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

태국 유소년 축구팀 ‘무빠’의 보조코치인 에까뽄, 한화이글스 감독 한용덕, 원주 DB프로미 감독 이상범(왼쪽부터).[사진=뉴시스]
태국 유소년 축구팀 ‘무빠’의 보조코치인 에까뽄, 한화이글스 감독 한용덕, 원주 DB프로미 감독 이상범(왼쪽부터).[사진=뉴시스]

월드컵 우승팀보다 위대한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단! 태국 치앙라이 유소년 축구팀 ‘무빠(야생멧돼지)’에 관한 얘기다. 축구 훈련을 마치고 5㎞나 되는 동굴에 단체로 들어갔다가 폭우로 굴 속에 물이 차올라 거의 20일간 고립돼 있었다. 소년들과 코치 등 13명은 흙탕물이 넘치는 최장 800m의 침수구간을 뚫고 모두 생환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전 세계에서 이들을 구하려고 몰려든 국제 잠수전문가들, 언론과 정치를 최대한 배제하며 치밀한 계획과 실행으로 이들을 모두 구조한 태국 정부와 해군 네이비실은 혼연일체가 되어 아이들을 살려냈다.

무엇보다 25세 축구팀 보조코치 에까뽄의 리더십이 돋보인다. 그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아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줬다. 코치는 소년들이 두려움을 이겨 내고 체력을 비축할 수 있게 매일 명상을 가르쳤다. 아이들은 “코치가 깨끗한 물을 마시도록 지도했고, 남은 과자들을 양보한 채 굶주렸다”고 증언했다. 구조팀이 오자 코치는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맨 나중에 동굴에서 나왔다.

한화 이글스는 자타 공인 만년 꼴찌팀이었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응원을 멈추지 않는 모습은 종교적 해탈에 비유됐고, “행복합니다”라는 팀 응원가는 자조적인 표현으로 사용될 정도였다. 선수도 구단주도 팬들도 비슷한데, 오직 감독(한용덕) 한명 바뀌었다고 한화 이글스는 전반기 2위라는 믿을 수 없는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다.

“패배의식을 지워라.” 한용덕 감독이 맨 먼저 선수들에게 건넨 말이다. 한 감독은 경기장 내에서는 선수들이 가장 주목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며, 선수 중심의 야구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젊은 선수를 육성하고 기회를 주는 신뢰의 야구, 시즌을 길게 보고 강팀을 만들어나가는 믿음의 야구는 올 시즌 한화 이글스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2017~2018 시즌 정규리그 우승팀인 프로농구 원주 DB프로미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아예 평가대상에 오르지도 못했다. 동네북이 될 것이 뻔해 보였다. 지휘봉을 잡은 이상범 감독은 선수 개인의 경기력보다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추스르는데 집중했다. 패배의식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없애고 자신감을 북돋아 줬다. 열심히 준비한 선수들에게는 출전 기회를 보장해 기를 살렸다. 반면 주축 멤버라도 팀 분위기를 흐트리면 가차 없이 징계를 내렸다. 이상범 감독은 다른 무엇보다 ‘우리는 한팀’이라는 정신을 강조하고 실천했다.

우리는 태국 유소년 축구팀의 무사귀환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한화 이글스팀, 원주 DB프로미팀의 질주를 이변이라고 박수를 친다. 그러나 모든 기적과 이변에는 이유가 있다. 기적은 운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책임과 노력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세팀의 공통점은 리더의 ‘담대한 리더십’이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조직원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줬다. 따뜻한 인간애에 바탕을 둔 형제 같은 팀워크를 강조했다. 내편 네편으로 나눠 편가르기를 하지 않았다. 다소 실수를 하더라도 조용히 관용을 베풀었다. 반면 팀원들에게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규칙을 위반하면 단호히 벌칙을 부과했다.

지금 한국이라는 팀은 어떤가.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이 드리운 어둠의 동굴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바다 밑에 가라앉은 배는 인양했지만 좌절한 국민의 마음은 아직 건져내지 못했다. 도덕적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불신의 벽은 높아졌다. 침몰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괴담이 춤추고, 정치적 계산이 오간다.

국가적인 위기를 돌파하려면 대통령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촛불로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더 이상 개혁과 지지층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 말고 결단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훌륭히 수행하고도 지지층의 반발을 초래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개혁이 가야 할 길은 온통 가시밭이다. 하지만 개혁이라는 강을 건너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인다.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의 길을 가겠다는 용기와 비록 적폐세력이라도 끌어안고 함께 가겠다는 따뜻한 관용의 정신은 시대가 요구하는 담대한 리더십이다. 그러나 우린 희망보다는 증오와 분열과 편가르기식 대결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장마가 지루하고 답답한 것은 어둠의 동굴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좌절감 때문인지 모르겠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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