. 우량한 금호기업이라니 …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금호문화재단은 2015년 10월 20일 문체부에 보낸 ‘기본재산 처분 허가 요청건件’이라는 공문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남겼다. “… 금호타이어 주식 전량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한 후 기본재산 형태로 보유하면서 우량한 금호그룹 주식에 출자해 …” 

이 문구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여기서 금호그룹은 금호산업을 인수하기 위해 만든 SPC 금호기업을 뜻한다. 금호기업은 (금호문화재단의 주장처럼) 우량하기는커녕 껍데기만 있는 회사다. 이익을 만드는 부서도 없다. 그럼에도 문체부는 금호문화재단의 거짓 요청을 꼼꼼하게 검증하지 않은 채 ‘전결’이라는 쉬운 방법으로 수용했다.

#7. 우연인가 필연인가 

금호문화재단의 재산 처분이 간단하게 승인된 2015년 가을, 시장 안팎엔 다음과 같은 소문이 돌았다. “박삼구 회장이 문체부 고위 관계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덕분에 공익법인(금호문화재단)의 재산 중 일부가 쉽게 금호기업으로 넘어갔다.” 

소문대로 문체부가 박 회장에게 도움을 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박 회장이 문체부와 밀접한 관계였던 건 사실이다. 박 회장은 금호산업의 인수전이 한창이던 2015년 7월 16일 문체부 산하 민간협력 공공기관인 ‘한국방문위원회’ 위원장에 올랐다. 8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문체부와 ‘문화가 있는 날’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그로부터 한달 뒤 박 회장은 ‘한일축제한마당 한국측 실행위원장(문체부 후원ㆍ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 행사 참석)’이란 명함을 새로 팠다. 

그해 10월엔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이 문체부 산하 미르재단에 각각 4억원, 3억원을 기부했다. 두 기업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쥐어짜내 만든 기부금이었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991.2%, 금호타이어의 부채비율은 314%에 달했다. 
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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