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제품’ PC의 가능성

PC 산업의 침체기가 오래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폰에 밀린 것도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뛰어난 성능을 갖춘 탓에 재구매가 일어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그렇다고 PC의 미래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고사양 게임의 특화된 ‘게이밍 노트북’이 인기몰이에 성공한 건 시사한 게 많다. 하나에만 특화된 PC는 생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핀셋 PC’의 시대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핀셋 PC의 장단점을 살펴봤다. 

한가지 기능에 특화된 PC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사진=msi 제공]
한가지 기능에 특화된 PC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사진=msi 제공]

국내 PC시장이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PC 출하량은 총 152만대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162만대) 약 6% 감소했다. 특히 데스크톱이 꾸준한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해 판매량은 212만대로 2013년(278만대)에 비해 23.7%나 줄었다.

업계에선 이미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PC 시장의 침체가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1분기 세계 PC 출하량이 6170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했으며 1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PC가 소비자들로부터 설 자리를 잃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게임·동영상·쇼핑 등 PC가 맡던 역할의 상당 부분을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있어서다. 시장조사업체 오픈서베이의 조사를 보자. 소비자들의 69.3%는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시청한다. PC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19.4%에 그쳤다. PC로 SNS를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2012년 81.6%(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준)에서 2017년 36.5%로 줄었다. 한때 여가의 한축을 맡았던 PC가 단순 사무기기로 전락하고 있다는 얘기다.

기능의 상향평준화도 PC 수요가 줄어든 원인으로 꼽힌다. 박수용 서강대(컴퓨터공학) 교수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의 경우 3년 동안 성능이 50%도 늘지 않았다”면서 “그럼에도 구형 PC에서 웬만한 작업들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건 그만큼 PC 사양이 빠르게 상향평준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도 새 PC를 구매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건 뻔하다.

PC 업계에선 “그나마 남은 호재가 시장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해 호재는 ‘게임’이었다. 2017년 3월 PC용 온라인 게임 ‘배틀그라운드’가 하반기에 대박을 치면서 새 PC를 장만하려는 소비자들이 늘었다. 특히 인기를 끈 건 온라인 게임에 특화된 ‘게이밍 노트북’이었다. IDC의 조사에 따르면 게이밍 노트북이 포함된 ‘기타 노트북’의 1분기 출하량은 1만1000대(2017년 1분기)에서 6만5000대로 6배나 증가했다. 게임 열풍에 힘입어 지난해 3분기 PC 출하량은 101만6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0.7% 감소하는 데 그쳤다.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업체들도 올 상반기에 앞 다퉈 게이밍 노트북을 출시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업체들이 반년 만에 일제히 게이밍 노트북을 내놓은 것을 미뤄봤을 때 갑자기 터진 호재에 서둘러 제품을 출시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만큼 PC업계가 새로운 돌파구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재에 기대는 PC 시장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에선 ‘뜻밖의 호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HP코리아는 지난 3일 기업을 타깃으로 한 노트북을 출시했다. 메모 기능이 딸린 전자펜과 어디서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LTE를 지원하는 노트북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노린 제품이다. HP코리아 관계자는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휴대성이 뛰어난 노트북 위주로 기업 수요가 늘어날 거라고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장의 의견은 부정적이다. 근무단축이 곧장 판매량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한 PC 판매업체 관계자는 “근무 단축으로 고용이 늘어난 경우라면 노트북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면서도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트북을 추가 구매하진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다른 업체 관계자는 “업종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전용 노트북을 쓰는 경우가 별로 없다”면서 “회의나 외근으로 노트북이 필요한 경우에는 대여용 노트북을 쓰면 그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PC 산업을 두고 박수용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성능만을 앞세운 전통적인 판매 방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과도한 성능 경쟁은 오히려 PC 구매를 저해하는 요소다. 게이밍 노트북처럼 이용자 편의에 초점을 맞춘 제품이 각광을 받는 이유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전까진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힘들 것으로 본다.”
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bellkic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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