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진ㆍ조현아의 호텔 同床異夢

삼성그룹과 한진그룹 3세의 사업이 묘하게 겹치고 있다. 호텔사업이다. 주인공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다. 같은 무대에 올랐지만 둘 다 잘 풀리지 않는다. 한명은 사업이 10년째 제자리 중이고, 다른 한명은 일시 중단됐다.

▲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의 서울 전통호텔ㆍ면세점 신축사업이 10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로 재계에서 차세대 여성 CEO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 이 두 명의 사업이 묘하게 겹치고 있다. 호텔사업에서다.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삼성물산 등을 맡고 있다. 현재는 호텔사업에 비중을 두고 있다. 조현아 전무는 대한항공 객실•기내식기판사업과 호텔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사업 진행이 순탄치 않다. 무슨 사연일까.

서울 중구 장충동 호텔신라 정문 왼쪽에 위치한 서울 신라면세점. 평일인데도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로 붐볐다. 그 앞 호텔 주차장도 승용차로 꽉 차 있다. 호텔신라는 이 면세점을 헐고 ‘전통 한옥 호텔’(지하 4층•지상 4층 규모)을 새롭게 지을 계획이다.

또 호텔 정문입구 바로 앞 주차장과 면세점 주차장을 연결하는 높은 계단을 없애고, 기존 면세점보다 더 넓고 세련된 ‘복합 면세점’(지상 4층•지하 6층 규모)을 신축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호텔신라는 2011년 서울 중구청에 전통호텔과 면세점 신축 계획안을 제출했다.

중구청은 사업을 승인했다. 하지만 상위기관인 서울시가 계획안을 반려하며 호텔신라의 신축 사업은 중단됐다. 자연관광지구 내 관광호텔의 증•개축을 제한한 도시계획 조례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2006년 개정에 따라 한옥식의 전통호텔은 자연경관지구라고 해도 건축 제한을 받지 않는다”며 “하지만 호텔 주차장 부지에 들어서는 면세점•주차장 복합시설은 기존 관광호텔의 증•개축에 해당돼 위법”이라고 말했다. 호텔 주차장에 들어서는 복합시설(면세점과 주차장) 신축은 기존 호텔의 부속시설로 간주되기 때문에 전통호텔 증•개축만 허용하는 서울시 조례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중구청에서는 승인됐는데 서울시에서 주차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반려했다”며 “현재 10년 이상이 걸렸다. 다시 수정•보완해서 계획안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호텔신라의 전통호텔 신축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서울면세점을 지은 호텔신라는 2000년대 초중반 주차장과 그 앞 부지 활용방안에 논의했다. 하지만 남산 일대는 건축 허가가 제한된 자연경관지구다. 관광호텔 증•개축이 허용되지 않는 구역이다.

10년 이상 공들였지만…

이후 2006년 서울시 조례가 개정되며 자연경관지구 내 너비 25m 이상 도로변에 위치한 지역에 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받아 관광숙박시설 건축이 허용됐다. 2010년에는 자연경관지구 내에 한옥형 관광숙박시설이 허용됐다.
 

 

호텔신라는 본격적으로 전통호텔신축과 면세점 확장 계획을 세웠다. 당시 호텔신라는 ‘일반 주민들이 아닌 일부 재벌에만 유리한 개정으로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특혜 의혹을 받았다. 또 ‘호텔신라가 서울의 허파 남산에 면세점을 새롭게 짓는다’ ‘남산 제모습 가꾸기로 한쪽에서는 철거 작업이 한창인데 한쪽에서는 건축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발생하고 있다’ 등 남산 생태환경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번 호텔 신축은 이부진 사장이 직접 관여하고 있다. 호텔신라의 핵심 사업은 호텔과 면세업이다. 현재 호텔신라는 서울과 제주도 2개 호텔과 6개 면세점(서울•제주•인천•청주•대구•김포)을 운영하고 있다.
올 1분기 면세사업 매출은 4201억원, 호텔은 580억원이다. 호텔 매출의 대부분(면세사업 86.3%•호텔사업 11.9%)을 차지한다. 그만큼 두 사업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 사장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이 사장은 2006년 호텔신라 리뉴얼과 2011년 9월 인천공항 면세점 루이비통 입점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는 호텔과 면세점 확장이 그의 새로운 과제로 여겨진다.
하지만 첫 번째 사업격인 호텔신라 신축은 서울시의 강경한 입장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10년이 지났지만 성과는 고작 ‘서울시와 협의를 통한 보완•수정 중’이다. 일각에선 “힘을 믿고 밀어 붙였는데, 규제가 풀리지 않아 고생 꽤나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 사장의 두 번째 호텔은 관훈동(안국동 사거리, 인사동 거리 입구 바로 옆)에 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삼성화재해상보험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대성셀틱 부지(155-2번지•2075.2㎡)를 매입했다. 이후 올 7월 삼성화재는 호텔 개발 계획서를 종로구청에 제출했다. 문화복합공간으로 최근 증가하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국의 전통 의상과 음식 등을 판매하고, 투숙할 수 있는 전통호텔을 짓는다는 것이다.

종로구청 건축과는 “7월 중순 삼성화재가 호텔 건립 계획안을 제출했다”며 “인사동 지구단위계획구역에 맞는 전통적인 분위기의 문화복합공간 건립이 주요 내용이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허가가 떨어진 것이 아니다”며 “관광•문화에 있어 중요한 지역인 만큼 지속적으로 수정•보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삼성화재가 사들였지만 결국에는 호텔신라가 위탁경영 등을 통해 운영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삼성화재가 부지 매입한 것일 뿐 우리와는 상관없다”고 밝혔고, 삼성화재 역시 “너무 앞서 나간 얘기”라고 말했다. 삼성화재는 종로구청에 호텔 계획서 제출 확인 전까지 부지 매입 목적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며 호텔 건립에 대해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경복궁 앞 전통호텔 사업 “일시 중단”

두 회사가 호텔 신축과 관련, 비교적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이 부지에서 최근 문화재 발굴 조사가 마무리 됐기 때문이다. 호텔신라가 종로구청에 계획안을 제출한 지 바로 2주전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55-2번지 일원에 추진 중인 건물 신축공사에 앞서 발굴조사를 실시해 매장문화재의 부존여부를 확인하고, 향후 개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화재의 훼손을 사전에 방지해 개발과 문화유적 보존의 효과적인 방안을 수립하고자 한다.”

대성셀틱 부지 가림막에는 한울문화재연구원의 ‘유적발굴조사 안내판’이 붙어있다. 이 부지 건물 철거 공사 중 1900년대 이후 개량한옥의 장대석이 발견됐고, 문화재청은 지난 3월 26일부터 60일간 발굴 조사에 나섰다. 이후 문화재청은 조사 결과 보호할 만한 문화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발굴된 문화재는 기록 보존하고, 추후 개발에 있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화재는 ‘문화재 훼손했다’는 여파 의식해 침묵을 지켰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장 만큼 조현아 전무의 앞길도 그리 평탄해보이지 않는다. 삼성화재의 대성셀틱 부지에서 나와 안국동 사거리 맞은편에 위치한 옛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숙소 부지(서울 종로구 송현동 49-1번지 일대•13만7000㎡). 대한항공은 이 부지에 지상 4층•지하 4층의 7성급 전통호텔을 지을 계획이다.

대한항공 측은 “이 곳 위치를 살려 경복궁과 창덕궁, 인사동을 잇는 도심 속 문화벨트를 구축할 계획”이라며 “한옥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전통호텔과 세계 각국의 정상회의가 열리는 컨퍼런스장과 다양한 공연장이 포함된 문화복합단지”라고 설명했다.

이 호텔 건축은 조 전무의 핵심 사업으로 여겨진다. 조 전무는 2009년 한진그룹의 호텔사업을 총괄하는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에 올랐다. 이후 그는 객실승무•기내식기판사업과 함께 대한항공 호텔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한진그룹은 핵심계열사 대한항공이 운영하는 제주칼호텔(1974년 설립)과 서귀포 칼호텔(1985년), 칼호텔네트워크의 인천하얏트호텔(2003년)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 지역에는 운영 호텔이 없다. 때문에 ‘서울에도 호텔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 ‘호텔 부문 키우기 위해선 서울 확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떠돌았다.

한진그룹의 호텔사업은 대한항공의 핵심부문인 여객과 화물 운송에 비해 작은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조 전무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현재 경영 총괄하고 있는 부친 조양호 회장 이후 ‘한진가 3세 독립 시대’에서 조 전무가 담당할 사업 중 하나가 바로 호텔사업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호텔부문 매출 1592억원과 영업이익 112억원을 달성했고, 칼호텔네트워크는 매출 262억원과 영업이익 88억원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항공은 2008년 삼성생명으로부터 미국대사관 직원숙소 부지를 사들였다.

이후 문화관광벨트를 구축하는 동시에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짓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사업은 ‘홀딩’ 단계다. 이 부지를 둘러싸고 덕성여자 중•고등학교와 풍문여자 고등학교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학교보건법상에 따르면 학교 경계선 200m 이내인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 내에 호텔•여관•여인숙을 지으려면 관할 교육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서울 중부교육지원청은 유해시설로부터 학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를 거부했다. 대한항공은 행정소송도 제기했지만 패소했고, 현재 사업은 일시 중단 상태다. 이후 대한항공은 호텔 건립에 호의적인 문화체육관광부가 관할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으로 눈을 돌렸다. 숙박시설을 모두 유해시설로 규정하는 건 지나치게 폭넓은 규제라는 것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현재 호텔 건축 사업 일시 중단된 상태”라며 “전통적인 문화복합시설 구축사업 사업인데 왜 호텔만 부각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의견 꾸준히 제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Issue in Issue
3개 직함 가진 이부진•조현아
경영능력은 과연…

 

이부진 사장은 현재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삼성물산 상사부문 등 3개 회사를 담당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고문으로 아직은 역할이 미미하다. 이 사장 혼자 3개 회사 경영을 감당할 수 있을까. 3개 회사의 지난해 매출만 더해도 25조9970억원이고, 직원은 무려 1만2519명이다.

재계는 이 사장이 현재 호텔신라에 주력하고 있고, 삼성에버랜드와 삼성물산은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대비한 사전 작업으로 보고 있다. 미래 삼성그룹의 호텔•서비스 부문을 이끌 것으로 예상되는 이 사장이 관련 사업을 직접 보고 배우며, 자기 사람 만들기 등 기반 다지기 차원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이 사장은 호텔신라에서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그는 2001년 호텔신라 기획부 부장에 오른 이후 현재까지 호텔신라에 몸을 담고 있다. 이후 2009년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전무를 겸직했고, 2011년에는 삼성에버랜드 사장,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 자리에 올랐다. 재계는 ‘호텔과 서비스는 이부진의 몫인가’ ‘삼성물산의 건설과 상사부문 계열 분리’ 등을 예상했다. 이건희 회장의 자녀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사장, 이서현 제일기획 부사장의 시대를 내다본 것이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도 공식직함이 3개 있다. 조 전무는 현재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 본부장(전무)•기내식기판 사업본부 본부장•칼호텔네트워크 대표다. 승무원 서비스 관리에서 기내식까지, 대한항공이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는 조 전무가 담당한다고 한다. 여기에 호텔사업까지 맡고 있다. 3개 사업부문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까라는 이 사장과 같은 질문이 제기되고, 이에 대한 답 역시 같다. 포스트 조양호 회장 시대에 대한 준비 차원이다.

미국 코넬대학교(호텔경영학)를 졸업한 조 전무는 전공을 살려 1999년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에 입사했다. 이후 객실과 기내식기판 사업으로 영업을 넓혀 나갔다.

박용선 기자 brave11 @ thescoop.co.kr | @ itvfm.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