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올드보이 ❻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분명 스릴러 같기는 한데 범죄 스릴러물은 아니다. 영화의 전개를 둘러싼 ‘사건’이 범죄인 것 같으면서도 딱히 범죄라고 규정하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범죄’가 아니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전형적인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 사건에서 비롯되는 비극을 다룬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몰카와의 전쟁’을 선포할 만큼 ‘훔쳐보기’가 기승을 부린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몰카와의 전쟁’을 선포할 만큼 ‘훔쳐보기’가 기승을 부린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오대수(최민식)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조금은 껄렁하지만 그렇다고 학생들을 두들겨 패고 ‘삥’ 뜯는 악마적인 ‘일진’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일진도 못 된다. ‘오대수’라는 이름에 ‘오늘만 대충 수습한다’는 깊은 성명 철학이 있다면 오대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오대수였다.

고등학생 오대수는 어느날 우연히 빈 교실의 깨진 유리창 틈으로 이우진(유지태)과 새침하기 짝이 없는 그의 누이 수아의 묘한 ‘근친상간’ 행위를 목격한다. ‘훔쳐보기’는 대표적인 ‘피해자 없는 범죄’ 행위다. 훔쳐본 자가 혼자만의 비밀로 무덤 속까지 가져가고, 본인도 누군가 자신을 훔쳐본 사실을 모른다면 엄밀히 말해서 피해자는 없는 셈이다. 오대수가 훔쳐본 근친상간 역시 대표적인 ‘피해자 없는 범죄’ 행위다.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해 이뤄졌다면 근친 사이의 애정 행위를 법적으로 단죄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그 묘한 사건이 꼬이기 시작한다. 오대수는 전학을 앞두고 목격한 그 야릇한 사건을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는 무의미한 전제를 달아 친구 주환이에게 속삭이고 떠난다. 그 순간 오대수의 훔쳐보기는 ‘피해자 없는 범죄’가 아니라 ‘피해자가 있는 범죄’가 되고 만다. 주환이만 알게 되어도 이미 범죄지만, 그 소문이 온 동네로 퍼져나가면서 수습할 수 없는 중죄가 되고 만다. 그러나 오대수는 주환이가 비밀을 지킬 것이라는 황당한 믿음을 가졌는지 자신의 발설을 범죄라 인식하지 못한 채 속 편하게 전학을 간다. 그리고 잊고 산다.

고등학생 오대수는 우연히 이우진과 누이의 근친상간 장면을 목격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고등학생 오대수는 우연히 이우진과 누이의 근친상간 장면을 목격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우리에게도 익숙한 벨기에의 명품 초콜릿 ‘고다이바(Godiva)’ 로고는 긴 머리로 발가벗은 몸을 가린 채로 말을 타고 있는 여인을 이미지화했다. 고다이바는 실존했던 중세 영주의 부인이다. 영주인 남편에게 영주민들에 대한 가혹한 세금 징수를 완화해 달라고 탄원하지만 계속 거절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당신이 발가벗은 채 말 타고 영지를 한바퀴 돈다면 그리하겠다’는 제안을 하자 고다이바 부인은 제안을 수용한다. 영주민들은 고다이바 부인에게 감동해 모두 창문을 닫고 아무도 그 모습을 보지 않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톰(Tom)이라는 청년이 호기심을 못 이겨 고다이바의 알몸을 훔쳐보고 그 죄로 청년은 실명했다고 한다. 톰이 몰래 창문을 열어 훔쳐보고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다면 ‘피해자 없는 범죄’일 수 있지만, 그가 훔쳐봤다는 것을 고다이바 부인이나 마을 사람 모두 알게 된 순간 그것은 실명의 죄를 치러야 하는 범죄 행위가 된 것이다.

이우진의 근친상간 역시 ‘피해자 없는 범죄’의 영역에 속하는 범죄다. 근친상간이 둘 사이에 합의해 의한 관계로만 관리된다면 사법적 제재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그 소문이 퍼지고 수아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두려움은 상상임신으로 이어지고 결국 수아는 합천댐에서 몸을 던진다. 근친상간은 ‘피해자 없는 범죄’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임신을 하고 아이를 세상에 내놓게 되면 모두의 삶을 파괴하고 사회적 질서를 뒤흔드는 범죄가 되고 만다.

오대수나 이우진 모두 자신들의 행위를 ‘피해자 없는 범죄’라고 여기지만 모두 ‘피해자 있는 범죄’가 되고 만다. 자신의 죄를 제대로 인식 못하는 오대수는 오대수대로, 이우진은 이우진대로 억울하고 분노에 치를 떨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몰카와의 전쟁’을 선포할 만큼 ‘훔쳐보기’가 기승을 부린다. 아마도 오대수처럼 자신들의 훔쳐보기가 ‘피해자 없는 범죄’라 생각하고 큰 죄의식이 없는 모양이다. 혹시 몰래 촬영한 영상을 죽을 때까지 혼자만 본다면 ‘피해자 없는 범죄’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 모양이다.

‘훔쳐보기’는 ‘피해자 없는 범죄’ 행위지만 공유를 하는 순간 중죄가 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훔쳐보기’는 ‘피해자 없는 범죄’ 행위지만 공유를 하는 순간 중죄가 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요즘처럼 인터넷에 띄워 ‘공유 정신’을 발휘한다면 그것은 분명 중범죄 행위에 해당한다. 부부나 연인들끼리의 ‘묘한’ 사진촬영 역시 ‘근친상간’처럼 합의 하에 이뤄져 둘 사이에서만 간직한다면 ‘피해자 없는 범죄’의 영역에 머물겠지만 그것이 헤어지고 난 후 소위 ‘리벤지 포르노’가 된다면 살인에 버금가는 범죄가 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비밀을 알게 된 재단사는 그 비밀을 누군가에게 속삭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다 병이 생긴다. 대나무 숲에 구덩이를 파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고서야 병이 낫는다. 그만큼 비밀을 지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남이 몰라야 하는 비밀은 스스로 만들지도 말고, 말할 수 없는 남의 비밀은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 듯하다. 모든 비밀은 죄를 잉태한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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