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구스타프 폰 슈몰러의 통찰

노동자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5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재직기간은 연평균 5.82년으로 OECD 평균(9.27년)의 절반 수준이다. 인구 10만명 가운데 산재사망자 수는 10.8명으로 역시 1위로 유럽연합(EU)의 5배에 달한다. 그러면서 2017년 기준 중위임금 3분의 2 미만(139만원)도 못 받는 직장인이 10명 중 2~3명이다. 이로 인해 사회적인 문제가 불거지면 과연 누가 풀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국가와 노동자문제의 상관관계를 풀어봤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가 의견을 줬다.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OECD 회원국 평균치보다 2배나 높다.[사진=뉴시스]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OECD 회원국 평균치보다 2배나 높다.[사진=뉴시스]

“노동자문제가 곧 사회문제다.” 독일의 고전경제학자 구스타프 폰 슈몰러(Gustav von Schmoller)는 1872년 독일사회정책학회 창립총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노동자문제’란 노동자라는 신분적 특성으로 인해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문제를 의미한다. 그는 “노동자문제가 단순히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이기 때문에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거다. 그는 왜 이런 주장을 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당시 시대적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71년 독일은 수백여개의 중소국가들로 쪼개져 있던 봉건국가시대를 끝내고, 북부 독일 영주국가였던 프로이센을 주축으로 통일제국을 세웠다. 이후 독일은 본격적인 산업화를 시작했다. 경쟁국가였던 영국ㆍ프랑스 등은 이미 산업혁명을 완성해 자신들의 군사적ㆍ경제적 영향력을 유럽을 넘어 전세계로 확장해 나가고 있던 시기다. 후발주자였던 독일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산업화 과정을 압축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산업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독일이 택할 수 있었던 것은 많지 않았다. 독일은 노동력으로 이를 돌파하고자 했다. 값싼 노동력을 투입해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고, 극대화된 이윤을 다시 산업자본으로 환원하는 방식을 택했던 거다. 그 과정에서 기업들은 임금인상을 통제했고, 장시간의 초과노동과 함께 산업안전ㆍ보건 등 노동자 보호를 위한 예방 투자는 억제했다. 생산비용을 최소화한 거다. 짧은 시간 내에 독일이 압축적으로 산업화를 실현할 수 있었던 이유다. 

문제는 대다수 노동자의 삶이 최저생계수준 이하의 빈곤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시기 베를린 지역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평균노동시간은 한때 주 78시간을 기록하기도 했다. 휴일 없이 매일 12시간 이상씩 일만 했다는 얘기다. 노동력의 재충전 기회마저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그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산업재해는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물론 당시에도 산재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보상책임이 법률로 명시돼 있었지만, 기업에 그 책임을 물으려면 노동자 스스로 ‘사용자의 중대과실이나 고의’를 입증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독일 정부는 노동자들이 겪고 있던 문제들을 방관하거나 때론 기업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 국가가 집회나 결사를 금지한 것은 물론, 우리나라의 반공법과 같은 반사회주의법을 통해 노조결성이나 사회민주당과 같은 개혁정당의 활동을 불법화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불만이 투표로 이어져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는 사회민주당이 연방의회에서 의석을 확장해 나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불법단체였던 노동조합은 점차 합법적 이익단체로 인정을 받았다. 노동자문제가 하나둘씩 해결된 것도 그 이후부터다. 또한 이런 성과들이 점차 전통으로 자리 잡으면서 오늘날 독일은 노사자치와 공동의사결정권 등 고도의 갈등조절장치를 갖춘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노동시장을 만들었다.

가난하고, 불안한 한국 직장인들

슈몰러가 노동자문제를 사회문제라면서 국가의 개입을 강조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자문제는 정치와 법,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약 150년 전 슈몰러의 지적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에 주는 시사점이 결코 작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자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52시간(2016년 기준)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2348시간) 다음으로 길다. OECD 평균 노동시간은 1707시간이다. 한국인 노동자가 345시간이나 더 오래 일을 한다. 반면 재직기간은 짧다. 한국인 노동자의 평균 재직기간은 5.82년인데, OECD 평균(9.27년)의 절반 수준이다. 고용이 불안하단 얘기다.

산재는 달고 산다. EU 공식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가 지난해 발표한 ‘2014년 기준 직장 안전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 10만명 가운데 산재사망자 수는 10.8명이었다. EU 회원국 평균 산재사망률은 10만명당 2.3명으로, 한국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의 삶은 곤궁하다. 올해 3월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중위임금의 3분의 2보다 낮은 임금(2014년 기준)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23.7%(2014년 기준)에 달했다. OECD 26개 회원국 중 미국(25.0%)과 아일랜드(24.0%)에 이어 세번째로 저임금 노동자가 많았다. 물론 2017년 기준 저임금 노동자(월 139만원 미만)는 22.3%로 조금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2016년 기준 OECD 평균인 18.3%보다는 월등히 높다. 노동자 빈곤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이런 빈곤현상은 노년층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의 2명 중 1명은 빈곤상태다. 올해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5.7%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마저도 부실하다. 최근 들어 분위기는 많이 바뀌고 있지만, 갈 길이 아직 멀다. 대다수 OECD 또는 EU 회원국에서는 보편적인 사회보장제도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아직도 약한 사회적 안전망

일례로 우리나라는 노동자에게 중대질병이 발생해도 의료보장 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라 치료과정에서 입을 노동자의 손실을 보장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저소득 장기실업자나 청년실업자 등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노동시장 취약계층’의 취업알선과 함께 소득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실업부조제도’도 갖춰져 있지 않다. 

그뿐만이 아니다. 산업이 일부 기업에 집중돼 독점의 폐해는 물론 소득과 부의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재벌의 무자비한 이윤추구행위는 골목상권이나 재래시장상권에 침투해 영세상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국가가 개입해 노동자문제를 풀어야 한다”던 1800년대 어느 경제학자의 지적이 큰 울림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socwjwl@hanmail.net
정리 |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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