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다 배꼽이 큰 보험금 청구서류 비용
서류발급 비용 병원 맘대로, 개선책 무용지물

실손의료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선 관련 서류를 떼야 한다. 하지만 1만~2만원에 달하는 이 서류 비용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클 때가 많다. 서류 발급 비용에 자기부담금 등을 빼면 실제로 환급받는 돈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보험금 청구 서류 비용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실손의료보험은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릴 만큼 가입률이 높다. 하지만 꾸준히 제기돼온 청구 서류 비용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실손의료보험은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릴 만큼 가입률이 높다. 하지만 꾸준히 제기돼온 청구 서류 비용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최근 어깨가 쿡쿡 쑤셔왔던 김진수(가명ㆍ32)씨는 집 근처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X-ray) 촬영을 하고 처방전을 받아든 김씨는 진료비로 3만4000원가량을 냈다. 며칠 뒤 실손의료보험금(실비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한 서류를 떼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은 김씨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병원에서 서류 발급비로 2만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3만원가량의 보험금을 받는데 드는 서류비용이 2만원이나 하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게 아닌가 싶었다”면서 “자기부담금 1만원까지 빼면 고작 몇천원 받자고 시간을 들여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 직장인 이영희(가명ㆍ34)씨는 항상 뒷목이 뻐근하다. 장시간 컴퓨터를 들여다봐야 하는 업무 탓이었다. 요 며칠 통증이 심해진 이씨는 회사 인근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진료비는 약 15만3000원이 나왔다. 하지만 사나흘이 지나도 통증은 가시질 않았다.

이번에 이씨는 앞서 찾아간 병원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른 병원을 찾았다. 13만여원 상당의 진료를 받았고, 효과가 있었다. 이후 이씨는 실손의료보험금을 받기 위한 요건을 살펴봤다. 보험사에서 요구한 건 ‘질병분류기호’가 적힌 증명서. 두 병원을 찾아 해당 서류 발급을 요청한 이씨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겪었다. 

 

두번째 진료를 받은 병원에선 무료로 서류를 발급해준 반면, 처음 간 병원에선 1만원의 비용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다른 병원에선 무료로 발급해줬다”고 말해봤지만 병원에선 “질병분류기호가 들어간 서류는 모두 1만원을 주셔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씨는 “단지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서류 한장 인쇄해줄 뿐인데, 1만원이나 받아가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실손의료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마찰음이 들려온다. 사례에서 보듯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한 서류를 발급받는 데 불합리한 비용과 명확하지 않은 기준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심지어 “진단서 발급비용으로 1만원을 달라길래 너무 비싸 항의했더니 5000원으로 깎아줬다”는 사례까지 나온다. “병원들이 요즘 대다수 사람들이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을 가지고 장사를 한다”는 비아냥 섞인 푸념이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이유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수는 지난해 340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국민의 68%가량이 실손의료보험을 가입한 셈이다. 이를 감안하면 실손의료보험을 돈벌이에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터무니없다고 보긴 힘들다. 

보험금 청구 서류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숱하게 터져 나오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금감원ㆍ보건복지부 등 관계당국이 시스템에 손을 댄 건 꽤 오래전 일이다. 대표적인 게 2015년부터 시행된 개선안이다. 골자는 이렇다. “통원진료비가 3만원 초과 10만원 이하일 때는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진단서 대신 처방전으로 대체한다.” 

 

당시 개편안은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전까지 보험 가입자가 실손의료보험금을 받으려면 ‘질병분류기호’가 적힌 진단서를 떼야 했는데, 진단서 발급비용만 수만원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기대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보험사들은 청구 서류 양식을 일제히 개편했다. 삼성화재ㆍ현대해상ㆍKB손보ㆍDB손보 등 주요 손보사들은 금감원의 개편안대로 진료비가 3만~10만원일 때 처방전만 있어도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했다.

그럼에도 변화의 폭은 기대치를 밑돈다.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 비용이 과하다는 불만은 여전히 쏟아져 나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부 병원이 진단서를 발급해주고 받던 돈을 처방전을 발급할 때도 똑같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처방전은 약 제조를 위해 (병원이) 그냥 주던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돈을 받고 만들어주는 처방전과 무료 처방전은 엄연히 다르다.

돈을 받고 주는 처방전에는 보험사가 필요로 하는 질병분류기호가 기재돼 있다. 앞서 말한 진단서에 적힌 질병분류기호와 같은 건데, 보험사는 이 기호를 보고 “가입자가 진짜 아파서 병원에 간 게 맞는지”를 확인한다. 이씨가 간 첫 번째 병원에서 “질병분류기호가 적힌 서류는 모두 1만원”이라는 말을 들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참고 : 일부 보험사의 청구 서류 안내문에는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처방전은 병원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적혀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개편안이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을 두고 금감원 관계자는 “처방전은 발급 비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진단서의 대체재로 쓴 것인데, 보험사의 입장은 달랐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진료비가 3만원 이상으로 커지면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 이때 질병분류기호가 필요하다. 문제는 금감원으로선 병원에서 질병분류기호가 기재된 처방전을 돈 받고 발급한다고 해도 별다른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병원 등 의료기관은 금감원의 관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손의료보험금을 청구할 때 필요한 처방전, 병원마다 발급 비용이 다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실손의료보험금을 청구할 때 필요한 처방전, 병원마다 발급 비용이 다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금감원 개편안의 잘잘못만 따질 것도 아니다. 의료법에서도 별다른 기준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진단서를 비롯해 의료기관이 발급하는 모든 증명서의 항목과 금액에 관한 기준을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준에 처방전은 포함돼 있지 않다. 처방전은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금액을 매길 수 있다는 거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의료기관이 발급하는 증명서의 항목ㆍ금액 기준을 정하기로 한 것은 진단서 등의 증명서류 비용이 치솟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는데, 처방전은 이런 기준이 없다”면서 “처방전에 담기는 내용에 따라 금액이 어느 수준으로 산정될지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벗어난다고 해도 제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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